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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숲 Oct 01. 2020

나가노: 지나가는 길의 토란 캐기 구경


11월, 도쿄에 며칠간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가 시가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나가노에 사는 준코 씨의 친구분이 ‘나가노에 들렀다 가요~’라고 초대해주셨다. 어릴 적 동계올림픽이 열린 곳이라고만 알고 있던 나가노. 지도를 보니 도쿄와 시가의 중간에 있었다. '오케이! 바로 버스 타고 갑니다~' 그리하여 예정에 없던 나가노를 구경가게 되었다.


나가노에 도착한 다음날, 지인이 '날씨가 춥다, 따뜻한 물에 몸을 풀라'며 온천에 데려다줬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되었다는 벳쇼 온천이었다. 하지만 동네가 너무 예뻐 온천 대신 역 사무실에서 자전거를 빌려 동네 탐험에 나섰다. 추운 산악 지대여서일까, 시가와는 다른 서늘한 공기와 새파란 하늘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골목을 누비는데 어느 주택가 앞에 모인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궁금해서 자전거를 세우고 물어보니 ‘우에다 콜라보 식당’이라는 곳의 멤버들이란다. 쉽게 말하면 생산자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비영리 단체인데, 이날은 아이들과 함께 이 곳에 토란 캐기를 경험을 하러 왔다고 했다.


흙에서 나오는 토란을 보는 것도 처음이려니와 토란 캐는 모습들이 보기 좋아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기로 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사람들이 사진 찍는 데에 협조적이었다. 어른들은 조금 쑥스러운 기색이 있었지만, 아이들은 방금 캐낸 토란을 가져와 자랑스럽게 보여주거나 자신이 캔 토란이 있는 곳으로 내 손을 이끄는 등 친근하게 다가왔다.


이렇게 친화력 좋은 아이들을 봤나!

반응을 해 주니 사진 찍기가 수월하고 즐거워졌다. 시가에서도 길을 가다가 가끔 전혀 모르는 아이들이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해오면 그렇게 기분이 좋았는데.  김춘수의 시 <꽃> 마냥, 전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누군가 나를 인식해 주고 소통을 한다는 게 이렇게 좋은 일이구나 하고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토란 캐기가 모두 끝난 뒤, 각자의 토란 꾸러미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따라 걷던 길이었다. 그중 아이를 안은 한 어머니가 뒤를 돌아보며 인사를 건네 왔다.


“안녕히 가세요- 또 만나요-” 그 모습이 보기 좋아 자전거를 잠시 멈추고 함께 오랫동안 손을 흔들었다. 온천에 가지는 않았지만 마음만은 온천에 다녀온 듯 훈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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