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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Chun Mar 28. 2021

아이를 창의적 인재로 키우는 일은 부모 선택에 달렸다.

공감과 선택

세계경제포럼을 비롯한 많은 전문가 집단은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을 "창의적 사고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요약한다. 창의적 사고능력은 미래사회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졸업성적이나 학벌을 채용의 필수 조건으로 여기지 않는다. 보다 창의적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창의적 사고능력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보편적 방식이 아닌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여 누구나 공감하는 효과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사고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창의성의 발달은 호기심에서 시작한다.


문명의 역사를 바꾼 발명가나 과학자들이 갖는 공통적인 특징을 말한다면 "남다른 호기심"과 "무한 상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 아이가 사소한 것들에서도 남다른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한다면, 엉뚱한 사고를 많이 친다면, 그 호기심과 엉뚱함은 미래 문명의 역사를 바꿀 엄청난 자산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이 전후 피폐한 환경에서 세계 과학강국으로 우뚝 서게 된 원인의 중심에는 우리 민족의 명석한 두뇌와 결합한 "빨리빨리"의 문화가 어느 정도 기여를 했다고 본다. 그러나 여전히 기초 과학분야에 단 한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우리 교육의 현실은 오직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남들보다 빨리 선행학습과 사교육에 아이들을 밀어 넣는 부모의 의식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창의성과 인지능력은 천천히 사고하고 오랫동안 경험하며 스스로 느끼고 깨닫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풍선이 부풀듯이 성장해 간다. 뇌 사고 능력이 강력해 지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적 delay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공교육의 면모를 둘러보면 아직까지 아이들의 창의적 사고와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지속적인 연계 프로그램이 미흡하다. 창의교육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창의성을 정의하려는 명확한 연구결과도 흔치가 않다. 창의성을 평가하기 위한 공인된 지표도 없지만, 그나마 시행되는 창의성 교육 프로그램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창의적 인재의 육성에 관한 필요성과, 미래지향적인 공교육의 변화를 이해하고 기다리는 학부모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관심과 호기심을 유발하는 흥밋거리를 누가 어떻게 제공해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은 학부모의 인식 변화가 선행되어야 찾을 수 있다.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우기 위한 교육의 주체로 학교나 학원을 떠나 부모와 가정의 역할이 무엇보다 큰 몫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가정은 매우 중요한 창의 교육의 현장임을 인식해야 한다. 아이들이 안정된 사고를 하고 행복하게 느낄 수 있는 분위기 조성과 자녀들에게 취미활동의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고, 자연을 이해하고, 여행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부모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자녀의 창의성을 키우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생각과 태도"이다.


학부모는 아이들이 유아기부터 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 성장하는 과정에서 애정을 가지고 많은 대화를 하며 감정을 교류하고 마주해 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아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장기 아이들은 생각과 사고의 폭이 가파르게 바뀌는 것에 비해 부모가 자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린 시절의 모습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이러한 사고의 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 흔히 존재한다.

구순된 노인이 환갑 지난 아들을 부를 때 "아가!"라고 호칭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사고의 벽은 청소년 시기에 접어든 자녀들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어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이 되면 자기 아이들에 대해 깜깜이가 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창의성이 빛을 발하며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인생의 첫 번째 도전 무대가 대학이 아닐까 한다. 입시 시즌이 되어 우리 학과에 지원한 학생의 학부모들과 상담을 할 때마다 반복되는 몇 가지 대화 내용은 뭔가 씁쓸한 느낌을 갖게 한다.


"학생의 적성을 고려해서 학과를 선택했습니까?"

"학과의 선택은 미래 자녀가 살아야 하는 삶을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학생과 충분히 소통해서 선택해야 합니다."

 

"나는 잘 모르겠고 그냥 아이가 원하는 학과에 가라고 할 겁니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의외로 많은 학부모는 선택을 자녀에게 미룬다. 선택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율적인 선택을 하도록 두고 보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세상 경험이 훨씬 많은 부모의 역할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이제 자녀의 인생에 관여하고 싶지 않은 듯 보인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아이가 원하는 것과 무관하게 부모의 경험상 이러이러한 학과에 가야 취직이 용이하니 무조건 XX대학 XX학과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경우다. 

학생이 내게 연락해서 꼭 교수님 학과에 가고 싶지만 부모님이 원치 않으니 부모님을 설득해 달라는 것이다. 이경우 부모는 학생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학생을 위해서 부모가 마땅히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두 가지 경우 모두 학생이 학과를 선택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정보에 접근하고, 많은 사람과 소통하며 스스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부모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것이다. 




입학 시즌이 되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 기숙사 앞에서 부모와 이별하는 애틋한 상황을 흔히 볼 수 있다.


한 번은 학부모에게 급한 전화가 왔다.

학생이 기숙사에 혼자 남기를 두려워해서 등록포기를 하고 집에 함께 돌아가야  것 같다는 것이다. 학과장인 나에게 아이를 설득해 달라는 부탁의 전화였다. 학교 입장에서도 결원이 생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학생을 설득해서 남게 하는 것이 당연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학생 가족과 함께 식당에서 만나기로 하고 학교 주변 식당에 자리했다.

"키도 훤칠하고 영화배우 xxx랑 닮았네"라는 덕담을 학생에게 던지며 인사를 대신하고 부모님과 마주했다.

"얘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교수님!"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원인은 학생에게 있는 게 아니라 부모에게 있었다.


학생이 밥을 한 숟가락 들 때마다 부모가 반찬을 골라서 숟가락 위에 놓아주는 것이 아닌가? 이것저것 맛있겠다고 식사 내내 반찬을 놓아주었다. 밥을 남기면 마저 먹으라고 독촉해서 모두 먹게 했다. 학생은 부모가 결정해주는 반찬과 밥을 먹는 것이 매우 익숙하고 편해 보였다.


이 학생은 부모의 애틋한 사랑과 집착 때문에 여태껏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을지 모른다. 대학생활에 대한 호기심과 미래에 도전해보고 싶은 의욕이 마음속에 싹을 트고 자라지 못했던 것이다.


자녀를 대하는데 부모의 태도가 학생 창의성을 완전히 망가트리며 키워온 결과임을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설명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부모 스스로 원인을  깨닫기도 어려울 듯했기 때문이다.


결국, 학생은 부모님과 함께 등록을 포기하고 서울로 떠났다.





"창의성 공학"이란 교과목을 오랫동안 강의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수업시간에 팀 단위로 해결해야 할 어떤 과제를 제시하면 학생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보이는 몇 가지의 행동 패턴을 가진다는 것이다.

우선, 과제를 진행하는 팀을 구성할 때 "나"보다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다른 친구와 팀이 되는 것에 주목한다.


팀이 결정되면 팀장의 역할을 벗어나서 "나"의 역할을 축소하고 쉬운 길을 가려한다.

과제를 진행하게 되면 과제 해결에 매달리는 친구와 아무 역할도 못하고 노는 친구가 공존한다.

과제가 실패로 끝나면 이들 사이에 내분이 생기거나 서로의 관계가 소원해진다.


많은 학생들이 그랬다.


과제 진행의 내용에 있어서는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한 효과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몇 가지 보편적인 접근방법에 국한되어 매년 유사한 결과들만반복적으로 제출된다. 사고의 틀이 정형화되어있는 듯하다.


때문에 이런 행동 패턴에서 벗어나서 "나" 스스로 흥미와 호기심을 느끼도록 유도하고 동기부여의 방법을 고심하는 것이 내 수업의 가장 힘든 점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창의성을 키우는 것은 이제 와서 내가 어찌해서 될 일이 아님을 나는 잘 안다.


창의적인 사고 속에 무언가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인내의 행동은 "호기심" "의욕" "흥미"가 전제된다.

즉,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는 필요성의 동기를 유발하는 일은 흥미와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경험과 소통의 관계 속에서 만족을 경험하며 성장하도록 부모의 적절한 역할이 병행되었을 때 아이의 창의성과 무한상상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본다.




3살 된 아이는 인지능력이 급격하게 성장하는 민감한 시기에 있다. 아이의 보육과 나의 일 사이에 내가 해야 하는 선택은(병행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무엇일까?

1) 아이를 위해 내 꿈을 접고 창의적인 아이로 키우는데 최선을 다한다.

2) 내 인생도 소중하다. 기회가 주어지면 그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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