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마감이 끝나고 신춘문예를 투고한 뒤의 일주일은 무척 평화롭다. 보고 싶었던 넷플릭스를 떡볶이까지 배달시켜 세상 즐겁게 보고, 마감 전까지 약속을 잡지 못했던 친구를 편안하게 만나고, 죄의식 없이 침대에 뒹굴거리며 유튜브 쇼츠만 내리기도 한다.
놀아도 괜찮다. 나는 2025년 신춘문예에 투고했으니까. 나라는 인간이 올해 해버린 일 중 가장 사람다운 일이다. 집과 회사만 왔다 갔다 하는 껍데기 같은 유령이 아니라 주체적이고 성취적인 사람이 (잠깐동안) 된 것이다. 직장인이 시달리는 온갖 피로와 핑계와 유혹에도 중도 포기하지 않고 투고하는 것은시간을 통제하고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일 뿐 아니라 일 년간 달력에 표시해 둔 투두리스트에 삭선을 긋는 쾌감까지 얻는 작업이다.
일주일이 지나면 '이번에 당선되면 일단...'의 고뇌가 시작된다. 코딱지만 한 상금으로 먼저 노트북을 구입하고 교보문고 장바구니에 처박아두었던 책을 좀 사야겠다. 남은 돈은 엄마에게 줄까? 아니다, 쓸 거 다 쓰고 남는 돈 주는 효자가 될 수는 없다. 그런 불효를 하느니 안타깝지만 상금은 내가 다 써야지.
이주일이 지나면 카페에 슬슬 전화를 받았다는 간증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서울신문 전화 돌렸나요? 조선일보 끝났습니다. 경향 이렇게 갑작스럽게 통보됐다고요?
식물처럼 차분한 사람들만 모인 글 쓰는 카페가 시장통이 되는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순간이다. 이번에도 그 심사위원이라는데 이제는 심사위원을 바꿀 때도 되지 않았나요? 신춘문예 당선 기준이라는 게 뭔가요? 저 9수째인데 혹시 9수하시는 분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