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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마의유혹 Nov 24. 2024

오늘 하루

유리알이 다이아몬드라는 걸 알게 될 언젠가

  평소 가장 잠이 많은 작은 딸아이의 알람이 울려 잠이 깼다. 정작 알람을 맞춘 당사자는 비몽사몽 알람만 끄고 다시 잠이 든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새벽 6시.


 '오늘 친구들과 롯데월드에 간다더니 일찍도 알람을 맞춰놨구나.'


 하지만 역시 바로 일어나질 못한다. 덕분에 내가 기상. 겨울은 겨울인지 이불 밖의 공기는 차고, 장판을 켜 놓은 덕분에 이불속은 따뜻해서 조금 더 이불속에서 뒹굴거린다.


'7시 반에 학교 앞에서 만난다 했지, 그럼 한 30분~40분 더 재울 수 있겠네.'


 휴대폰을 보면서 아침은 뭘 먹여서 보내야 하나 고민을 한다. 밥을 먹여서 보내려면 일어나서 간단하게 반찬이라도 해놔야 하는데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결국 집에 있는 모닝빵에 어제 해놓은 양배추 샐러드 넣은 모닝빵 샌드위치를 먹여 보내기로 한다. 그렇게 결정은 했지만 워낙 내 뜻대로 행동하는 아이가 아니기에 플랜 B도 생각해 놓는다. 플랜 B라고 할 것도 없이 시리얼이지만 혹시나 밥이 먹고 싶다고 하면 '김이랑 햄 구워서 싸 먹으라고 해야지.'라고 생각을 하고 조금 더 뒹굴거린다.

 그렇게 잠깐 누워있었는데 이번엔 내 알람이 울린다. 이제는 진짜 딸아이를 깨워야 할 시간이다. 평소처럼 깨울 땐 꿈쩍도 하지 않더니, '너 롯데월드 간다며, 안 일어나도 돼.?'라고 말을 하니 큰 소리로 말한 것도 아닌데 벌떡 일어나서는 화장실로 향한다. 그 사이 나도 힘겹게 일어나 아이 입을 옷을 챙기고, 아침밥을 챙겼다.

 씻고 나와서는 들떠서인지 계속 종알종알 거린다. 간단하게 모닝빵 샌드위치를 먹고는 아빠를 깨워서 친구들 만나는 데까지 데려다 달라고 한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못하는 신랑임에도 딸아이가 깨워서 뭘 해달라고 하면 벌떡 벌떡 잘 일어난다. 부스스한 모습으로 모자를 쓰고 눈곱만 떼고는 아이와 함께 나간다. 금세 나갔다 들어와서는 애 가는 거 잘 보고 왔다며 조금만 더 잔다고 눕는다.

 그렇게 작은딸을 보내고 우리 집은 다시 취침시간이 되었다.


 눈을 떠보니 큰딸 방에 불이 켜져 있다. 역시 우리 집에서 가장 부지런하다. 작은딸 갈 때 꿈쩍도 안 하길래 오늘은 피곤하구나, 늦잠 좀 자겠구나 했는데 내 예상과는 달리 생각보다 일찍 일어나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기특한 것.

 나는 아점(아침 겸 점심)을 차리기 위해서 어제 주문했던 식재료들을 꺼냈다. 메뉴는 월남쌈. 원래는 저녁에 해먹을 예정이었으나 신랑이 오늘 출근해야 한다고 해서 분명 같이 저녁을 못 먹을게 뻔하기에, 또 작은딸은 언제 올지 모르니 그냥 지금 먹을 수 있게 준비했다. 월남쌈을 집에서 해먹은 건 처음이다. 재료 손질도 귀찮고 이런 건 식당에서나 먹는 음식이다라고 생각해서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우연히 친구네서 먹는 거 보고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맛도 괜찮다는 걸 알고 나서 집에 없는 야채들을 구매해 손질해서 먹기로 한다.

 월남쌈은 크게 요리라고 할 것도 없다. 그저 신선한 야채를 채 썰어 놓기만 하면 되니까, 그리고 곁들일 새우나 불고기 정도만 있으면 더할 나위 없는 한 끼 식사 메뉴가 된다. 냉동실에 넣어놨던 새우도 꺼내어 해동하고, 불고기도 꺼내놨다. 먼저 야채를 채 써는데 역시 우리 집 칼은 항상 잘 들지 않는다. 종종 신랑이 칼 갈아주곤 했는데 요새는 바빠서인지 갈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아예 내가 칼 세트를 살 때 요리사들이 쓰는 칼 가는 것도 있는 칼세트를 구매해서 사용 중인데 생각보다 이것도 잘 들지 않는다. 다이소에서 칼갈이나 하나 사야겠다. (이것도 다이소 가면 또 까먹고 그냥 오겠지...)


 최대한 얇게 썰 수 있는 만큼 썰었고, 새우는 버터를 녹인 후 다진 마늘을 넣고 볶았다. 그런 후에 불고기도 해서 세팅을 했다. 막내딸 없이 셋이 식탁에 앉아 아점으로 월남쌈을 먹었다. 물론! 우리 편식 심한 큰딸은 밥에 김치에 불고기와 새우를 먹었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신랑은 출근을 했다. 신랑 출근 후 큰딸은 다음 달에 있을 협연 준비로 바이올린 연습을 한다. 전공을 할 것도 아니고 단지 초등학교부터 시켰던 바이올린을 꾸준히 취미로 할 수 있게 오케스트라에 들어간 건데 어쩌다 협연까지 하게 되었는지, 요새 기말 준비하느라, 협연 준비하느라 너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처음 협연 곡 정하고 연습할 때는 저거 공연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한 소절 한 소절 연주하는 게 힘겹더니, 이제는 제법 틀리지 않고 끝까지 연주한다. 이게 우리 딸의 장점 중 하나다. 노력하면 그만큼 결과가 정직하게 나온다는 것. 한참을 그렇게 연습하더니 오늘은 더 못하겠다고 바이올린을 넣는다. 내 맘 같아선 두 시간은 더 했으면 좋겠지만 뭐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유독 표정도 안 좋고 힘겨워 보인다. 억지로 한다고 될 리도 없으니 그냥 그럼 지금 쉬고 이따 저녁에 한 시간 정도만 더 하자고 하고 마무리를 했다.

 

 우리 집 여자들은 외향적인 E 성향을 가지고 있다. 유일하게 신랑만 I이다. 나는 결혼 전까지, 아니 애들 어릴 때까지만 해도 대문자 E라고 할 만큼 나가는 것 좋아하고 사람들 만나는 거 좋아했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요즘은 나가는 게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특히 추운 겨울엔 겨울잠을 자고 싶을 정도로 집순이가 되는 걸 좋아한다. 이건 젊을 때도 그랬다. 추위를 워낙 싫어하기 때문에...

 이러한 성향은 나를 닮아서인지 딸들도 굉장히 외향적이다. 특히 큰딸은 나보다 더 심한 E성향의 아이로 하루라도 나가지 않으면 어쩔 줄 몰라할 정도다. 첨엔 정서불안인가, ADHD인가 싶을 정도로 어떻게든 나가려고 해서 걱정했는데, 그냥 에너지가 넘치는 애 일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느 정도 에너지를 쏟아야 공부도 더 잘하고 집중도 잘하는 애다.

 그런 애인데 어쩌다 친구들은 내향적이고 오타쿠인 친구들과 어울려서는 자주 나가서 놀지 못하니 아주 미칠라고 한다. 큰 딸 친구들은 죄다 집순이로 집에서 노는 걸 좋아하고 게임이나 웹툰, 만화 보는 걸 좋아한다. 물론 우리 딸도 그런 걸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제재를 하고 있다. 한번 빠지면 앞뒤 안 가리고 그것만 할게 뻔한 아이라는 걸 알기에 최대한 학기 중에는 못하게 하려고 한다.

 동생이 친구들과 롯데월드에 간다는 걸 알고는 어찌나 부러워하던지... 너도 친구들이랑 다녀오라니까 내 친구들하고는 가자고 몇 번 했다가 계속 어긋나서 못 갔다고 너무 속상해한다. 아이 친구들이 착한 애들인 건 알겠는데 아이의 성향과 너무 맞지 않아 이럴 때마다 나도 역시 속이 상한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큰딸이 집에만 있기 싫어하는 것 같아서, 영화 위키드 개봉했던데 친구들이랑 영화라도 보고 오라고 했다. 근데 역시나 시간이 안 되는 애들, 대답 없는 애들 등등... 결국 내가 같이 다녀왔다. 다행히 춥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영화는 정말 재미있었다. 평이 좋다는 건 알고 있었고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에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중간에 살짝 졸긴 했지만...) 그렇게 영화 보고 대화도 하고 떡볶이도 사 먹으면서 걸어왔는데 날씨도 딱 좋아서 기분이 좋았다. 아이도 너무 기분 좋다고, 엄마랑 데이트해서 좋다고 하니 다행이다 싶었다.


 보물 같은 우리 큰딸. 너무 부서질 거 같은 유리알 같은 딸이라 반짝반짝 빛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상처도 많이 받는다. 하지만 난 안다. 분명 언젠가 유리알이 아니라 다이아몬드라는 걸 친구들이 알아줄 거라는 걸. 그렇기에 기다리기로 한다. 지금과 같이 변함없이 말이다.





 

 롯데월드에서 실컷 놀다 온 작은딸. 오자마자 라면 드시겠다더니 '너무 늦어서 먹으면 안 되겠지.?' 라며 참는다. 대단한 녀석... 그러면서 종일 종알종알... 역시 막내는 막내다. 귀여운 것. 우리 막내 잘 놀다 와서 엄마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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