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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Chun Dec 05. 2020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이 남기고 간 그리움.

공감과 선택

집 백 야드에는 아내의 채소 가든이 있다.

고추, 토마토, 상추 등 한국의 여느 귀촌한 집 모습과 다르지 않다. 삼겹살을 굽고, 채소 겉 저리를 먹기도 하고, 미국에 살면서 매일 이 보다 더 큰 행운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냥 얻어먹기는 미안하니 아내가 씨를 뿌리도록 밭을 일궈주는 것과 대를 세워주는 것은 나의 몫이다. 아내가 거름을 사다 넣기도 하고, 풀도 뽑으며 정성으로 가꾸다 보니 가든은 항상 풍성한 채소가 가득하다. 지역적으로 기후가 좋아서 요즘에도 상추, 부추 등이 싱싱하다. 가끔 이웃에게 선심을 베풀기도 하고, 코로나 19로 집에 갇혀있어 장보기도 쉽지 않은 요즘에 싱싱한 야채를 먹게 해 주니 아내의 텃밭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잠시 한국에 머무르다 미국으로 돌아온 어느 날부턴가 아내의 가든에 토끼가 나타났다. 비상이다! 

토끼에게 채소밭을 다 빼앗기지 않으려면 대책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한국에서 돌아와 낡은 펜스를 점검하며 처음 만난 토끼는 의외로 대범했다. 나와 마주쳤지만 순순히 돌아갈 의도가 없는 듯 백 야드 여기저기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머물러 있다. 


그런데 다급한 나와 다르게 토끼를 대하는 아내는 의외로 태연하지 않은가?  "야! 너 우리 집 채소 망가트리면 안 돼!"라고 한마디 툭 던지고 만다. 


알고 보니 이놈은 작년부터 왔었다고 한다. 우리 집 백 야드에서 새끼도 낳았고, 새끼들과 함께 왕래하는 사이라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채소밭엔 가지 않는다. 그냥 풀만 뜯고 간다. 평화롭게 공존하는 법을 나름 잘 아는 듯했다.


내가 백 야드에서 이런저런 일을 할 때면 가끔 내 주변에 와서 앉아있다. 내가 손을 뻗어 닫지 않을 만큼만 곁을 내어주며 일하는데 벗이 되어 준다.  

한 번은 지붕을 고치는 사람이 일하고 있을 때 토끼가 왔다. 일하는 분과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사이에 와서 가만히 앉는다. 한참을 앉아서 우리의 대화를 경청하는 모습을 보고 일하던 분이 애완견 같다고 신기해한다.


 이렇듯 자연스러운 동거가 계속될 즈음 어느 날부터인지 토끼가 오지를 않는다. 시간이 지나며 요즘은 나도 모르게 그 동그란 눈망울이 보고 싶어 창밖을 내다보곤 한다.


이름도 지어주고 싶었는데... 

요즘은 토끼 손님이 오지 않는다.



어느 날 가든 한편 치자나무에 레드 로빈이 알을 품는 둥지를 틀었다. 아내는 알을 품는데 행여 방해가 될까 봐 그 주변에는 가지도 못하게 한다. 조심조심 불편한 동거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새끼를 부화했다. 어미새는 먹이활동을 열심히 하며 항상 새끼 둥지를 헌신적으로 돌본다. 

신기한 것은 새끼의 둥지를 남에게 알리지 않으려고 먹이를 물고 바로 둥지로 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항상 둥지 반대편에 도착해서 주변을 살피고 들어간다. 그리고 어미새가 먹이를 주는 동안, 다른 한 마리는 주변에서 경계를 선다.


어미새가 먹이를 물고 둥지로 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무료한 일상을 달래는 중요한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하루는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미가 먹이활동을 나간 사이에 새끼 모습을 보기 위해 접근해 보았다. 초록과 파랑이 조합된 너무도 예뻤던 알의 화려한 모습에 비해 알을 깨고 나온 새끼 모습은 참 못생겼다는 생각이 든다. 벌거숭이 새끼가 인기척을 느끼고 먹이 달라고 크게 입을 벌리며 짹짹 인다. 

정말 못생겼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대부분 동물의 새끼가 어미보다 예쁜 것과 비교해 알을까는 새끼들은 어미가 훨씬 멋지고 예쁜 것 같다.


몇 주쯤 지나 새끼의 커가는 모습이 궁금해서 또 한 번 구경하러 둥지에 갔다. 역시 어미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살살 다가가 치자나무를 들치는 순간 인기척에 놀란 새끼 4마리가 짹짹거리며 둥지 밖으로 뛰쳐나왔다. 아직 제대로 날지도 못하는 다급한 날갯짓으로 땅에 뛰어내려 여기저기 흩어진다. 


순간 어미새가 내 머리 위로 날아와 요란한 소리를 지르며 공격 태세를 갖추고 새끼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든다. 난 당황한 나머지 순간 그 자리에 멈춰서 돌부처가 되었다. 더구나 집 주위에 있는 다른 새들까지 함께 합세하여 요란하게 짹짹이며 일대 소란이 일었다. 

억울하게도 그들은 나를 위험한 공격자로 낙인찍은 듯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우호적인 나의 마음을 알리고 나의 행위가 너의 새끼가 잘 크는지 그저 확인만 하고 싶었다는 것을 알릴 방법은 없었다.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스스로 자책하며 여기저기 땅 아래서 짹짹이며 혼신의 날갯짓을 하는 새끼들을 가까스로 둥지로 옮겨 놓으며 어미새에게 사죄했다. 그 뒤로는 새끼가 커가는 모습은 보일 듯 말 듯 가려진 나뭇잎 사이로 조심스레 훔쳐볼 수밖에 없었다. 


두 마리의 부모 새가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준 덕에 새끼들의 날개가 제법 튼실해져 가는 듯했고, 이제 가끔은 둥지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둥지를 바라보며, 우리 부모들도 자식들을 키워내는 삶의 과정이 어미새가 둥지를 지키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햇살 비추는 이른 아침에 어미새가 제법 모양을 갖춘 새끼 4마리를 데리고 먹이 활동을 하며 양육하는 광경을 바라보는 것은 내게 색다른 즐거움이 되었다. 어미가 땅속에서 벌레를 찾아 물어 꺼내놓으면 새끼 4마리가 조르륵 달려간다. 제법 어미의 먹이 활동을 흉내내기도 하며 성장하는가 싶더니 오래지 않아 어미새와 새끼들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리고, 그사이 다가온 겨울의 문턱에서 새들이 둥지를 떠났다. 새가 떠난 둥지에는 묘한 아쉬움과 서운함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집 우체통 아래에는 아내가 아끼는 꽃이 있다. 이사 온 뒤 얼마 안 되어 씨앗을 직접 발화시켜 키운 보랏빛 도라지 꽃이다. 하지만 매년 도라지 꽃을 보려면 운이 좋아야 한다. 

꽃이 필 즈음에 나타나는 손님 때문이다.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사슴 부부가 우리 집뿐 아니라 동네 모든 집을 가가호호 방문한다. 

그리고 이들 가족이 다녀간 집마다 가든의 꽃들이 시련을 겪는다. 

봄에 피는 튤립을 비롯해 집집마다 사슴가족이 좋아하는 뷔페를 가득 차려 놓고 기다린다.


우리 집의 초대 메뉴는 도라지 꽃이다.

밤새 다녀가기도 하고, 훤한 대낮에 오기도 한다. 도라지 꽃만 똑똑 잘라먹고는 유유히 사라진다. 


그러나, 마을의 누구도 이 사슴가족을 홀대하지 않는다. 기꺼이 자기 집 가든의 꽃들을 초대하지 않은 손님에게 내어준다. 사슴 가족들도 이미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들이 이동하는 모습은 마을의 여느 가족이 여유롭게 거닐며 산책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도 아내의 도라지 꽃이 잘려서 잎과 대만 남았지만 그래도 예고 없이 방문하는 사슴가족이 왠지 밉지가 않다. 다음에 또 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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