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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안 Mar 29. 2024

하이야, 네가 있어서 든든해


120일 된 이레가 신기록을 세웠구나. 장장 1시간 20분을 울어대다니. 엄마가 머리를 자르러 가면서 아빠와 하이에게 이레를 부탁했지. 아무리 요즘 이레가 낯을 가리기 시작했다 한들 아빠는 30분 정도 울면 그칠 줄 알았어. 오산이. 육산이었나? 미안, 아빠가 아직도 이레 울음소리에 혼이 나가 는 거 같애.



분유를 100ml나 먹이고, 안고서 돌아다니고, 거실에 있는 유모차에 태워 몇 분을 왔다 갔다 해도 이레는 울음을 그치질 않았지. 이렇게 해도 안 되니까 네가 아예 방에 불을 끄고 들어가 쪽쪽이를 물렸잖니. 아빠는 이때 드디어 성공한 줄 알았어. 심지어 엄마에게 드디어 잠들었다고 카톡까지 보냈잖니. 그런데 카톡을 보내기가 무섭게 다시 칭얼대는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거야. 



아닐 거야, 아닐 거야 고개를 흔들어 보았지만 너의 최후 필살기도 결국 통하지 않은 거였지. 결국 너는 KO를 선언하고 다시 아빠한테로 바통을 넘겼어. 우리에겐 참 긴 시간이었다. It's been a long day. 옴메메 안 쓰던 영어까지 튀어나오는구나.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아빠의 유모차 왔다 갔다 필살기만 쓰면 얼마 안돼서 잠들었거든? 근데 이번엔 아니었어. 언제 그랬냐는 듯 오히려 더 울어대다니. 누구 아들인지는 몰라도 대단했다, 대단했어.



계속된 이레의 울음소리에 우리 둘 다 넋이 나갈 때쯤 들리는 도어락의 삑삑 소리. 아, 우리의 구원자 엄마가 컴백홈 한 거야. 엄마는 한순간에 상황을 정리해주시었지. 엄마 품에 안긴 이레가 울음을 그치고 마을에 평화가 찾아왔다. 할렐루야, 전쟁은 끝났오! 평화의 시대가 돌아왔소!!



그래도 하이야. 아빠는 네가 하일이를 달래는 모습에 진심으로 감탄했단다. 아빠는 널 키우고 기억이 리셋됐는지 육아의 노하우와 감이 어디 갔는지 도통 찾을 수가 없구나. 아까, 너는 너는 쪽쪽이도 물리고, 마저 남은 분유도 이레에게 끝까지 먹이고, 강한 멘탈로 끝까지 울고불고하는 이레를 안고 어르고 달랬지. 대단했어 참.



하이야, 네가 있어서 참 든든하다. 엄마가 괜히 아빠 혼자 이레를 맡기면 불안한데 하이랑 같이 있으면 안심이 된다고 한 게 아니었구나. 아빠는 유리 멘탈이라 하일이가 울기 시작하면 판단력이 심히 흐려지고 정신이 혼미해진단다. 네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니. 무엇보다 이레에게 너와 같은 누나가 있다는 건 큰 복이다, 복이야.



이레와 온종일 씨름하는 엄마에게는 하루 단 몇 분이라도 이레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해. 바깥공기도 쐬고, 운동도 하고, 엄마만의 힐링 시간을 갖는 게 꼭 필요하지. 그러니 우리가 서로 잘 협력해서 엄마의 회복시간을 어떻게든 확보해 주자.



그리고 무엇보다, 물론  이레가 아기이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지만, 아빠는 하이가 우선이란다. 너에게 먼저 다가가 아침 인사를 하고, 포옹해 주고, 너를 우선하는 걸 잊지 않을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랑은 내리사랑이니까.



하이야,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어. 다 씻고 잘 준비 다하면 아빠에게 말하렴. 아빠가 오늘은 평소보다 좀 더 길게 다리 주물러 줄게. 사실 지금 잠이 쏟아지지만 남은 기력을 끌어모아 네가 좋아하는 굿나잇 타임을 만들어줘야지. 얼른 잘 준비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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