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주 많은 사람들의 성향분석을 진행한다. 주로 3~40대가 많고 간혹 20대가 섞여 있거나 50대 이상의 분들도 1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다. 내가 진행하는 성향분석은 TA(교류분석)로 사람에게 누구에게나 있는 부모 자아/성인 자아/아이 자아를 통해 그 사람의 성향을 분석해보는 진단 방법이다. 내가 이 분석을 진행하면서 항상 제일 가슴 아픈 사람들은 자기를 잃어가는 사람들이다.
주로 50대 이상의 어머니나 아버지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특성이 긴한데, 주를 이루는 3~40대에게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간혹 2~30대 젊은 친구들에게도 나타난다. 그런 성향의 사람을 [상대방 중심 자기희생형]이라고 이야기한다
[상대방 중심 자기희생형]의 특징
1. 남들의 요청에 거절하거나 부정적인 의사표현을 하지 못한다.
2. 다른 사람에게 지적이나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한다.
3. 남들을 잘 배려하며, 나를 희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4. 남들의 말을 잘 들어주며, 공감을 잘해준다.
5. 계산적이거나 전략적이지 않고, 관계 지향적이다
6. 자신의 욕구나 의지가 약하거나 표현하지 않는다.
7. 나의 의견은 항상 후 순위로 밀리고 남들의 의견에 따라간다.
8.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고, 행동이나 말에 신경을 많이 쓴다
9. 귀가 얇고 다른 사람들에게 끌려 다닌다.
10. 소극적이며,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런 성향의 사람들이 가장 가슴 아픈 이유는 우리 어머니도 이렇게 살아왔으며, 젊은 시절의 우리 누나들도 이렇게 살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에게 항상 하는 질문이 있다.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해도 좋고요. 일주일 혹은 한 달을 기준으로 잡아도 좋습니다. 하루 혹은 한 달 중에 온전히 나만을 위해 쓰는 시간은 얼마나 됩니까? 가족과 함께하는 것 말고 지극히 개인적인 즐거움을 위해 쓰는 시간을 말하는 겁니다."
"또 한 달 수입을 기준으로 나의 수입 중에 오직 나만을 위해 쓰는 비용은 얼마나 됩니다. 당연히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나 여행은 제외하고 오직 나만을 위해 쓰는 개인적인 비용 말입니다"
TA진단에서 [상대방 중심 자기희생형]의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하면 그 사람들은 오래 생각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굳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금방 알기 때문이다.
"거의 없다"
모두 다 아는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해 소비하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이 질문을 하자마자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더러 계신다. 이미 내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다.
"아! 지금 내 삶은 내 것이 아니구나"
내꺼하자!
내 인생을 100%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100%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자기의 삶을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이 이미 그 세대들을 위해 희생을 해온 이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거나 혹은 철없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삶을 중시하는 그들은 이미 남들의 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의 삶의 즐거움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제 와서 그렇게 살아가기는 힘들 수밖에 없다. 이미 나에게 묶여 있는 책임이라는 그물은 웬만큼 큰마음을 먹지 않고서는 쉽게 끊어나갈 수 없고, 정말 힘겹게 그 그물을 나간다고 하더라도 이미 우리에게는 또다시 넘지 못하는 양식장의 그물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 양식장의 그물을 우리의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오랜 시간 나를 위한 사고를 하지 못한 나의 습관.
돈이 생겨도 시간이 생겨도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우리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먼저 생각하게 하는 우리의 슬픈 습관은 그물이 찢겨 나간다고 해도 같은 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의 목표가 지금 젊은 세대가 말하는 욜로의 삶도 아니며, 모든 사람을 모른척하고 홀로 맘껏 사는 프리 한 삶도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작은 연습이라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욜로의 삶이 아닌 최소한의 나의 삶을 위하여
1. 내 돈 만들기
비상금이 아니다. 오직 나만을 위해 쓰는 돈을 이야기한다. 그러니 많지 않아도 된다. 담뱃값, 모임에 참석하는 회비 등은 제외한다.(담뱃값은 이미 습관적 비용이지, 새로운 즐거움의 비용이 아니다. 만약, 새로운 시가를 피어보는 게 즐거움이라면 그런 경우는 해당한다.) 그냥 나의 즐거움만을 위해 나만을 위해 쓰는 돈. 예를 들면 1주일에 한 번 정도 혼자 영화 보는 비용, 내가 읽고 싶던 책 값 (만화책, 잡지책도 좋다) 의류/신발/액세서리, 요즘 핫 한 음식이나 간식도 좋다. 많지 않은 돈 한 달에 1~5만 원 정도의 돈이라도 좋으니 정말 나를 위한 돈을 만들고 쓰자.
단, 모으면 안 된다. 나를 위한 적금을 들어 제대로 써야지 라고 생각해도 결국은 목돈이 되었을 때 가족을 위해 나갈 확률이 높다.(이 역시 슬픈 습관이다.) 내 돈의 의미는 소비에 있다. 아주 적은 금액이어도 온전히 나를 위해 써보자. 그러한 습관이 나의 삶을 조금은 즐겁게 만들 수 있다.
ex) 예를 들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케이크가 있는데 너무 비싸서 항상 사서 아이들만 주고 나는 맛만 보고 했다면, 한 번쯤 그 케이크를 사서 나 혼자만 오로지 먹어보는 것이다.
2. 내 시간 만들기
어쩌면 내 돈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하루의 시간은 이미 너무 빡빡한 스케줄이 잡혀 있고, 나 혼자만의 시간을 만든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힘들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루 중에 일정 시간이면 제일 좋겠지만, 안된다면 1주일에 일정 시간 혹은 한 달에 일정 시간을 갖는 것이라도 하자. 이 역시 돈과 같이 소비가 중심이다. 나만의 시간 소비, 차에서 낮잠을 자도 좋고, 영화나 음악을 들어도 좋다. 운동도 좋고, 가벼운 산책이나 도서관에 가는 것도 좋다. 중요한 포인트는 잊는 것이다. 가족도 일도 삶의 무게도 그냥 멍 때리며 낭비하는 시간. 이쩌면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보약은 무료함일 수도 있다. 일터에서의 치열함과 가정에서의 북적거림에서 아주 잠시만 벗어나 보는 것 그게 나만의 시간소비의 포인트이다.
ex) 한 달에 한 번 친구들과 당구 모임 갖기 (딱 4시간)
3. 내 공간 만들기
나의 돈과 나의 시간이 생겼다면 마지막으로 나의 공간을 만드는 것도 좋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나의 공간이 오피스텔이나 원룸처럼 정말 거창한 나만의 공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맘을 쉴 수 있는 공간,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공간, 작게는 화장실이 될 수도 있고, 건물 옥상일 수도 있다. 집 앞 공원의 특정 벤치여도 좋고, 퇴근 후 집에 들어가기 전 주차장 차 안 일 수도 있다. 내 맘을 쉴 수 있는 공간 , 다른 사람은 모르는 나만의 공간, 우리 동네에서 달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 나 경치가 좋은 자리 등. 내가 조금이라도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스스로에 대한 위안이 좀 더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ex) 매주 수요일 퇴근길에 햄버거 세트를 하나 사서 퇴근길에 집 근처 공원에서 차를 세우고 햄버거를 먹으며 내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한편만 딱 보고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누군가의 희생을 먹고 자란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순간을 만나게 되면 우리 역시 그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어쩌면 과거부터 이어져온 내리사랑이 이어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의 희생이 당연해질 수는 없다. 게다가 요즘에는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 과거의 우리 부모님들은 부족한 환경 속에서의 희생이었지만 지금의 환경은 훨씬 더 넉넉하다. 즉, 과거에는 희생의 받은 사람들이 그 희생의 가치를 알기 좀 더 다행이었다. 그래서 더 많이 고마워했고, 보답을 해야 한다는 마음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받는 입장에서 희생인지 잘 모르거나 당연하다 여길 수 있다. 왜냐하면 희생에서 압박으로 이어지는 상황들이 생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공부를 더 하고 싶어 부모의 희생으로 어렵게 대학을 다니던 고학생들이 아니라 나보다는 부모의 욕심으로 인해 부모가 더 적극적으로 자녀의 학업에 집중하여 학업을 이어가는 지금의 학생들이기 때문에 희생에 대한 고마움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희생하더라도 그래서 내가 우선이 아닌 삶이 라고 하더라도 고맙다는 말이나 보상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정말 삶의 작은 조각 정도는 내 것으로 간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별거 아닌 돈 만원, 하루 중에 나만의 1시간이라고 할지라도 나 스스로의 최소한의 삶을 만들어야 나중에 허무한 마음을 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가장 슬픈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살아왔기에 그대 에게 보답하여야 한다는 부채감과 아직은 이루지 못한 나의 꿈은 접어둔 채 자식들의 새로운 꿈을 위해 자연스럽게 희생해가는 세대. 우리는 부모의 희생을 모른척할 만큼 모질지도 못하고, 자식의 미래를 등한시할 만큼 무심하지도 못하다. 그렇다면 최소한 나중에 억울하지는 않게 내 거 하자
내꺼하자. 아주 작은 삶의 조각이라도
내꺼하자. 잊고 있던 꿈의 조각이라도
내꺼하자. 내가 중심이 아닌 나의 삶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