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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정 Jun 21. 2024

집이 없는 이 대리가 출근하는 방법

나는 이제 어떤 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고 어떤 것의 주인도 아니다

나의 처참한 일주일은 다음과 같다. 월요일 아침에 지옥의 알람을 듣고 남의 집에서 눈을 뜬다. 고개를 돌리면 내가 마신 적 없는 빈 맥주캔이 나뒹굴고 있다. 내가 모르는 물건들이 집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이 집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집뿐이랴, 나는 이제 어떤 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고 어떤 것의 주인도 아니다.


집주인은 도대체 언제 맥주를 마신 것인가? 어젯밤에 집에 들어오기는 했나? 혼란에 빠져있을 때 다시 알람이 울린다. 제발 돈을 벌러 가라는 알람이다. 


이쯤 되면 일어나야 한다. 입고 있던 남의 잠옷을 벗어던지고 남의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한다. 욕실에 즐비한 낯선 샤워용품 중 요즘 내가 쓰고 있는 것만 조심스럽게 사용한다. 집주인은 바디샤워를 또 바꿨다.


남의 집에서 회사로 출근할 때면 언제나 쫓기는 듯 불안하다. 모든 것이 어설프고 어중간하다. 내 손에 익숙한 드라이기도, 몇 년째 써 오던 스킨도, 계절에 어울리는 옷도 없다. 


나는 작동법이 기분대로 바뀌는 (집주인 닮은) 드라이기로 머리를 대충 말리고, 남의 욕실에 굴러다니는 스킨을 대강 바르고, 직원들이 모른 척해주기를 바라며 어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일 년 내내 같은 배낭을 메고 출근한다. 덕분에 회사에서 나는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검소한 사람이 되었다("이 대리 드디어 저축하는구나!"). 


사람들은 내가 배낭에 회사 서류나 아이패드를 넣고 다닌다고 생각하지만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누가 그런 걸 짊어지고 다닌단 말인가. 그래서 내 배낭에는 여권, 도시락 폭탄, 여벌의 옷, 비상약, 주머니칼, 건전지 등이 들어있다. 


회사에 가면 먼저 최 부장이 보고받기 좋아하는 서류를 작성하고, 그 뒤에 모두가 화를 내서 누구의 업무분장에도 넣기 애매한 일들을 처리한다. 한때는 회사를 신경 써야 하나 고민했는데, 최 부장이 나를 신경 쓰는 만큼만 나도 회사를 신경 쓰기로 마음먹었더니 모든 번뇌가 사라졌다.   


퇴근 후에는 시외버스를 타고 낯선 도시로 가서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모르는 지방으로 건너가 커피를 마신 뒤, 자정이 되면 다시 남의 집으로 기어들어와 잔다.


그렇게 금요일까지 일주일 내내 옷 두어 벌을 돌려 입고 출근하고("이 대리 드디어 집 사려고 그러는구나!"), 퇴근하면 언제나 생경한 도시에서 밤을 보낸다.


토요일이 되면 출근하는 평일보다 더 일찍 일어난다. 고속버스를 타고 외진 산골로 가 점심을 먹고, 하드를 하나 물고 정류장에 앉아 바다를 본다. 생소한 골목에서 마을 사람들 사이에 끼어 저녁을 먹고, 시골에 한 대 있는 낡은 열차를 기다리며 커피를 마신다. 처음 보는 동네를 수 킬로미터 걸어 야경을 본 뒤, 밤비행기를 타고 들어본 적도 없는 지방으로 가서 대충 잠을 청한다.


따라서 일요일 아침에는 생경한 동네에서 일어나야 하지만 이쯤 되면 더 이상 큰일이 날 것도 없다. 숙소에서 나오자마자 눈에 보이는 마을버스를 잡아타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기차역에서 내린다. 기차역 주변의 조용한 박물관에 들어가 오래된 유물 앞에 한참을 서 있는다. 밤이 되면 KTX를 타고 다시 남의 집으로 기어 들어와서 잔다. 조선 팔도 각설이도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음 날, 월요일을 알리는 알람이 울리면 나는 이불속에서 간신히 눈만 뜬 채 내가 모르는 빈 맥주캔을 노려본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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