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중순, 아케미 아주머니의 집 앞마당에서 수확제가 열렸다. 매년 이맘때쯤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개방한 논에서 함께 모내기를 하고 벼베기를 한 사람들이 모여 햅쌀로 지은 밥을 함께 먹는 날이다.
전에도 와 본 손님들은 짐을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소매를 걷어 요리를 시작했다. 야채를 써는 사람, 고기를 훈제하는 사람, 국을 끓이는 사람 등등... 따로 시키는 사람이 없어도 어딘가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았다. 나처럼 처음인 사람들은 옆 사람을 보며 따라 하면 그만. 말 그대로 다 같이 만드는 잔치였다.
음식도 각양각색이었다. 동네 이곳저곳에서 가져온 싱싱한 야채들로 만든 토란국, 훈제 생선과 고기, 피자, 각종 샐러드 등등.
“올해는 네가 있으니 한국 요리도 만들어 보자.” 아케미 씨와 마키 아저씨의 부탁에 나는 김치를 사다가 김치전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준 뒤 다음 잘 만드나 지켜봤다. 다행히 모두 나보다 잘 만들었다. 이날의 김치전은 만들기, 시식 모두 인기 만점이었다.
이날 가장 주목을 받은 음식은 후나 즈시였다.
"아이고 이 귀한 음식을 여기서 보네~"
후나 즈시를 본 요시코 아주머니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후나 즈시는 시가 토박이도 좀처럼 보기 힘든 전통음식이라며, 시가현에 있는 비와호에서 잡히는 ‘후나’라는 물고기로만 만들기 때문에 시가현을 상징하는 음식과도 같다고 했다. 만들기도 어렵다는 후나 즈시를 입에 한입 넣어봤다. 시큼한 막걸리와 함께 먹는 가자미 식해와 같은 맛이 났다. 매일 먹기는 힘든 맛이었지만 쉽게 접할 수 없는 귀한 음식이라는 이야기에 진귀한 경험으으로 남았다.
사실 귀하기로 말하면 이날의 모든 경험이 귀한 경험이었다. 도시에서 살다 보니 마을 사람들과 같이 밥을 해 먹는 잔치를 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잔치는 하루지만 이를 위해 아케미 아주머니와 마키 아저씨가 며칠이나 장소를 세팅하고 음식을 준비하는걸 옆에서 봐 왔다. 그렇기에 매년 이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준비하는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식사가 끝날 무렵, 마키 아저씨의 민요가 맛깔스럽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에 아케미 아주머니가 수확제를 찾아온 손님들에게 짧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올해도 이렇게 다 같이 모여 밥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무사히, 다 같이 논에서 다시 만나요."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두 분, 그리고 마을 분들 모두요.
뱀발> 비와호와 후나 즈시
비와호는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로 오사카, 교토, 시가에 사는 1,400여만 인구의 식수를 담당하고 있다. 지금은 깨끗한 물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70년대까지만 해도 급속한 공업화로 인한 오염으로 수많은 동식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주민들이 화학세제 사용을 줄이고 갈대를 심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차차 수질이 개선되었고, 후나 즈시의 주재료인 후나도 다시금 비와호에 모습을 드러냈다. 환경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은 정치로 이어졌고, 비와호 환경개선에 애써온 경력을 인정받은 여성 환경운동가가 2006년 정치경험이 전무함에도 시가현 지사로 선출되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