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난기류를 지나 순항한다> 최영
오수영 작가의 <아무 날의 비행일지> 라는 책을 읽으며 기내는 마치 승객으로 가득히 심어진 숲처럼 그려졌다. 갤리 붙박이 벽에 수북히 박힌 컨테이너 박스들과 카트들은 정갈했고 그 모습은 괜히 신비로웠다. 좌석마다 심어진 승객들을 돌보는 승무원들은 커튼 뒤에서 비밀스럽게 바빴다.
모든 서비스가 끝나고 객실 등이 이내 소등되면 화초처럼 심어진 승객들도 잠들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점프싯에 앉아 보고 있으면 객실이 잔잔한 호수처럼 그려진다. 잔잔한 소음은 거대하게 돌아가는 엔진 소리에 묻혀 산산히 옅어진다. 산산히 부서진 잔해들 안에서 사색을 한다.
깊은 잠에 든 승객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정신도 몽롱해진다. 잠에 들어야 할 시간에 승무원들은 흔들리는 정신줄을 붙잡고 언제나 깨어있다. 조용히 메모지를 꺼내 구름같은 생각들을 비워냈다. 비행기 날개 아래에 먼 나라의 불빛들 위를 날아가는 조그만 내 자신이 흘러간다. 밤잠 없는 승객들은 반딧불이처럼 아이패드를 주시하고 있다. 조용히 복도를 걸어다니며 이번 목적지에서 어떻게 방황할지 고민한다.
콜벨이 울리고 사색하던 안개가 겉힌다. 화초에 물을 주러 한바퀴 갔다오면, 배고픈 새들이 나를 어미새처럼 쳐다보며 입을 벌리기 시작한다. 카트에 정갈하게 기내식을 실어 하나씩 나눠줄 시간이다. 든든하게 뱃속을 채운 새들이 다시 잠든다.
거대한 엔진소리가 다시 자명해진다. 비행기 구석에 숨겨진 벙커 안에서 승무원들이 나오면 이번엔 내가 벙커에 들어갈 차례다. 벙커 침대에 파묻혀 못다한 사색을 다시 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깊은 잠에 든다.
“띵띵띵띵. Cabin Crew Prepare For Landing.”
257명의 승객을 태운 비행기가 착륙할 준비가 되었다. 승무원들도 일제히 일어나 승객들의 착석상태를 확인하고 갤리 안에서는 낙하할 수 있는 모든 유동물을 고정한다.
“우리 비행기 곧 착륙하겠습니다. 좌석벨트를 매셨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작은 지구를 담은 거대한 숲이 낯선 나라에 쿵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