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느슨하게, 때론 치열하게.

삶은 어디서나 저마다 최선을 다해 피어나는 꽃이다_박노해

by 솜니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뜨거운 믹스커피 한잔을 타서 책상에 앉는다. 공모전 사이트를 훑은 뒤 한 달 일정을 확인하려 다이어리를 펼친다. 한창 뜨거웠던 9월을 뒤로하고 맞은 시월의 첫 페이지. 기대했던 공모전 발표를 기다리며 두근댔던 9월의 씁쓸한 끝맛이 여전히 혀끝을 맴도는 채다.






공모전에 작품을 내어놓고 나선 평소엔 그다지 떠올리지 않는 편이다. 이따금 다이어리에 적어둔 발표일이 눈에 띄면 슬쩍 한번 웃고 마는 정도. 물론 처음 한두 해는 결과발표가 나는 날까지 가슴을 졸이며 기다리기 일쑤였다. 그사이 혼자 마셔버린 김칫국이 서너 양동이쯤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것도 몇 년. 이제는 이력이 나 쓸데없이 과도한 기대에 목매지 않는다. 그저 때가 되면 될 지어니, 하고 여길 뿐이다.


하지만 내도록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다가도 발표일이 다가오면 마음이 두 근 반 세 근 반하게 된다. 게다가 이번에는 나름 기대하던 공모전에서 예심을 통과하고 최종심에 올랐다는 연락을 받은 뒤였다. 나는 혼자 당선 후의 이런저런 일들을 상상해 보다가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이내 이어지는 부끄러움 또한 나의 몫;;;). 뭐, 그렇게 혼자 산꼭대기까지 실컷 올랐다 속절없이 떨어져 내리기가 한두 번이었던가. 워-워- 흥분된 감정을 추슬러 보지만,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매일 마음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연락은 오지 않았다. 하, 하.

맘을 반쯤 비운 채 기다리고 있었지만, 역시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ㅜㅜ

그렇게 그날 하루를 조금 멍-한 상태로 있다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으니 당연한 결과일 터. 더 고치고 다듬어서 다른 공모전에 도전하면 된다. 나는 다시 스퍼트를 올려보기로 했다. 10월 브런치북 프로젝트를 목표로 작업 중이던 글도 마무리하고 떨어진 단편들도 다시 퇴고해서 올해 남은 공모전에 넣어보기로. 아자아자.


그. 러. 나. 뜬금없이 여름감기에 걸리며 나의 며칠은 고대로 멈춰버렸다. 며칠을 골골대는 바람에 일주일 넘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버린 것. 그러자 예의 그 무기력과 자괴감이 스멀스멀 전신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순간, 아뿔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는 동안 종종 번아웃에 빠진 적이 있다. 그러면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제 깜냥은 헤아리지 못한 채 무리하게 스스로를 채근한 결과였다. 나는 마음을 좀 내려놓기로 했다. 차라리 이참에 몸도 마음도 쉬어가는 게 낫지 싶었다. 안 그래도 10월 브런치북 프로젝트를 목표로 머리를 쪼개가며 한창 글을 쓰던 중으로 두통과 압박감이 점점 심해지고 있던 차였다.






어릴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물을 무서워했다. 물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몇 번 수영을 배우러 가기도 했다. 하지만 매번 초보자 강습 한두 달을 넘지 못하고 그만두고 말았다.


나의 문제는 수영 도중 물에 빠지지 않으려 온몸에 힘을 주는 것이었다. 물 위로 자연스럽게 뜨려면 우선 전신의 힘을 빼고 물에 몸을 맡겨야 한다. 그런데도 잔뜩 긴장된 채 물에 들어갔으니 물에 뜨기는커녕 몸을 띄우자마자 물속으로 가라앉게 되는 게 당연했다. 내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물을 극복하는 데에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마침내 물에 몸을 가만히 띄운다는 감각을 체득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수영이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반년이나 수영을 배웠지만 지금도 조금 깊은 곳에 들어가면 순간 몸이 굳는 건 매한가지이다. 수십 년간 머리와 몸에 각인되어 있던 물에 대한 두려움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수영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고, 내 발이 닿는 한 어디서든 즐겁게 유영할 수 있게 되었다.




힘을 주어야 할 때는 제대로 힘을 주고, 힘을 빼야 할 때는 힘을 빼면서 살아가기.


늘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 살아가면 언젠가 탈이 나기 마련이다. 힘을 주어야 할 때는 힘을 주되 약간의 여유를 늘 남겨두고, 힘을 빼야 할 때는 온전히 힘을 뺄 줄 알아야 몸에 무리가 없다. 중요한 건, 치열함과 느슨함의 사이에서 유연하게 줄타기를 하며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감기 덕에 꼼짝없이 며칠을 쉬고 나니 정말 거짓말처럼 두통이 가셨다. 그제야 9월 내내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맘은 저만치 달려가고 있지만 몸은 이미 버겁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던 것을 나는 또 무시했나 보다. 두통도 감기도 결국 다 나의 욕심의 결과였다. 뭐든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



때론 느슨하게, 때론 치열하게.


때론 치열하게 시간을 살아내고, 때론 느슨한 시선으로 세상과 사람과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바득바득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거나 어영부영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몸에 힘을 빼듯 마음의 힘을 빼고 소소한 일상 속에 깃든 작은 기쁨들을 누리며 자신의 소명을 향해 꾸준히 작은 한걸음을 내딛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다.


여전히 글의 끈을 붙잡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소설가 지망생.

나는 여전히 꿈을 꾸는 자다.


그렇게 오늘도 글을 쓴다. 글 속에서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시간도 공간도 초월한 채 나는 내가 된다. 수없이 놓고 싶었지만 결코 놓을 수 없던 나의 꿈. 때로는 나를 무너뜨리기도 하고, 때로는 나를 일으키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나를 담금질하는 꿈. 꿈 때문에 괴로워하고, 꿈 때문에 행복해하며 여기까지 왔다. 비록 그 꿈이 실현되지 않는데도 어쩔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온 힘을 다해 또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일일 뿐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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