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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숲 Sep 03. 2020

경험을 수확하는 벼베기 날

쌀은한 톨이3000개까지 늘어난다는데

낡은 탈곡기를 보고 누군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어요.   “이야~  저런 건 쇼와시대 (한국의 60-70년대에 해당하는 시대)에나 볼 수 있던 건데 말이야!”


공방에서는 새참 만들기가 한창


'식사하세요~' 새참 시간을 알리는 아케미 아주머니



 

벼베기가 끝나면 밥을 먹은 뒤 탈곡한 벼를 1kg씩 나눠 갖고 돌아갑니다




아케미 아주머니 집에 돌아간 날은 벼베기 날이었어요. 처음 왔을 땐 모내기가 한창이던 논이 이번에는 예쁜 황금색으로 물들었더라고요. 아주머니랑 남편인 마키 아저씨는 농사를 지어요. 그리고 논 한 편은 참가자들을 받아서 모내기도 하고 벼베기도 같이 하죠. 아주머니가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후부터였대요. 수술은 잘 됐지만 ‘멀게만 생각했던 죽음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것이구나’하고 생각하게 됐대요. 그 후 사람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 논과 요리공방을 만들어 오게 되었고요.


농사체험은 옛날식으로 진행됐어요. 낫으로 벼를 베고 오래된 탈곡기를 쓰고요. 요즘 기계를 쓰면 금방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체험을 위해서겠죠.


참가자 중 어린 아이들이 많은게 보기 좋았어요. 중학생 정도 된 아이들은 한 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더라고요 익숙하게 벼를 베고 볏단을 묶어요. “어쩜 이렇게 잘하니?”라고 물으니까 애들이 답하네요. “커서 농부가 되고 싶어 많이 해 봤어요.”라고요.
 


그 말에 초등학교 시절 한 친구가 생각났어요. 장래 희망을 말하는 시간이었어요. 어릴때는 막연하잖아요. 20년도 훨씬 전이니 요즘처럼 참고할 수 있는게 많지도 않았고요.!다들 막연히 대통령, 과학자라고 답했던것 같아요. 저는 화가라고 했던것 같고요. 그런데 ‘농부’라고 답한 친구가 딱 한 명 있었어요. 이유도 참 딱 부러지게 이야기 하더라고요.


“농사짓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잠시 함께 사는 동안 농사의 재미와 중요성을 알게 되었어요. 크면 농대에 진학해서 과학적으로 농사짓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라고요. 그 모습이 정말 신선했어요. 쟨 어쩜 저렇게 야무지지? 하고 부럽기도 하고요. 이 날 아이들한테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것 같아요.


벼베기 날 자신들이 잡은 메뚜기로 아케미 아주머니의 공방에서 직접 메뚜기 튀김을 만든 아이들의 발표문. 조금 징그럽지만,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


벼베기를 하는 아이들 사이로 몇몇 아이들은 메뚜기를 잡고 있었어요.  메뚜기 튀김을 만든다네요. 이 곳 논은 농약 대신 치어를 풀어 해충을 잡아서 메뚜기들은 먹을 수 있다더라고요.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기겁하지만 애들은 없어서  먹어.”


그렇죠. 어릴  먹어보면 괜찮은데,  먹는 사람들은 힘들어하더라고요.
 

동네 사람들이 가장 많았지만 참가자 중엔 교토나 오사카에서 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보고 오더라고요. 역사가 꽤 되다보니 결혼 전에 혼자 왔다가 결혼 후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사람도 있었어요. 재미로 한 번 왔다가 조금씩 일을 도우면서 본격적으로 농부가 된 사람도 있고요. 그렇게 조금씩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하더라고요.


쌀은 한 톨의 쌀알이 3,000개까지 불어날 수 있는 식물이래요. 신기하죠? 그 작은 쌀 한톨이 그렇게 많이 불어난다는게요. 이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아케미 아주머니가 쌀알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농사라는게 사실 막연하잖아요.해보고는 싶은데 어디서 할 수 있지? 싶죠. 시골 할머니 집이라도 있고 어릴 때 해봤으면 모르겠는데 주변에 연고가 없으면 막막하고요. 아무데나 가서 시켜달라고 할수도 없죠. 아케미 아주머니의 논이 그런 막막한 사람들에게 좋은 창구가 된것 같아요. 얼마나 좋아요. 부담 없이 한 번 해볼까? 하고 갔다가 마음에 들면 좀 더 해 보고, 이게 나한테 맞는것 같다 싶으면 그 때 본격적으로 해볼 수도 있고요.


농사 참가비는 1000엔, 우리돈 만원 정도 였어요. 점심값만 생각해도 아깝지 않은 돈이에요. 마을에서 난 재료로 요리 공방 아주머니들이 푸짐하게 내놓는 건강식이요. 정부 지원 같은것도 없어요. 순수하게 본인들이 좋아서 만들어 온 일이에요. 여기에 마을 사람들이 도와주고요. 집 앞 산도 아이들이 와서 놀라고 개방을 하셨어요. 참 잘 나누고 사세요. 그런 마음으로 저도 와서 지내라고 하신게 아닐까 싶어요. 제가 있기 전에는 동네에 영어 강사로 왔던 미국인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사람도 미국에 가 농부가 됐대요. 저는 농부가 되진 않았지만 이 마을을 기록하기로 했어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계속 써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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