공작새 깃털이 들어간 12cm 겨울용 구두,
스무살 아가씨만 입을 수 있을 것 같은 핫핑크색 숏 패딩,
사.지.체. 즉, 사회적 지위와 체면 때문에 회사에, 사무실에 입고, 신고 갈 수는 없지만
옷장에 그리고 신발장에 고이 놓여있는 아이템들이 누구나 다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평온한 휴일 어느 날,
조용한 카페를 가볼까 하고 이불을 힘껏 차 본다. 그리고는 나갈 준비를 위해 옷장을 저쳤을 때. 나를 째려보고 있는 그 아이와 눈싸움을 시작한다.
-나를 어서 걸치고 나가라.
-아.. 아니야 아직은 용기가..
-오늘 주말이잖아!
결국, 못 이기는 척 한번 걸쳐본다. 툭,
작은 일탈을 한 것처럼 기분이 왠지 간질간질하면서 좋아지기 시작한다.
짜식, 내가 널 이때 아니면 언제 입어보니
가벼운 마음으로 밖을 나서고 유독 밝은 햇살과 살랑한 바람은 발걸음을 3/4박자로 만든다.
어쩌면,
일탈을 꿈꾸지만 어른이라는 미명 아래 속 시원하게 저지를 수 없기에 이러한 사소한 꼼직거림이 더 큰 희열로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시절, 야간 자율학습 땡땡이를 치며 친구들과 신나게 해맑게 뛰어갔는데...
지금은 사회가 바라는 어른이라는 전형적인 모습에 맞춰져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인지 작은 일탈도 어색해져 버렸다. 가끔은 난 아직 17살 같은데 35살이라니... 라며 속상해질 때가 있다. 그땐 빨리 35살이 되고 싶었는데 말이다.
내 소망이 이루어지고 난 지금, 그 소망은 책임이라는 녀석과 함께 이제 날 따라다니고 있다.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뛸 순 없지만 가끔 그때가 참 그리울 때가 있다. 눈만 마주쳐도 꺄르르 웃음이 나왔던 순수했던 나, 맑디 맑았던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