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eki Lee Jun 30. 2022

비주류의 변

술을 잘 마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퇴직 후 글쓰기에 입문했다. 사십여 년간 직장을 다니며 생업을 위한 글을 썼었는데 이제는 온전히 나를 위한 글을 쓰고 싶어서다. 엔지니어 출신이라 문장이 투박한 것이 도무지 맵시가 나지 않았다. 시를 배워 보면 글이 유려해질까 해서 안도현 시인의 시작법詩作法 책을 한 권 샀다. 첫 장에서 그는 ‘주력酒力은 필력筆力’이라며 “좋은 글을 쓰려면 술을 많이 마셔야 한다.”라고 권고한다. 또한 “마시기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술을 권하지 않으나 그런 사람과 상종할 일은 별로 없다.”라고 첨언한다. 난감한 일이다.


내 별명 중 하나는 ‘알코올 감지기’였다. 어떤 이는 ‘알코올 리트머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소주 한 잔만 마셔도 목까지 빨갛다 못해 온몸이 홍인종으로 변하는 ‘선천성 알코올 거부증’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게다가 맥주 효모 알레르기가 있다. 겨우 맥주 한두 잔 마시고 그 자리에서 쓰러진 적도 몇 번 있다. 한 번은 넘어지다 탁자 모서리에 눈언저리가 찍혀 응급실에서 일곱 바늘이나 꿰맸다. 술도 못 마시는 주제에 주종마저 가리는 민폐를 끼치게 된 것이다. 타고난 비주류라고나 할까. 알코올에 약한 체질과 부족한 사회성 때문에 나는 술자리가 힘들고 어려웠다.


처음 술을 마셔본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방학 때, 경남 진영에 사는 친구네 집에서였다. 서울 친구가 왔다고, 그 동네 고3 녀석들이 다 모였다. 친구는 어머님이 아끼던 커다란 담금주를 한 통 내놓았다, 매실주였는지 더덕주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달콤한 것이 요것은 좀 만만했다. 촌놈들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에 몇 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갑자기 하늘이 뱅뱅 돌면서 속이 메슥거렸다. 결국 참지 못하고 방바닥에 큼지막하게 빈대떡을 부쳐 놓았다. 그 친구는 이후 술자리에 나를 부르지 않았다. 


20여 년 전의 직장 회식은 단순한 회식이 아니라 업무의 연장이었다. ‘술 잘 마시는 놈이 일도 잘한다.’라는 이상한 논리가 팽배했다. 일단 회식이 시작되면 엄숙한 종교의식 치르듯이 소맥 폭탄주를 말았다. 어느 지랄 같은 놈은 소주 팔십에 맥주 이십이라는 살인적인 소맥을 제조해 나를 기겁하게 했다. 순서대로 한숨에 들이킨 후 머리에 빈 잔을 터는 의식으로 시작된 회식은, 한 사람당 소주 두 병을 마셔야 마무리되었다. 상사가 권하는 술잔을 거절하다간 예절을 잘못 배웠다는 타박을 들어야 했다. 잔 돌리는 상사보다 숨겨놓은 사발에 술 버리는 나를 고자질한 동료가 더 미웠다.


‘술은 마실수록 는다.’라는 말은 맞는 것 같다. 적응하려고 기를 써보기도 했다. 사회 초년기엔 소주 한 병쯤 마시고 속이 거북해지면, 몰래 화장실 가서 토하고 다시 악으로 마셨다. 하루는 친구 부친상으로 장례식장에서 만만한 녀석들과 모였다. 전작이 있는 상태에서 마음을 열고 편하게 여러 잔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다음날 알게 된 사실은 내가 평소 감정이 좋지 않던 한 친구에게 심한 행패를 부렸다는 것이다. 충격이었다. ‘아~ 나는 술 마실 자격이 없는 놈이구나.’ 그 후로 확고한 비주류 대열에 합류했다. 


시끌벅적한 회식보다는 편안한 사람들과 나긋나긋하게 이야기 나누는 것이 좋다. 술자리에서 목청 큰 사람이 화제를 독점하면 거부감이 들기 시작한다.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회식 말기쯤이면 시계를 슬며시 쳐다보게 된다. 술자리에서 상사의 억지 훈계를 듣는 것도, 상습적으로 주량을 초과하는 동료의 고성을 듣는 것도 고역이었다. 이따금, ‘취한 김에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라면서 시작하는 아래 직원의 넋두리도 싫었다. 왜 술을 마셔야만 마음속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을까. 산책하면서 또는 차 한 잔하며 이야기하면 안 될까. 언젠가 동료에게 이런 마음을 털어놓자 사회성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했다. 현장에는 어울리지 않으니 다른 길을 찾아보라고 권고하는 이도 있었다. 


세월이 흘러 나도 회식을 주관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보복이 시작되었다. 독재라고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일단 회식을 대폭 줄였다. 가능하면 그것도 점심 회식으로 했다. 오후 다섯 시만 되면 어떤 술을 마셔볼까 입맛을 다시던 일부 직원의 불만은 컸다. 가물에 콩 나듯 한 저녁 회식도 무조건 1차로 마감했다. 그나마 술잔 돌리기는 엄금이었다. 굳이 2차를 원한다면 동호인끼리 가거나 커피 한잔 마시는 것으로 대신했다. 지금이야 이런 회식이 보편적이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이상한 놈이라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퇴직 후 2년이 훌쩍 지났다. 아무 생각 없이 당분간 여행을 다니겠다고 다짐했지만, 느닷없는 코로나 사태로 집안에만 붙어있다. 이전 직장동료나 친구 만나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외로울 때도 있다. 하지만 술 생각은 1도 나지 않는다. 이따금 술을 한 모금 마시면 역한 느낌에 도로 뱉어낸다. 직장 다닐 때는 본의 아니게 몇 잔 마시기도 했지만, 퇴직 후 술을 마셔본 기억이 거의 없다. 조금도 불편하거나 아쉽지 않다. 주당들이 이 글을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별종이라고 혀를 차겠다.



술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술을 음식으로 생각하는 우리나라는 술 문화가 더 관대하다. 술 취해 저지른 죄마저 ‘심신 미약’, ‘주취 감경’이라는 희한한 용어로 약하게 처벌받는다. 술이 몸에 받는다면, 건강을 해치지 않고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마셔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세금을 많이 내 국가 재정에 이바지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 해도 나 같은 비주류도 ‘술 싫어. 안 마실래.’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동등하게 조성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오늘따라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요리용으로 사다 놓은 소주와 와인이 눈에 들어온다. 한 잔 먹어볼까 고민해 보지만, 그 시인은 “술이란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매개이지 혼자 마시는 술은 절대 안 된다.”라고 못 박는다. 나란 놈이 좋은 작가가 되기는 애당초 글렀는가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옥살리스와 국화는 너무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