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은한 톨이3000개까지 늘어난다는데
아케미 아주머니 집에 돌아간 날은 벼베기 날이었어요. 처음 왔을 땐 모내기가 한창이던 논이 이번에는 예쁜 황금색으로 물들었더라고요. 아주머니랑 남편인 마키 아저씨는 농사를 지어요. 그리고 논 한 편은 참가자들을 받아서 모내기도 하고 벼베기도 같이 하죠. 아주머니가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후부터였대요. 수술은 잘 됐지만 ‘멀게만 생각했던 죽음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것이구나’하고 생각하게 됐대요. 그 후 사람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 논과 요리공방을 만들어 오게 되었고요.
농사체험은 옛날식으로 진행됐어요. 낫으로 벼를 베고 오래된 탈곡기를 쓰고요. 요즘 기계를 쓰면 금방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체험을 위해서겠죠.
참가자 중 어린 아이들이 많은게 보기 좋았어요. 중학생 정도 된 아이들은 한 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더라고요 익숙하게 벼를 베고 볏단을 묶어요. “어쩜 이렇게 잘하니?”라고 물으니까 애들이 답하네요. “커서 농부가 되고 싶어 많이 해 봤어요.”라고요.
그 말에 초등학교 시절 한 친구가 생각났어요. 장래 희망을 말하는 시간이었어요. 어릴때는 막연하잖아요. 20년도 훨씬 전이니 요즘처럼 참고할 수 있는게 많지도 않았고요.!다들 막연히 대통령, 과학자라고 답했던것 같아요. 저는 화가라고 했던것 같고요. 그런데 ‘농부’라고 답한 친구가 딱 한 명 있었어요. 이유도 참 딱 부러지게 이야기 하더라고요.
“농사짓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잠시 함께 사는 동안 농사의 재미와 중요성을 알게 되었어요. 크면 농대에 진학해서 과학적으로 농사짓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라고요. 그 모습이 정말 신선했어요. 쟨 어쩜 저렇게 야무지지? 하고 부럽기도 하고요. 이 날 아이들한테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것 같아요.
벼베기를 하는 아이들 사이로 몇몇 아이들은 메뚜기를 잡고 있었어요. 메뚜기 튀김을 만든다네요. 이 곳 논은 농약 대신 치어를 풀어 해충을 잡아서 메뚜기들은 먹을 수 있다더라고요.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기겁하지만 애들은 없어서 못 먹어.”
그렇죠. 어릴 때 먹어보면 괜찮은데, 못 먹는 사람들은 힘들어하더라고요.
동네 사람들이 가장 많았지만 참가자 중엔 교토나 오사카에서 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보고 오더라고요. 역사가 꽤 되다보니 결혼 전에 혼자 왔다가 결혼 후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사람도 있었어요. 재미로 한 번 왔다가 조금씩 일을 도우면서 본격적으로 농부가 된 사람도 있고요. 그렇게 조금씩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하더라고요.
쌀은 한 톨의 쌀알이 3,000개까지 불어날 수 있는 식물이래요. 신기하죠? 그 작은 쌀 한톨이 그렇게 많이 불어난다는게요. 이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아케미 아주머니가 쌀알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농사라는게 사실 막연하잖아요.해보고는 싶은데 어디서 할 수 있지? 싶죠. 시골 할머니 집이라도 있고 어릴 때 해봤으면 모르겠는데 주변에 연고가 없으면 막막하고요. 아무데나 가서 시켜달라고 할수도 없죠. 아케미 아주머니의 논이 그런 막막한 사람들에게 좋은 창구가 된것 같아요. 얼마나 좋아요. 부담 없이 한 번 해볼까? 하고 갔다가 마음에 들면 좀 더 해 보고, 이게 나한테 맞는것 같다 싶으면 그 때 본격적으로 해볼 수도 있고요.
농사 참가비는 1000엔, 우리돈 만원 정도 였어요. 점심값만 생각해도 아깝지 않은 돈이에요. 마을에서 난 재료로 요리 공방 아주머니들이 푸짐하게 내놓는 건강식이요. 정부 지원 같은것도 없어요. 순수하게 본인들이 좋아서 만들어 온 일이에요. 여기에 마을 사람들이 도와주고요. 집 앞 산도 아이들이 와서 놀라고 개방을 하셨어요. 참 잘 나누고 사세요. 그런 마음으로 저도 와서 지내라고 하신게 아닐까 싶어요. 제가 있기 전에는 동네에 영어 강사로 왔던 미국인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사람도 미국에 가 농부가 됐대요. 저는 농부가 되진 않았지만 이 마을을 기록하기로 했어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계속 써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