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미 아주머니네 아침 밥상 메뉴는 언제나 직접 구운 빵과 샐러드, 요거트에요. 일본의 흔한 아침 밥상, 은 절대 아니고요, 브런치 카페 부럽지 않은 집밥이죠.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요거트에 루바브 잼이 함께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캐나다에 사는 아케미 아주머니의 여동생 미유키 씨가 만들어 보내준 거였어요. 저도 루바브 라는걸 처음 들었는데, 북미에 흔한 식물이더라고요.
“얘가 말이야 40여 년 전에 근처 슈퍼에 가듯이 '잠깐 다녀올게~'하고 캐나다로 가서는 그대로 간호사로 취업하고는 눌러앉아버렸어.”
이 이야기의 주인공 미유키 씨는 마침 제가 아케미 아주머니 집에 머무는 동안 한 달간일본에 휴가를 나와서 자주 만날 수 있었어요. 아주머니의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부모님 집에 머무르면서 여행을 하시더라고요. 하루는 아주머니 부모님 집 앞마당의 무성한 대나무를 자르게 되었어요. 온 동네 사람들이 도와주러 왔고요. 저도 그 김에 이 집에 들어가 일본의 오래된 집을 구경하면서 아주머니의 흥미진진한 가족사를 들을 수 있었어요.
아케미 아주머니에게는 미유키 씨 외에 두 명의 동생이 더 있어요. 그런데 일본에 사는 건 아주머니뿐이래요. 남동생은 호주에, 다른 여동생은 아르헨티나에 개척 농부로 건너가셨더라고요. 그래서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은 드물다네요.
아케미 아주머니는 일본에 머물렀지만 그 시대 여성으로서는 꽤 진취적인 삶을 살아온 것 같아요. 대학에서 영양학도 공부했고요. 어릴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거죠. 하지만 고향에서 마키 아저씨와 결혼을 한 뒤에는 농사일을 돕게 되었어요. 빵 만들기를 배우고 싶었는데 보수적인 시댁에서는 좋아하지 않았다네요. 그래도 남편인 마키 아저씨가 아주머니가 하고 싶은 일을 몰래 지원해줬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냐. 일이 끝나면 어른들의 눈을 피해 일주일에 한 번 오사카의 제과학교에 가 빵을 배웠대요. 들킬까봐 전철역에서 옷을 갈아입고요.
농사일 말고 공사장에서도 일을 하며 돈을 버셨대요. 제빵 학교에 갔다가 막차를 타고 돌아오는 날은 잠깐 눈을 붙인 뒤 다시 일을 나가고요.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에는 빵을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었고요.
저는 이때 아케미 아주머니의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놀랐어요. 엄청 신여성이시더라고요. 피아노와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대요. 무려 100여 년 전에요. 할아버지가 굉장히 똑똑하셨나봐요. 국비로 유학을 가서 서양 요리에 대한 책들을 보내줬대요. 할머니는 그 책을 응용해 일본의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서양 요리 레시피를 만들었고요. 아케미 아주머니는 이걸 보면서 서양 빵에 관심을 갖게 된거였어요.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보니 조금 이해가 갔어요. 말도 안 통하는 인도 노점에서 취미로 카레라이스를 파는 아주머니의 파워를요. 역시 가족은 닮는걸까요.
“며칠 전에는 아르헨티나에 있는 여동생이 단팥빵 만들기를 가르쳐달라고 전화를 했어. 아르헨티나에서 팥은 구할 수 있는건가?“라고 하시는 걸 보니 요리에 대한 관심들은 어느정도 물려받은게 아닌가 싶어요. 미유키씨의 루바브 잼을 봐도 그렇고요.
이렇게 아주머니의 부모님도 만나고, 신기한 옛날 집을 구경하고 나오니 울창한 대나무 숲이 보였어요. 이 앞에는 벌채를 도와줄 이웃들이 이미 모여 있었고요. 와 집에서 나는 대나무가 이렇게 많다니요. “대나무는 쑥쑥 자란다는데, 이거 매번 잘라주려면 번거로우시겠어요”’라고 말하니 아주머니가 말하시네요.
“예전에는 교토의 물건 만드는 공방 같은 곳에서 정기적으로 와서 잘라가고 돈도 줬는데, 아버지랑 싸운 뒤부터 안 오게 됐어. 결론은, 아버지가 이 모든 번거로움의 원흉이야!”
아아- 그런 뒷 이야기가 있었군요. 안타깝네요. 하지만 덕분에 전 대나무 자르기 구경도 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 좋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