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온라인 게시물 중에 아주 충격적인 글을 발견했다. 이모와 조카의 대화였는데
대화가 끝나는 시점에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이모 : 우리 OO는 커서 뭐가 될 거야?
조카 : 나 선생님!!
이모 : 아 그렇구나
조카 : 그럼 이모는 커서 뭐가 될 거야?
이모 : (당황하며) 어? 아 이모는 다 컸잖아
조카: : 어? 그럼 이모는 커서 뭐가 된 거야?
"이모는 커서 뭐가 된 거야?" 만약에 나의 딸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나는 그 순간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그 게시물의 수많은 댓글들은 나와 같이 당황한 감정들을 풀어내고 있었다. 내 상황을 살짝만 생각해봐도 소름이 돋는다.
딸 : 아빠는 커서 뭐가 된 거야?
아빠 : 어? 아빠는 팀장이 됐어!
딸 : 그럼 아빠는 어릴 때부터 팀장이 되는 게 꿈이었어?
나 : 어?
아니다. 결코 나의 꿈은 평범한 직장인도 팀장도 아니었다. (물론 평범한 직장인이나 많은 팀장님들을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과정이 부끄럽지도 않고 지금 나의 위치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의 내 모습이 나의 꿈이었냐고 묻는다면 100번을 물어도 1000번을 물어도 절대 아니다. 그럼 나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뭐가 되고 싶었지?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고 있다. 아니다 지금의 내 모습은 아니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저 대화에 당황하고 맞지도 않았는데 심하게 아픈 이유는 어쩌면 저 '꿈'이라는 단어가 혹은 나의 꿈을 묻는 상황이 너무도 오랜만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저런 질문을 들었던 것은 아주 어릴 적이다. 우리 스스로도 주변의 많은 어른들도 우리가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던, 아니 믿고 싶었던 그 오래전이다. 그리고 그 시절에는 우리가 무슨 대답을 하던 어른들은 기뻐하며 응원해주었고 우리도 꿈을 이룬 듯이 으스대며 기뻐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질문들이 점점 현실과 마주하고 우리의 능력에 비치기 시작하면 목표라는 단어로 자연스레 변하게 된다. 그리고는 훨씬 냉정한 질문으로 달라져서 다가온다.
" 너는 어느 학교를 가는 게 목표니?"
" 너는 어떤 과를 가고 싶어?"
막연했던 꿈이 구체적인 현실들과 직면할 때 우리는 압박을 받는다. 그리고 그 압박은 누군가에게는 견뎌야 하는 스트레스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피하고 싶은 공격이 된다. 그러한 과정을 겪으며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는 아직도 아이들에게는 천진난만한 꿈을 묻고 있지만, 우리의 꿈은 쉽게 꺼내려하지 않는다. 이미 현실과는 먼 이야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또 한 가지 '꿈'이라는 단어가 부담스러운 이유는 결과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은 언제나 불안하고 흔들린다. 지금 나의 자리가 언제까지 나의 것일지 모르고 많은 과정에서 수없이 무너지고 뒤 쳐 저버린 선배들을 보았다. 지금 나의 모습이 결과라고 말을 하기에도 아직 더 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하기에도 애매하다. 그래서 저 질문이 불편한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나는 우리가 다시 꿈을 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버겁기 때문에 순간순간의 과정이 모두 불안하기 때문에 그래서 바닥만 보고 걷다가 자꾸 부딪치고 다치기 때문에 다시 꿈이라는 그 말랑말랑한 단어가 필요한 것이다.
자전거를 넘어지지 않고 타기 위해 시선을 멀리 두고 발을 구르듯이 조금은 먼 시선이 필요하다. 하루를 살고 한 달을 버티기 위한 삶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해 조금 더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 그리고 그 과정을 행복하게 즐기기 위해 우리에게 새로운 꿈이 필요하다. 그것이 내가 구체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계획이어도 좋고, 막연하게 상상하는 머릿속의 청사진이어도 좋다. 적어도 내가 살아가는 이유, 내가 견디는 명분, 내가 희생하는 목적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면 적어도 하루하루가 조금은 덜 퍽퍽하지 않을까?
"나는 아직도 세계일주를 하고 싶어"
"지금 다시 노래를 하면 가수가 될 수 있을까?"
"빨간색 스포츠카를 타고 해변도로를 달리고 싶어"
" 나는 꼭 건물주가 되고 말 꺼야"
어떤 꿈이라도 좋다. 어릴 적 꿈이 이어지는 것이어도 좋고, 내가 항상 부러워하던 삶이어도 좋다. 심지어 아주 사소하게 "내년에는 피아노를 배워야지"와 같은 취미여도 좋다. 우리는 다시 꿈을 꾸어야 한다. 아니 다시 꿈을 꿀 수 있다.
나는 만약 내 딸이 "아빠는 꿈이 뭐야?"라고 묻는다면 "좋은 작가가 되는 거야"라고 대답할 것이다. 비록 지금은 나의 책임들과 삶을 위해 글을 쓰는 일보다는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이 더 많지만 그래서 정작 하루에 글을 쓰는 시간이 고작 10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의 나의 삶들이 나중에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내공을 쌓고 있는 것이고, 더욱 좋은 환경에서 글을 쓰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고, 작가가 되어서도 가족들과 계속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며, 나보다 더 소중하게 느끼는 딸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위해 내가 먼저 꿈을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는 과정이라고 꼭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