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들빼기김치가 맛있어졌다.

아버지의 음식

by 박희종

" 어머니, 하루 전날 오셔서 우리 집에서 주무시는 게 어때요? 아이도 자주 못 보시는데, 그게 좋을 것 같아."

돌잔치 전날. 아내가 조금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아이를 자주 보지 못하는 어머니를 위해 하루 먼저 모시자고 했다. 시어머니가 집에 오시고 하루 주무신다는 것이 얼마나 신경 쓰이고 번거로운 일인지를 알고 있는 나는 그 말이 엄청 고맙고 또 고마웠다.

아내는 어머니가 오시기 며칠 전부터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육아를 핑계로 정리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치우기 시작했고, 어머니가 오시면 식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계속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원래는 보통 사 먹으면 된다 생각했지만,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돌잔치도 가족만 공간을 따로 빌려서 간단히 식사하는 상황에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듯했다.

"우선 어머니 오시면 냉장고에 있는 보리굴비 구워드리고, 국이랑 밑반찬 좀 차리면 되지 않을까?"

우리가 맛있게 먹었던 보리굴비를 대접해드리고 싶다는 아내는 보리굴비를 메인 메뉴로 정하고, 나머지는 처갓집에 가서 미역국과 각종 반찬을 바리바리 싸오고야 말았다.

어머니가 오시던 날. 나는 회사에 반차를 내고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왔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할머니의 마중을 나갔다. 시외버스를 타고 오신 어머니는 아이를 보자마자 너무 좋아하시며 아이를 이뻐하셨다.

" 오빠, 지금 집 정리가 좀 안됐으니까, 쪼금만 시간 좀 끌고 모셔와요. 부탁해."

집에서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던 아내는 어머니가 조금 일찍 도착하시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내의 특명을 받은 나는 아이 돌상을 핑계로 마트도 잠깐 들리고 근처에 옷가게에 가서 어머니와 아이의 옷도 샀다. 그리고 내일 아침으로 먹을 빵까지 좀 사고 나니 아내에게 이제 와도 된다는 연락이 왔다.

집안에 들어서자 집은 오랜만에 신혼집의 느낌으로 변해있었다. 육아로 조금은 어수선하던 것들이 모두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화장실 청소까지 다 되어 있는 상태였다. 아내는 조금은 지쳤지만 그래도 아주 밝은 표정으로 어머니를 맞이 했고, 안부도 묻고 아이자랑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의 재롱을 보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시간이 다가와서 어머니가 아이를 봐주시는 동안 아내와 내가 함께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아내는 처갓집에서 공수해온 미역국을 데우고 반찬들을 담았고, 나는 보리 굴비를 굽고 명란젓갈을 넣어 계란찜을 했다. 그렇게 차려진 저녁상은 꽤 근사했고, 어머니도 아주 좋아하셨다.

그렇게 맛있게 먹던 중에 나는 문득 고들빼기김치가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처갓집에서 내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보시고는 아내의 할머니께서 챙겨 주신 것이었다. 어머니와의 식사에서 고들빼기김치를 보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엄마. 나는 고들빼기김치만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나요 엄청 좋아하셨잖아. "

"그렇지. 좋아했지."

아버지는 고들빼기김치를 참 좋아하셨다. 어머니가 가끔 담궈서 상에 올릴 때면, 큰 말씀은 안 하셔도 맛있다면 많이 드시곤 했다. 어린 시절에는 그게 뭐가 맛있는지도 모르겠고, 오히려 저걸 왜 먹는지 모를 만큼 싫어했기 때문에, 웃으시며 몇 번을 권하셔도 나는 절대 먹지 않았다.

그런 내가 고들빼기김치가 좋아졌다. 그 씁쓸한 맛에 매력을 알게 되었고, 찾아 먹지는 않아도 가끔 상에 올라오면 반갑게 느끼고 잘 먹고는 한다.

나는 어느새 내가 태어날 무렵의 아버지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도 되었다. 그래서 점점 아버지의 음식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고춧가루를 얼큰하게 뿌린 동태찌개는 나의 소울 푸드가 되었고, 참기름을 발라서 구운 더덕구이는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인다. 아버지가 그냥 젓갈로 드시는 걸 좋아하셨던 명란젓갈을 나는 파스타로, 아보카도 비빔밥으로 다양하게 먹고 있지만, 그 콤콤한 냄새를 너무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어느새 아버지가 되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었다. 항상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밥만 먹던 막내아들이 어머니를 위해 상을 차리게 되었고, 아버지의 맛이라고 생각했던 고들빼기김치가 맛있어졌다. 나는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나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우리 아이도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함께 좋아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가 온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해주어야 하는 것보다 내가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슬프고 쓸쓸한 일이지만, 알고 있다. 반드시 온다는 것은.

그래서 지금 어머니께 차려드리는 이 밥상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어머니도 정신없이 사시다 보니 어머니가 되고, 할머니가 되신 거란 걸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차피 우리에게도 다가올 시간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조금은 늦게 조금은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 이쁜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해줄 있으니, 그래야 우리 부모님들께 좀 더 많은 밥상을 차려드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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