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농담하지 마세요. 저 오늘 저녁에 정말 글 쓸 거예요. 신춘문예 이제 다 마감된다고요. 소설 분량 아직 반도 못 채웠어요."
"무슨 소설인데요?"
"... 그냥 주인공 인생이 잘 안 풀리는..."
"이 대리 전공이네요. 기차에서 써요."
"기차에서 어떻게 써요!"
"그럼 인생 안 풀리는 사람 얘기를 집에서 따뜻한 보일러 틀고 귤 까먹으면서 씁니까?"
나는 초점 없이 휴대용 자판을 두드리며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대구행 KTX는 남의 속도 모르고 신나게 달려갔고 김해경은 옆에서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기사를 읽고 있었다.
"과장님."
"이 대리는 집중력이 참 짧네요."
"과장님은 전 여자친구들이 결혼할 때마다 기분 어때요?"
"그런 기분 느껴본 지 오래라 잘 기억이 안 납니다."
"과장님이 제 나이 때 만나던 여자친구는 이미 결혼했을 거 아니에요."
"죽었을 걸요."
인간아... 나는 혀를 차며 휴대용 자판을 마저 쳤다. 단편 소설 속 주인공은 다시 쪼그려 앉아 캔맥주에 마른오징어를 뜯어먹었다.
우리는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뭉티기 집으로 갔다. 이미 해가 지고 있는데도 뭉티기 집은 어떻게든 생고기를 먹어보고 대구를 뜨려는 서울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김해경을 알아본 식당 주인이 식탁 하나를 빼 주었다.
나는 상기된 얼굴로 김해경에게 이것이 내 인생의 첫 뭉티기임을 고백했고, 김해경은 자기에게 아무 고백도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아삭할 정도로 신선한 뭉티기와 쫀득한 오드레기를 매콤한 특제 기름 소스에 푹푹 찍어 먹고 생고기 집을 나오자 해가 완전히 져 있었다.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나는 어디선가 불어오는 대구의 더운 바람을 맞고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앞을 보자 12월이 태연하게 불고 있었다.
"이 대리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은 여행 좀 합니까?"
뭉티기에 소주를 곁들여 약간 취기가 오른 김해경이 물었다.
"인생이 안 풀리는데 어떻게 여행을 해요. 이렇게 비싼 뭉티기 사 주는 직장 상사랑 다니면 몰라. 그런데 직장 상사랑 여행 다니면 진짜 인생 망한 거긴 한데..."
"이 대리, 가자미찌개 먹어 봤어요?"
김해경이 불쑥 물었다.
"아뇨. 그건 또 어디 있어요? 근처예요?"
"내일 점심에 먹으러 갑시다."
김해경이 코트에 손을 찔러 넣으며 말했다. "여기까지 오면 그건 정말 먹어봐야 하거든요."
"... 근처라면서요."
"버스 타면 근처죠."
"대구에서 울산인데 뭐가 근처예요!"
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기차를 타고 대구로 내려온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다시 고속버스를 타고 울산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전날 먹은 뭉티기의 감동이 아직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김해경은 나를 가차 없이 대구에서 끌어내렸다.
"그리고 이 새벽부터 무슨 가자미찌개를 먹으러 가요!"
"먹어보고 얘기해요. 이 대리 소설 주인공은 아직도 잡니까? 깨워서 뭐라도 좀 하라고 해요. 방에서 오징어만 뜯고 있으니까 당연히 인생에 아무 일도 안 일어나죠."
"제 소설 주인공에 신경 끄시고 과장님 직원 복지나 챙겨주세요."
"이 대리가 왜 내 직원이에요, 사무실이 다른데."
"과장님이 저희 사무실에 수시로 들락거리잖아요!"
"당연히 그래야죠. 회사에서는 한 자리에 오래 앉아있으면 바보 됩니다. 최 부장 봐요."
울산의 가자미찌개 집은 이미 만석이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안으로 들어가자 더운 기운이 확 끼쳤다.
생가자미찌개를 한 입 맛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방아잎을 가득 넣은 가자미찌개는 새빨간 겉모습과 다르게 전혀 비리지 않았고 오히려 몹시 향긋했다. 얼지 않은 생선 살은 부드럽고 담백한 데다 국물은 뜨겁고 시원했다. 회사 앞에 있었으면 직장인들로 도떼기시장을 이룰 맛이었다.
나는 김해경이 지갑을 열기 전에 얼른 가자미찌개를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과장님, 이제 서울로 올라가는 거죠?"
"부산에서 올라갈 겁니다."
"울산이겠죠. 지금 저희 울산에 있어요, 과장님."
"울산에서 부산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이 대리."
"... 왜 그렇게 되죠?"
"저녁을 먹어야 하니까요."
"... 무슨 말이에요, 도대체 그게?"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사람들은 부산에 가면 온갖 유명한 음식을 찾습니다. 그런데 내 생각에 정말로 부산에 가서 먹어야 하는 음식은 따로 있습니다."
"아니 따로 있고 나발이고 간에 내일 출근해야 된다고요!"
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닭발을 앞에 두고 멀건히 앉아 있었다.
"이걸 먹으러 울산에서 부산까지 왔다고요?"
내가 중얼거렸다.
"이 대리가 지금까지 먹었던 건 닭발이 아니에요."
"그럼 뭔데요."
"대충 닭발처럼 느껴지는 무언가죠."
나는 닭발로 김해경의 뒤통수를 후려치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닭발이라니. 서울에 널리고 널린 데다 여자들이나 좋아하는 음식 아닌가. 세희가 노래를 불러대던 매운 닭발이 생각나 속이 쓰렸다. 홧김에 닭발 하나를 집어 들고 입 안에 넣었다. 뼈를 발라가며 하나를 다 먹을 때쯤에는 아무 생각도 없이 다른 조각을 집어 들고 있었다.
김해경이 간간히 내 소설의 주인공 이야기를 한 것도 같았는데 닭발 뒤로 모래처럼 흩어져 버렸다. 맵고 덥고 정신이 없는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집중해서 열댓 개를 먹어치운 뒤에야 벌겋게 부은 입술로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전국에 체인이 있지만 이 집이 본점입니다."
김해경이 덤덤하게 사이다를 따라주며 말했다. "어떤 분야든 원조에게는 자기만 할 수 있는 것이 있죠."
나는 서울로 올라오는 KTX 안에서 휴대용 자판으로 단편 소설을 마저 썼다.
다음 날, 회사 점심시간에 밥을 거르고 나와 신문사 건물 앞의 2025년 신춘문예함에 원고를 투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