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림 이야기
나의 첫 풍경화다. 내가 풍경을 그릴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단 한 번도 풍경을 그리고 싶거나 시도해 본 적 없었고 다만 풍경화는 다른 작가의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거웠다.
그런데 이사 와서 여기저기 걸어 다니다가 어느 날 텃밭 앞 공원에서 너무 멋진 장면에 걸음을 멈추었다.
‘아! 보름이구나!’
하늘에 보름달이 떠있는 해 질 녘 무렵, 파란색 하늘 끝자락에 주황색이 짙게 하늘을 물들였고 어둠은 흙색으로 나무에 먼저 밤이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넓은 들판에는 어둠이 미치지 않아 흐드러지게 핀 풀꽃들이 해맑게 보였다.
너무 예뻐서 대충 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와 단숨에 캠버스에 그려보았다. 보통 내가 그리는 그림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그렸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의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후닥닥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꼼꼼히 들여다보면 어설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래서 꼼꼼히 살펴보지 않고 걸어두고 보면서 그때, 그 감정만 다시 느끼며 만족하고 있다.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니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다. 계획을 세워 목표대로 살아가고 싶은 삶을 살다가도 가끔 가벼운 접촉사고처럼 뜻하지 않은 자잘한 일들이 생겨났고 그럴 때마다 대처하고 해결하다 보면 나의 목표도, 계획도 수정하는 경우가 있었다.
나에게 삶이 그렇듯 그림도 그런 것 같다. 그림 대부분을 오래 생각하고 계획해서 진행하지만 가끔은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 느낌을 순식간에 쓱 그려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접촉사고 같은 일들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나의 삶과 그림에 영향을 줄지는 짐작할 수는 없지만 기대가 된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그림에 덧칠해서 다른 그림으로 바꿀 수도 있지만 그런 마음이 들기 전까지 나는 이 그림을 보고 그때 기분을 떠올리며 즐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