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작가는 언감생심.
글로 번 첫 수익, 30만 원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엘리엇>
지금 생각하면 나는 얼마나 무모했던가. 불쑥 가슴으로 들어온 꿈 때문에 마흔 넘어 느닷없이 인생의 방향을 틀어버렸으니. 그건 어찌 보아도 용기보다는 무모함에 가까운 일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무모함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나의 공모전 도전기이다.
초보는 용감했다.
처음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나서 첫 단편을 완성한 이듬해부터 나는 무작정 공모전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이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로, 누군가 그 원고를 들고 와서 내 앞에 내밀기라도 한다면 나는 당장 그것을 불태워버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체국에서 첫 원고를 보낼 때의 그 감격은 여전히 잊을 수 없다. 부끄러움과 설렘, 흥분, 기대 같은 것들이 뱃속에서 한데 뒤섞여 작은 거품처럼 보글보글대던 기억. 나는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얼른 원고를 건네고는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었다. 물론 그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지금도 원고를 떠나보내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센티한 감동에 젖어들곤 한다. 약간의 민망함과 깊은 충만감에 젖어드는 나만의 내밀한 기쁨.
하지만 처음에는 뭐랄까 초보의 치기만 있었달까. 뭘 알아야 부끄러움도 가질 터인데 제대로 아는 게 없으니 스스로의 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커녕 기본적인 요건도 갖추지 못한 채 눈에 띄는 공모전에 마구 원고를 보내 버린 것이다. 그때 그 원고를 읽었을 관계자분들께는 지금도 죄송한 마음이 남아있다(쿨럭).
사실 그때까지만도 나는 내게 재능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처음 써 본 단편이 술술 글이 되어 나오는 경험을 한 터라 앞으로도 계속 그러리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글을 계속 쓰면서 뭔가 좀 알기 시작하고서야 나는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아,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꿈이 커도 너무 컸구나.
하지만 한번 맘속에 들어온 꿈을 어쩔 텐가. 글을 쓸 때의 그 환희와 기쁨. 몰랐으면 몰랐지 이미 알아버린 이상 나는 글쓰기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을. 돌이키기엔 너무 늦어버린 것을.
그렇게 매년 수없이 많은 공모전에 도전한다.
아침에 노트북을 켜면 가장 먼저 엽*시 문학공모, 위*티 등등의 공모전 사이트부터 훑는다. 도전해 볼 만한 공모전이 있다면 다이어리에 꼼꼼히 모집요강과 모집일시 등을 옮겨적고 집필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일정에 맞춰 새로 글을 쓰거나 여태 써왔던 것들을 다시 고친다.
공모전이 뜸해지고 글을 쓰는 텐션이 떨어질 때 하는 뻘짓거리가 따로 있다. 이를 테면 수상소감이라든가 책에 넣을 작가소개나 인사말 같은 것들을 혼자 적어보는 것이다. 마치 그 일이 예정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가상의 상황에 흠뻑 빠진 채로 그런 것들을 휘갈기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작업을 시작할 에너지가 솟아나곤 한다.
몇 년을 그렇게 공모전에 도전하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수상에 대한 기대는 점점 줄고 있다. 탈락 후의 실망감도 마찬가지. 아무래도 조금 보는 눈이 생기니 저절로 기대치가 낮춰졌달까? 아, 적고 나니 조금 슬퍼진다(훌쩍).
대신 얼토당토않은 대박의 기대보다는 매일 꾸준히 쓴 글 하나하나가 여전히 부족한 내 실력에 작은 토대가 되어줄 거라 믿는다. 쓰는 일을 멈추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진짜 소설가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도.
공직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동상 수상.
아킬레스건염과 그로 인한 필연적 우울과 싸워가며 힘겹게 글을 썼던 2022년 가을, 글을 쓰고 처음으로 상이란 걸 받게 되었다. 한번 응모했다 떨어졌던 것인데, 쓸데없는 부분은 덜어내고 모자란 부분은 살을 붙여가며 거의 십여 번의 퇴고를 더 거쳐 다시 도전한 결과였다.
처음 당선 사실을 확인하고 난 뒤 몇 번이나 더 사이트를 들락날락했던지 모르겠다.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어 이 방 저 방을 똥 마려운 강아지 모양 맴을 돌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수상이기에 더없이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었지만, 사실 기쁨보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그즈음 나는 누구에게도 말 못 한 채 혼자 속을 끓이고 있는 중이었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어정쩡한 글재주를 가지고 계속 글을 써도 될 것인지, 차라리 그 시간을 좀 더 유익한(?) 것에 써야 하는 것은 아닌지 내심 고민되던 차였다. 몇 년이나 글을 써 왔지만 실력을 검증받을 마땅한 방법도 없는 데다 공모전은 매번 탈락. 그러다 보니 처음 글을 쓸 때의 확신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남은 건 재능에 대한 의구심과 자격지심뿐이었다. 그러던 중에 공직문학상 당선 소식은 내가 이제껏 해온 일들이 헛일이 아니었다고, 계속 글을 써도 된다고 나지막이 건네는 위로와도 같았다.
공직문학상은 공무원들의 소양 함양을 위해 매년 개최되는 공모전으로 대상과 금상 수상자에게는 한국문인협회 입회 자격이 부여된다. 즉 등단이 되는 것이다. 내 작품은 동상이라 아쉽게도 등단은 불발되었지만, 첫 공모전 당선에 첫 상금 30만 원까지 나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뒤, 또 하나의 작은 수상소식이 전해졌다. 신랑 회사에서 처음으로 개최한 사내 수필공모전에 냈던 생활수필이 은상에 뽑힌 것이다. 다시 상금 30만 원.
그리하여 작년 글로써 벌어들인 나의 총수익은 60만 원이 되었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돈이지만 나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단연코 인생이 주는 최고의 상은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에서 온 힘을 다할 기회이다.
<루즈벨트>
공직문학상 당선 후, 농담 삼아 슬쩍 신랑에게 물었다.
"서방, 나 공모전 당선되면 그만두기로 했었잖아."
"어? 그거 당신 등. 단. 하면 그만둔다고 하지 않았어?"
"(이, 이 사람이)ㅡㅡ^......."
조금 더 일찍, 내가 한창 꿈에 취해 있을 때였다면 호기롭게 사직서를 날렸을지도 모르겠다. 아쉽게도(어쩌면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미 현실에 대해 어느 정도 자각하고 있던 터라 그 상황을 어물쩍 넘겨버린다. 대신 오랜만에 되살아난 설렘을 안고서 열기구에 바람을 넣듯 나의 꿈에 다시 온풍을 불어넣는다. 전업작가로의 길은 여전히 멀고도 멀지만 나의 꿈은 이제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