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외롭고도 설레는 일.

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면, 글을 쓰지 마라_릴케

by 솜니오



글을 쓰며 사는 삶을 꿈꾼다는 것은
잡히지 않는 무지개를 향해 손을 뻗는 것과 비슷하다.
분명히 보이지만 아무리 깨금발을 하고 팔을 내질러봐도 닿지 않는,
이내 사라져 잔영만 남은 자리로 연신 고개를 되돌리게 되는,
그만큼 황홀하고도 또 그만큼 고독한 일.








처음엔 그저 글만 쓰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다른 거 다 포기하고서라도 글만 쓸 수 있다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도 갖고 싶은 장난감 앞에서 다급한 마음에 눈물이 터져버리는 어린아이처럼 그때 나는 한창 애가 달아 있었다. 출퇴근 중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 한 소절에도 불쑥불쑥 눈물이 솟기 일쑤였다.


그렇게 오 년 남짓.


글을 쓰며 어느 순간엔 달콤한 희망에 들뜨고 또 어느 순간엔 스스로 쓴 글의 비루함에 몸서리친다. 어느 날엔 반짝 떠오른 작은 생각을 붙잡고 궁리하다 하루를 다 보내고, 다음 날엔 수도 없이 고친 원고를 앞에 두고 바닥이 없는 심연 속으로 잠겨드는 기분에 시달린다. 어느 밤엔 다음날 해야 할 작업을 생각하며 들뜬 채 잠 못 들고, 어느 밤엔 그만 다 놓아버리고픈 유혹에 몸살을 겪는다.




글태기 또는 글럼프.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으레 그렇듯 수시로 크고 작은 글태기가 오간다. 어느 날 갑자기 머릿속이 깨끗이 비워진 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상태가 짧게는 며칠부터 길게는 한 달이 훌쩍 넘도록 지속되는 것이다. 썼다 지웠다만 반복할 뿐 끝끝내 채우지 못한 새하얀 공백을 마주하는 것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이다.


그런데 작년의 공모전 수상 후 연례적으로 찾아오던 글태기가 뜸해졌다. 나는 그 기세를 몰아 올초 한껏 텐션을 올리며 글을 써 내렸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아무런 예고도 없이 느닷없는 글태기가 찾아왔다. 이때까지 쓴 소설은 물론이고 내 나름 구상부터 퇴고까지 제법 신경을 써 쓴 소설까지 연달아 공모전에서 떨어진 뒤였다.


그날부터 나는 슬금슬금 책상을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마치 노트북이 밀어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실 한가운데의 책상을 두고서 부러 빙 둘러 다니는 어정쩡한 모양새. 그건 글에 대해 떠올리기만 해도 괴로웠던 그 당시 내 심정의 어설픈 발로였다.


그전에도 글태기로 여러 달 글에 손도 대지 못하고 지낸 적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 글을 못 쓸지언정 나는 어떻게든 다시 돌파구를 찾아내곤 했다. 새로운 공모전을 뒤지거나 빌려온 책들을 읽던 중에 자연스레 의욕이 솟으며 글을 쓸 활력을 되찾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책을 읽어도 동기부여는커녕 오히려 작가들의 글과 비교가 되면서 거듭 열패감만 커져갔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저도 모르게 변명거리를 찾고 있었다.


벌써 5년. 이제 할 만큼 하지 않았나. 재능도 애매한 것 같고.

그동안 내 나름대로 최선도 다했고, 그 결과로 상도 받았으니 이 정도 했으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내가 그만둔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도 없고(물론 동네방네 글 쓴다고 떠벌린 것이 좀 뭣하긴 했지만), 더 노력한들 전업작가로의 희망은 그저 희망으로만 끝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였다. 나는 이쯤에서 발을 빼고 슬그머니 도망치고 싶어졌다. 다리부터 허리까지 올라오는 통증으로 글에 집중은 되지 않는 데다 글을 쓰지 못하는 자괴감으로 점점 더 괴로워지고 있는 터라 이제는 그냥 다 포기하고 싶었다.


결국 나는 무기한 글을 놓기로 했다(어차피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ㅜㅜ).


그때부터 두 달 넘게 글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고 지냈다. 건강이 먼저라는 적절한 핑곗거리 덕에 심적 부담은 덜했고,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으니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다행히 다리상태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그사이 글 때문에 소홀했던 집안일에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늘리려 애썼다. 그런 하루하루도 나쁘지 않았다. 이대로 적당히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앙꼬 없는 찐빵 같은 삶.


돌고 돌아 다시 모니터의 하얀 백지를 마주하고 있다. 글에 인이 박여 안 쓰고는 견딜 수 없다 라고 말하기는 오버인 것 같고, 몸이 조금 나아지자 자연스레 마음의 여유가 생긴 때문이리라. 어느 날부터 자꾸만 노트북으로 눈길이 가고 있었다. 자판을 치지 않는 손가락이 근질거리고 뭔가 토해내지 못하는 가슴이 갑갑했다. 가족들과 있는 주말은 그나마 덜하다가도 혼자 있는 평일엔 더 증상이 심했다. 책을 읽어도 밥을 먹어도 도무지 허기진 속이 채워지지 않는 듯한 깊은 공허감.


그래, 그래서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었지. 새삼 깨닫는다.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 가족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건 글이었다.

지금의 내게 글을 쓰지 않는 일상은 앙꼬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었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하지만 손을 놓은 시간이 긴 만큼 다시 글을 잡기는 쉽지 않다. 뭘 써야 할지도, 무엇을 쓰고 싶은지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쓰고 싶다는, 뭐라도 써야 한다는 애타는 마음만 간절할 뿐. 멍하니 노트북을 보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창밖을 쳐다본다. 그때 뜬금없이 브런치가 떠올랐다.




새로운 도전. 브런치 프로젝트!


2년 전에 처음 브런치에 알게 되고 작가신청을 한 적이 있었다. 언젠가는 브런치 프로젝트를 통해 에세이를 내보겠다는 꿈도 꾸었었지만, 의욕만 충만한 채 아무 계획 없이 한 작가신청이 거절되면서 바로 포기를 했었더랬다. 사실 꾸준히 작품을 써낼 심적 여유도 없던 때였다. 언젠가 소설로 등단을 하고 난 뒤, 그러니까 제대로 소설가로 자리매김하고 난 뒤에 다시 도전해 볼 생각이었다.


이후 이따금 에세이를 읽기 위해 브런치에 들른 적은 있지만 브런치 메인으로 찾아들어오기는 오랜만이었다. 어디서부터 뭘 봐야 하나 쓱 전체화면을 훑는데 돌연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브런치 프로젝트.


순간, 나는 눈이 동그래졌다. 마치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브런치 프로젝트의 시작일이 바로 오늘이 아닌가. 어느새 가슴이 두방망이질하고 있었다. 그렇다.......Enfp 답게 나는 단숨에 새 프로젝트에 꽂혀버렸다.


곧바로 머릿속이 바빠졌다. 지금 당장 소설을 써내긴 힘들어도 에세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동안 조금씩 끄적여놓았던 글들과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두서없이 끄적여져 있었다. 그것들을 조금 다듬고 살을 붙이면 프로젝트 기간 내 최소한의 분량은 맞추지 싶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마음이 정해졌다. 나만의 에세이집.

몇 년 동안 여러 번 도전했다 포기한 일이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후 며칠 동안 에세이 주제와 목차를 구상하고 자기소개와 브런치 서랍에 넣을 글 몇 개를 작성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뒤 브런치 작가 신청 버튼을 누를 때 처음 신청때와는 좀 다른 예감을 느꼈다. 그리고 다음 날 브런치 작가 합격메일을 받았다. 나는 곧장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에세이를 쓰는 일은 소설과는 또 다른 즐거움과 괴로움을 준다. 하지만 그때그때 부침이 있는 건 매한가지라 오늘도 나는 선뜻 책상으로 가지 못하고 망설인다.


하는 수 없지. 작게 한숨을 내쉰 나는, 달달한 커피 한잔과 멋진 선곡을 준비하고는 '나'를 살살 달래 노트북 앞에 앉힌다. 어느새 화면 위로 글들이 아로새겨지고, 두어 시간 뒤면 살짝 두통이 이는 머리와 노곤노곤해진 몸이 기분 좋은 피로감을 선사한다.


그렇게 지금까지 한 달 남짓 열심히 달려오고 있다. 적어도 이삼일에 하나씩 발행하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지만, 그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걸 몸소 체험하는 요즘이다. 그래도 시월 초에는 어찌어찌 책 한 권 정도의 초고가 완성될 것 같다. 다 브런치 프로젝트 덕분이다.


우연찮게 이렇게 또 하나의 목표로 다가서고 있다. 결과야 어찌 되든 지금의 도전 자체가 내겐 의미 있는 일이다. 물론 성과가 따라와 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무엇보다 브런치로 인해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잖는가. 누구에게든 기회는 온다고 한다. 다만 그것은 준비가 되어 있는 자에 한한 이야기일 것이다. 여전히 준비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기회가 올 때 놓치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나는 달린다. 기회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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