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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8 세부

<난기류를 지나 순항하는 시간의 조각> 최영

by 최영


이미지 출처: pinterest




다섯 번째 비행을 세부로 다녀왔다. 라인에 올라와 한참 적응하는 중이었고 모든 것이 서툴렀기에 내 옆에서 일하는 사무장님의 인내심이 바닥날 만했다. 돌아오는 편에서 1시간30분 지연되었기에 30분은 족히 걸리는 항공기 점검 업무를 10분 안에 끝내야 했다. 머리 속이 새하얘져 벙찐 내 옆에서 사무장님은 내 몫까지 대신 하셔야 했다. 무사히 이륙하고 순항 중일 때 사무장님께서 점프싯에 앉아 얘기 좀 하자고 하셨다.


“*라인 올라온지 얼마나 됐어요?”

“일주일 됐습니다.”

“이제 슬슬 적응할 때 됐는데.. 최영씨처럼 심한 사람은 처음 봐요.”

한숨을 푹 쉬면서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씀을 하시니 나는 더욱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더 나아가 이 사람은 나를 싫어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폐쇄된 이 공간에서 탈출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항공기 비상구를 열고 뛰어내리고 싶다는 위험한 생각이 들었지만 가난한 우리 집에 날아올 온갖 손해배상권이 아득했고 이 사건이 뉴스기사로 올라올 것이라는 생각에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다. 그나마 현실적인 도피 방법은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남은 4시간 비행을 버티는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비행기 화장실 문은 밖에서도 개방이 가능했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화장실 내 휴지 삼각접기를 하며 지옥같은 4시간을 보냈다. 비행이 끝나고 도피하듯 화장실칸 안으로 들어가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법인데 몇몇 사람들은 자신에게도 어려웠던 첫날이 있었음을 잊고 사는 듯하다. 적어도 나는 내 옆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겠다고 스스로와의 약속을 하나 만들었다.


*수료하고 실제 비행 현장에 올라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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