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한 밤 독서실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왜 나는 노곤함 속 왠지 모를 벅찬 감정에 사로잡혔을까?
한 학기를 다니고, 고민 끝 재수를 결정했다. 다시 수험생으로 돌아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수능 공부에 매진하던 하루하루. 아직도 기억한다. 어느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느꼈던 설렘과 뿌듯함을. 다시 도전을 선택하고, 목표를 잡고, 그걸 위해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다는 것.충만함이 느껴졌다.
영화 <탈주>, '시작부터 끝까지, 달리고 또 달리자'
영화 '탈주'를 보고 재수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종필 감독은 전작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따듯하면서도 공감이 되는, 작은 희망의 메시지를 탁월하게 전달했다. 이번 <탈주>에서는 새로운 방식과 군더더기 없는 연출로, 관객의 마음 어느 한 부분을 울리는 데 또 다시 성공한 듯하다. 그게 나에겐 재수의 기억. 뭔가를 시도하고, 도전하고 있다는데서 분명히 느꼈던 충만함과 희열이었다.
"허튼 생각 말고 받아들여, 이게 니 운명이야."
"남쪽이라고 다 지상낙원일 것 같애?
"실패는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해보고 싶은 거라도 실패하고, 또 해봤다가 실패하고. 여기선 실패조차 할 수 없으니, 내 마음껏 실패하러 가는 겁니다."
나의 재수는 실패였다. 고3 내내 꿈꿨던 대학에 결국 가지 못했다. 이후로도 실패는 계속됐다. 카투사를 지원했으나 실패. 공군 학사장교 시험을 봤으나 낙방. 이후로도 무수한 실패와 낙방이 지속되었다. 하지만 시도하고 도전하는 와중에 새로운 길이 열렸고, 그게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영화 <탈주>, 나는 무엇이 두려운가?
이종필 감독은 말한다. 주인공 규남이 탈북에 대한 고민이 많았겠지만 그걸 실행했을 때 두려움과 불안 속 쾌감이 있었을 거라고. 가능성을 봤을 거라고. 나의 의지를 가지고 개인이 해볼 수 있는 것을 해보는 게 중요함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확실히 그렇다. 행복은 특정한 목적지가 아니다. 행복은 길 위에 있다. 행복 자체를 잡으려 하면 행복은 달아나는 법. 그러나 어떤 목적과 꿈을 갖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 집중하고 몰입하고 하루의 일상들을 성실히 살아가는 과정 속에 행복이 있다.
영화는 말한다.오늘도 가서 마음껏 실패하라고. 시도하고 도전하는 과정 속에 행복이 있다고. 집중하고, 몰입하고, 교감하며 깨달음을 얻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