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아가는 또 하나의 하루
부스럭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 핸드폰 시계를 보니 8시 30분. 따뜻한 햇살이 커튼사이로 창밖에서 내비쳐 살짝 눈이 부신다. 거실에 나가보니 큰딸이 일어나 배가 고팠는지 어제저녁에 해놓은 고구마를 우유와 먹고 있다.
"우리 딸 일어났어?"
"응."
우리 집에서 가장 부지런하다. 물론 평일엔 깨워야 일어나 학교에 가지만 (깨울 때도 벌떡벌떡 잘 일어나 준다.) 주말엔 더 자도 되는데 꼭 먼저 일어나 사부작사부작 거린다. 다음주가 시험기간이라 아마도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서 일어났으리라. 밤새서 하는 스타일 아니고, 몰아서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평소에 조금씩 공부를 한 탓인지 왠지 여유가 있어 보인다.
일어나기 싫지만 그래도 공부하겠다는 큰딸을 굶길 수 없어서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뭐 먹을래?', '괜찮아. 고구마랑 우유 마셨어.', '그럼 엄마 조금 더 누워 있을게.', '응'
이런 간단한 대화를 하고 다시 누웠지만 이미 잠이 깨 버렸다. 그래서 다시 자지는 않고 누워서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검색도해보고 영상도 보다가 다시 일어난다. 그렇게 일어나니 어느덧 10시가 다되어간다. 옆에 아기처럼 누워있는 작은딸을 깨운다.
"일어나. 벌써 10시가 다 됐어. 오케스트라 가야지."
역시나 못 일어난다. 큰 딸과는 비슷한 듯 너무 다른 작은딸. 큰딸은 깨우기가 힘들었던 적이 없는데, 작은딸은 항상 힘들다. 하지만 최근엔 자기가 일어나야겠다 생각하면 나보다도 먼저 일어나기도 한다. 오케스트라는 굳이 가고 싶지 않지 않기에 더 일어나질 않는다. 올해 들어서부터 별로 하고 싶지 않아 했는데, 여태까지 한 게 아까워서 졸업할 때까지만 좀 더 열심히 하자고 꼬셔서 억지로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종종 칭찬을 받고 오면 재미있다고 클라리넷을 빽빽 불어대는데, 도대체 저 소리는 언제쯤 음악 소리다워질까 싶다. 간신히 어르고 달래고 화도 내고 하면서 깨워, 아까 남은 고구마와 우유를 먹인다. 그리고 화장실로 보내어 씻게 하고 옷을 챙긴다. 그렇게 분주하고 시끄러운 와중에도 안방에서는 드르렁드르렁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주말이라도 푹 자야지 싶어 잘 안 깨우려고 하는데 꼭 오케스트라 갈 때 아빠 보고 데려다 달라고 막내 따님이 깨운다. 그럼 눈도 못 뜨시고 모자만 쓰고 쫄래쫄래 다녀오신다. 내가 깨울 때는 그렇게 안 일어나면서...
그렇게 우리 가족의 주말 아침은 시작이 된다. 정말 길~~ 게 시작되다 보니 어느덧 오후가 돼버리는 주말. 아이를 데려다주고 온 신랑은 이것저것 꺼내어 먹고는 씻는다. 일이 너무 많다고 출근해야 한다며... 주말이라 가면 밥을 분명 먹지 않을게 뻔하기에 점심 먹고 가라고 얘기한다. 그러면 큰딸이랑 똑같이 라면! 혹은 중국음식! 을 외친다. 둘 다 내가 좋아하지 않은 음식이지만, 먹고 싶다 하면 먹어야지 어쩌겠어하고 어느 날은 라면을 끓여 먹고, 조금 더 여유가 있는 날은 작은딸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중국집에 간다. 큰딸은 무조건 짜장면, 작은딸은 해물 잔뜩 들어간 짬뽕. 신랑은 그때그때 다른데 보통은 짬뽕이나 볶음밥을 먹는다. 난 면을 좋아하지 않아서 대부분 짬뽕밥을 시킨다. 그리고 탕수육 소자도 시키고... 이 많은걸 다 먹을 수 있을까 매번 고민하지만, 매번 고민하는 나도 참 바보다. 항상 남은 거 없이 깨끗하게 비워지는 우리 가족 식탁. 잘 먹으니 건강하게 잘 크는 거지 뭐.
점심을 먹고 나면 신랑은 출근을 하고, 큰딸은 바이올린 레슨을 간다. 그 사이 나랑 작은딸은 집에 들어와 뒹굴뒹굴 티브이도 보고, 과일도 먹고, 책도 보다가 시간이 되면 마트 방송댄스에 간다. 아이가 수업에 들어가면 나는 지하로 내려가 장을 본다. 나는 오프라인으로 장 보는 걸 그렇게 즐겨하진 않는다. 그냥 살 것만 인터넷으로 탁탁 골라서 사면 알아서 배달까지 다 해주는데, 그 넓은 마트를 다 돌아다니다 보면 다리도 아프고, 사려고 했던 것 외에 것도 많이 사게 되고 오히려 돈을 더 쓰는 거 같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장 보는 것은 둘째치고 옷 사는 것도 온라인이 편한 사람이니 말 다했지. 그래도 온라인으로만 살 수 있는 맥주를 사기 위해 내려가서 장을 본다. 5개에 9900원 하는 세계맥주를 고른다. 나는 호가든을 좋아해서 5캔은 무조건 호가든으로 구매하고 나머지는 이것저것 담아본다. 그렇게 슬쩍 장을 보다 보면 어느새 또 작은딸이 끝날 시간... 작은딸을 태우고 큰딸을 데리러 간다. 그렇게 둘 다 태우고 집에 오면 어느새 또 저녁 할 시간... 아직 점심 먹은 것도 배가 꺼지지 않은 것 같은데 저녁시간이다. 평일이나 주말이나 끼니 걱정하는 건 똑같은 듯.
마트에서 장 본 것 중에 저녁거리가 있으면 그것으로 저녁을 먹고, 아니면 그냥 배달이나 집에 있는 음식으로 먹는다. 그렇게 하다 보면 또 주말 하루가 다 간다. 토요일은 바쁘게 보냈으니 일요일은 어디 나들이라도 가볼까 하고 신랑이랑 얘기를 하는데, 아... 큰딸 시험기간이야... 그래도 가야겠지? 내일은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