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산들 Jun 20. 2020

에필로그

우리가 함께 있었다.

브런치에 올렸던 인간관계 글은 허무함에서 시작되었다. 20대에는 매주 보던 고등학교 친구들은 이제 분기에 한 번 보기도 힘들게 되었고, 함께 수많은 술잔을 비웠던 대학교 동창들은 결혼 후에는 만나기 힘든 사이가 되어 버렸다. 회사에서 유독 힘든 일이 있었던 어느 날, 누군가와 한 잔 하면서 위로를 받고 싶었지만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 300명이 넘는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쭉 내리면서 지금 이 순간 편하게 맥주 한 잔 할 친구가 없다는 사실이 슬프게 느껴졌다.


대학생 때는 밀려드는 약속과 모임을 감당하지 못해 일주일 내내 스케줄이 꽉 차있기도 했었고, 모임 시간이 겹칠 때면 어쩔 수 없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굳이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아도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던 시기였다. 많은 인맥들 사이에서 지내던 20대와 지금 30대의 상황이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나의 공허함은 더 커져갔다.


그래서 브런치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시니컬한 글을 올렸다. '인간관계에 집착할 필요 없다.', '인간관계는 허무하다.', '인맥 정리가 필요하다.' 등의 내용이었다. 공감해 주시는 분들이 생겼고 따뜻한 댓글도 하나둘씩 늘어났다. 원래 인간관계 글을 쓴 목적은 나와 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지만, 오히려 그분들을 통해 내가 위로를 받기도 하였다.   


댓글을 보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의 공허함을 나만 느끼는 게 아니라는 것, 나이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었다. 점점 멀어지는 친구들에게 섭섭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제 회사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고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생기며 겪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쩌면 친구들은 현재에 충실하며 살아 가는데 나만 과거에 집착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감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연락처를 하나씩 보면서 그 사람과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글감이 될만한 게 있는지 생각해본다. 이제 누구인지 생각이 잘 안 나는 사람도 있고, ‘이 사람과는 계속 연락을 했었어야 하는 건데’하는 아쉬운 생각이 드는 인연들도 있다. 그러다 보면 20대의 나를 만나기도 하고, 그 시절 즐거웠던 추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한 때는 죽고 못 살만큼 가까웠던 친구도 있고 미워했던 친구도 있지만 지금 되돌아보니 그 인연들이 있어 내 삶이 더 빛날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우리가 떨어져 있더라도 혹은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되었더라도 서로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소중한 존재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내 기억 속 어딘가에 남아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내 인생의 빛나는 순간마다 우리가 함께 있었다.


이전 14화 인간관계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