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존버.

가장 어두운 시간은 해뜨기 바로 직전의 시간이다_연금술사

by 솜니오



지금도 돌아보면 그냥 흘려보낸 그 시간들이 얼마나 아쉬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는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위로뿐이다.



계속 도돌이표를 도는 다리 때문에 매일 산책을 하고, 글을 쓰고, 아이와 여행을 다니겠다는 나의 장밋빛 꿈은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언제 낫는다는 기약도 없이 집안에만 붙박여버린 상황.


그런 속에서 혼자 고립되어 있다 보니 마음은 자꾸만 자꾸만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점차 우울이 깊어지며 불안감이 스멀스멀 차오르기 시작하던 어느 날 덜컥 겁이 났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야 했다. 다시 그 막막한 어둠 속으로 빠져들 순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 책상으로 향했다. 집안에서조차 마음껏 움직일 수 없던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것뿐이었다.








건염이 심해지고 어쩔 도리 없이 집에 눌러앉게 되면서 처음 얼마간은 제법 열심히 글을 썼었다. 휴직의 가장 큰 목적이 글을 쓰는 것이기도 했고, 그때까지만도 다리야 한두 달이면 나을 거라 가벼이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몸의 회복이 자꾸만 늦어지면서 갈수록 글에 집중하기가 힘들어졌다. 어쩌다 다리가 조금 나은 날은 기운차게 글을 써내려가다가도, 다리상태가 좋지 않은 날은 며칠이고 노트북 근처에 가지도 못했다. 뭐라도 쓰고 나면 마음이 조금 편했지만, 아무것도 하지도 아무것도 쓰지도 못하고 보낸 하루의 끝에는 견디기 힘든 자괴감이 몰려왔다. 다리 상태가 오락가락할 때마다 나는 이대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렇게 일 년, 이년. 그야말로 절망적인 시간들이었다.


그럼에도 글만은 놓을 수 없었다. 글은, 그 힘겹던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또 버텨내게 만드는 작은 숨구멍 같은 거였다.




설거지는 서서.


그렇게 몇 개월간 초기단계의 운동부터 다시 시작해서 꾸준히 치료를 받아오고 있다. 이 년내 수도 없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기의 반복. 이제는 어렴풋하게나마 끝이 보이는 것도 같다. 묵묵히 시간을 견뎌온 사이 작은 허들 하나는 넘어선 듯하다.


얼마 전부터 일어서서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오래 서있지는 못해서 설거지거리가 생길 때마다 바로바로 해치워 버린다. 예전에는 여러 번 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집안의 몇 안 되는 그릇이 다 나올 때까지 미뤄두기 일쑤였는데, 의도치 않게 오래된 습관을 고치게 되었다. 덕분에 우리 집 주방은 한결 정갈해졌다.


다시 서서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가벼운 집안일을 한다. 하루가 일 년 같던 그 시간을 이겨내고 두 다리로 선 채 작은 일이나마 할 수 있게 되었을 때의 감회를 어떻게 설명할까.


아직 갈길이 멀지만 이제 반은 왔다 싶다. 이대로 조금만 더 가면 반드시 끝이 나올 거라고 오늘도 열심히 마인드컨트롤을 해본다. 언제 다시 꺾일지 모르지만, 그러면 또 일어나면 되는 거니까. 그러다 보면 어느 날엔가 온전히 일상으로 돌아와 있는 그런 순간이 반드시 오고 말 테니까.



설거지를 하며 새롭게 인생계획을 써본다.


나의 새 목표는, 직장에서 존버.


인생 후반부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전업작가가 되어 보란 듯이 사직서를 내는 대신, 이십 년을 꽉 채워 명예퇴직을 한 후에 작가로서의 인생 2막을 시작하려 한다. 늦다면 늦고 빠르다면 빠른 시작이겠지만 백세 시대에 그야말로 적절한 출발점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때까지 버틴다는 보장은 없다. 그사이 또 어떤 일들이 생길지,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제껏 버텨왔듯 마지막까지도 한번 버텨볼 참이다. 끝까지 버티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일 테니까.


복직이 몇 달 안 남은 지금, 아직 십여 분 남짓 걷는 걸음은 불안하고 긴 휴직의 끝에 여러모로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 자리에 머물 순 없다. 이제는 집밖으로 나서야 할 때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그릇을 헹구다 문득 놀라고 만다. 불쑥 출근이 하고 싶단 생각이 든 것이다. 집안에 어찌할 도리없이 고립되어 있던 시간 동안 여러 가지로 고팠나 보다. 피식, 싱겁게 웃음을 흘리며 다시 그릇을 씻어낸다. 내일은 오늘보다 여러모로 조금 더 나아져있는 '나'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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