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혼자가 아니기를 선택했습니다
2010년 5월 8일.
버진로드에 섰다.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방법은
남들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는 거였다.
우리도 다르지 않았다.
해야 한다는 것들을 하고,
보통은 그렇다는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예식장은 어디로 했니?”
“학동역 쪽 예식장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 하객 교통편 불편하지 않은 곳으로 하고.”
“네, 지하철도 근처에 있어요.”
“식사는 뷔페가 좋지 않니?”
“동시 예식이라 아마 스테이크일 거예요.”
“어르신들이 고기를 좋아하려나.”
세세한 결정의 연속이었다.
먼 시골에서 상경하시는 어르신들부터
한창 고기 썰기를 좋아하는 친구들까지,
각자의 입맛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저희가 잘 결정할게요.”
이렇고 저렇고 의견이 난무하는 순간,
어른이 어른스러운 결정을 하겠다고 했다.
결정과 책임,
결혼은 그 과정에서 어른과 아이를 구분 짓고 있었다.
새벽부터 이어진 준비.
인사, 그리고 또 인사.
“이 분이 이종사촌 형님의 아들이야.”
“저분은 외할머니 오촌 동생이고.”
생전 처음 뵙는 분들에게 연신 감사 인사를 드렸다.
부모님이 뿌려둔 씨앗의 결실 같은 하객 줄은 끝이 없었다.
“워~~~”
“우~~~”
애와 어른의 중간쯤, 사회 초년생 친구들은
환호와 야유의 경계쯤 되는 소리를 내뱉으며 내 어깨를 밀쳐댔다.
입꼬리를 걸친 채 버진로드를 걷고,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반나절의 준비, 두어 시간의 결혼식이 그렇게 막을 내렸다.
몇 해 전 대전에서 시작된 레이스는
결혼식장 입구의 결승선에 다다랐다.
달아버린 체력에 나가떨어질 즈음,
그제야 깨달았다.
결승선이라 믿었던 그곳이,
사실은 출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