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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거울>

- 절규하는 리얼리즘

by 로로

페이크 다큐멘터리(fake documentary) 또는 모큐멘터리(Mockumentary)로 불리는 영화의 역사는 제법 되지만 하나의 기법 정도로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 <블레어 윗치>(The Blair Witch Project, 1999)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것은 관객이 진짜로 다큐멘터리인 것으로 착각하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포물인 <블레어 윗치>는 너무나 정교하여 공포의 대상이 화면에 전혀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소름 끼치는 공포를 안겨 주었다. 그 후 <클로버필드>(Cloverfield, 2008)를 비롯해 많은 모큐멘터리 작품들이 선을 보였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인 <거울>(1997)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정확히 나누어진다. 전반부는 파나히 감독의 첫 작품인 <하얀 풍선>과 유사하다. <거울>의 주인공인 어린 소녀는 <하얀 풍선> 주인공 소녀의 친동생이기에 외모까지 비슷하다. 학교가 끝난 후 소녀는 어머니를 기다리지만 어머니가 나타나지 않자 혼자서 어른들에게 길을 물어가며 어렵사리 집을 찾아간다. 그런데 영화 중간에 깜짝쇼가 등장한다.


어린 소녀는 갑자기 카메라를 향해, 감독을 향해 더 이상 영화 찍기 싫다면서 소품과 분장(팔에 두른 깁스)을 집어던지고 버스에서 내려버린다. 제작진들은 모두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모르는 가운데 감독인 파나히는 소녀를 막지 말고 그냥 계속 뒤를 쫓아가며 촬영하라고 지시한다. 여기서부터는 다큐멘터리가 된 것이다. 그런데 배우로서의 소녀와 마찬가지로 '진짜' 소녀도 자기 집을 찾아가야 한다. 카메라는 간혹 놓이기도 하면서 어렵사리 소녀를 뒤쫓아간다. 마침내 소녀가 자기 집을 찾아가면서 영화는 끝난다.


자. 이 영화의 후반부는 과연 다큐일까? 아니면 다큐를 흉내 낸 '모큐'일까? 제목인 <거울>은 '현실'과 그것의 모사인 '극'이 어떤 관계인지, 혹은 어떤 관계여야 하는지를 웅변하는 감독의 철학을 담고 있다. 이후 파나히 감독의 대부분의 영화는 다큐와 극영화의 교묘한 혼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그것을 통해 파나히는 현실을 담아내는 충실한 리얼리즘 노선에 굳게 서 있다.


영화, 즉 Motion Picture 혹은 Film은 애초에 드라마성과 다큐성을 마치 시암쌍둥이처럼 하고 태어났다. 최초의 Motion Picture인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1986),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은 다큐로 자리 잡았다면,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1902)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고무시키는 극영화의 출발을 알렸다. 그 후 일반적으로 영화라고 하면 극영화를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정도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다큐멘터리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자신의 굳건한 리얼리즘 자리를 내어준 적은 한 번도 없다. 단지 흥행성이 떨어져서 극장에서 상영되기 힘들 뿐이다.


파나히 감독은 철저한 리얼리즘 작가이다. 이것이 다른 모큐멘터리 영화와 다른 점이다. 일반적으로 다큐를 흉내 내거나 속이는 모큐멘터리는 엄밀히 말해서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다큐 형식을 채용한다. 그런데 파나히의 경우는 그 반대이다. '다큐적' 효과 다시 말해 현실을 가장 정직하게 담기 위해 모큐멘터리를 채용한 것이다. 더 엄밀히 말하면 파나히는 다큐를 흉내 내는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를 흉내 낸 다큐를 만드는 것이다. 이 공식은 그 후 파나히의 작품 대부분에 적용이 된다.


<거울>의 후반부는 '실제 상황'이 아니라 '극'이다. 물론 정말로 소녀 배우가 영화 찍기를 거부하여 애초에 기획한 영화에서 벗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의 후반부는 다큐를 가장한 극영화 연출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파나히 자신이 일반 관객이 눈치채기는 힘들지만 정직하게 고백해 준다.


여기서 잠시 한국 축구의 흑역사를 이야기해야 한다. <거울>이 촬영된 1996년 12월 16일에 한국 축구 대표팀은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이란과 맞붙었다. 영화 <거울>이 시작될 때 라디오에서는 이 축구 경기의 중계가 시작된다. 전반전에 한국은 2:0으로 앞서 나갔고 <거울>에 등장하는 이란인들은 실망을 한다. 그러나 후반전에 한국은 무려 6골을 이란에게 내주고 참패를 한다. 이 축구 참사는 여전히 논란이 되기도 한다. 당시 홍명보를 중심으로 한 대표팀 선수와 혹독하기로 유명한 박종환 감독의 불화로 선수들이 고의로 진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남아 있는 것이다. 영화 <거울>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이 축구 경기가 종료되는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온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95분이니까 대략 비슷한 시간이긴 하지만 정확히 따지자면 약간 틀린 러닝타임이다. <거울>의 이러한 설정은 영화의 후반부 역시 '극'이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따지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며 부질없는 짓이다. 중요한 것은 다큐와 극의 경계를 허물면서 추구하는 파나히 감독의 철저한 리얼리즘 정신이다. 이것은 파나히 감독의 이후 작품을 통해서 보다 절절하게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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