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도 모르고 방울토마토를 열 포기나 심었는데, 텃밭에 갈 때마다 비닐봉지 한가득 따온다. 말려서 냉동실에 보관하거나 올리브유에 재워 놓기도 하지만, 아내와 나 둘이서 다 소비하기 힘들다. 결국 실한 것만 골라 이웃집에 나누어 준다.
유기농이냐고 묻는 말에 대답이 궁하다. 사실은 화학비료를 쓰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분양하는 텃밭은 매년 같은 장소에 얻기가 어렵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누가 경작했는지도 모르는 땅을 올 초 분양받아 텃밭을 꾸렸다.
20평의 텃밭에는 다양한 먹거리를 재배한다
땅의 이력을 모르기 때문에 3월 초, 밭을 갈기 전에 퇴비와 함께 작물에 맞는 비료를 뿌려주었다. 밭을 간 후, 시기에 맞춰 상추, 샐러드 거리, 고추, 가지, 토마토, 감자, 대파 등의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사 와서 심었다. 작물의 성장과정에도 영양이 필요하기 때문에 때 맞춰 비료를 주었다. 유기질 비료도 주지만, 인, 가리 등의 양분도 필요하므로 화학비료도 섞어 주었다.
3년 이상 화학비료와 농약을 치지 않은 땅에서 키운 농산물이 유기농이다. 농약을 쓰지 않고 화학비료를 권고 량의 3분의 1 이하로 사용하면 무농약, 화학비료와 농약을 권고 량의 절반 이하로 쓰면 저농약 농산물로 구분한다. 대개 유기농과 무농약을 친환경 농산물이라고 한다.
마트의 친환경 농산물 코너에 가보면 유기농보다는 무농약 농산물을 만나게 될 확률이 높다. 이 기준으로 보면 내 텃밭의 작물은 무농약 농산물에 가깝다.
친환경 농산물 인증 마크
“아니 화학비료를 쓸 거면 왜 수고스럽게 텃밭을 해요?”
유기농 신봉자는 아니다. 지금 세계 인구가 80억에 육박하고 있고, 30년 뒤에는 100억을 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1925년에 20억을 넘었으니 불과 100여 년 만에 세계 인구가 4배로 늘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먹고사는데 화학비료가 기여한 바는 절대적이다. 비료가 없었다면 인구가 그렇게 증가하지 못했을 것이고, 식탁도 지금보다는 많이 빈약했을 것이다.
고추만 해도 텃밭에서 친환경으로 얻을 수 있는 수확물은 풋고추 정도다. 장마철이 되면 빨간 고추가 되기 전에 대부분 탄저병이나 고추 무름병이 돌아 못 먹게 된다. 일주일에 한 번 농약을 치지 않으면, 내다 팔 수 있는 고춧가루를 생산하기 힘들다고 한다. 가족이 먹을 정도의 소규모가 아니면 유기농 고춧가루는 꿈도 꾸지 못한다. 물론 고집스레 유기농 고춧가루로 장을 담가 파는 분들도 있기는 하지만, 비료와 농약을 무조건 배척하기 어렵다.
상업적으로 재배되는 작물은 누가 언제 얼마만큼의 비료와 농약을 주고 키웠는지 정보를 알기 어렵다. 유기농 인증을 받고도 농사에 실패하여 인증을 반납하거나, 농약이 검출되어 인증을 취소당하는 농민이 많을 걸 보면 유기 농산물 재배가 어렵기는 한 모양이다. 게다가 수확해서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대개 이틀 이상 걸리기 때문에 덜 싱싱한 것을 먹게 된다.
내가 텃밭을 시작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침으로 꼭 샐러드를 먹는 가족의 식탁에 믿을 수 있는 샐러드 거리를 올리고 싶어서였다. 물론 시장이나 마트에서도 농산물을 산다. 그때 나는 색이 선명하고 싱싱한 것을 고른다. 유기농보다는 비료와 농약을 듬뿍 주고 키웠을 가능성이 큰 것들이다.
농사 초보가 유기농 재배에 도전하기는 어렵지만,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건강에 도움이 되는 농산물을 직접 키워 싱싱한 상태로 식탁에 올리고 싶다. 비록 화학비료로 키웠지만, 과하게 주지 않고, 농약도 사용하지 않아 마음이 놓인다.
요즘 농약은 광분해성이라 1주일이면 없어진다고 하지만. 내 마음에는 예전의 ‘먹으면 죽는다.’는 맹독성 농약이 지워지지 않았다. 무농약 재배가 지금의 현실에는 최선인 것 같다.
남는 텃밭 수확물은 말려서 보관한다
시골에 집을 지을 준비를 하고 있다. 9월에 착공해서 내년 초에는 귀촌할 수 있을 것 같다. 쌀과 같은 주식이나 고춧가루는 계속 사 먹겠지만, 푸성귀는 조그만 텃밭을 일구어 직접 길러 먹고 싶다. 내 땅이니까 퇴비도 듬뿍 주고 땅을 잘 관리해서 제대로 된 유기농법으로 키우고 싶다.
오늘 저녁에도 아내는 텃밭에서 따온 고구마 줄기, 부추, 가지, 풋고추로 나물을 만들어 주었다. 모두 무농약 농산물이다. 시장의 농산물보다 볼품없지만, 갓 수확해서 그런지 아삭아삭한 식감이 좋고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