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아내의 생일을 맞이한다. 그동안 이 시기마다 치열하게 선물을 고민했지. 열한 번의 각기 다른 선물을 통해 나는 그녀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그저 그래 하고, 어떤 거에 실망하는지 알게 됐다.
트레이닝복 세트와 출퇴근용 워킹화. 일상에서 자주 쓰는 걸 선물해 주는 게 좋겠단 라는 생각에 했던 이 선물들. 아내에겐 실패였다. 가끔 입기도 하고, 신기도 했으나 반응은 그저 그랬다. 꽤 비싼 메이커의 트레이닝복과 워킹화였건만.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러 가지 분석 끝에 아내가 선물로 받기 원하는 제품 군들이 따로 있음이 밝혀졌다. 예쁘고 여성성을 살려주는 물건들. 귀걸이, 목걸이, 팔찌, 그리고 핸드백 등...
이런 류의 선물을 했을 때, 아내의 얼굴에 스쳐가는 환희와 기쁨을 확인했다. 설사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바꾸러 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런 선물들은 언제나 평균 이상의 반응을 일으켰다. 안전빵이라고나 할까. 물론 비싸긴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의 생일에 깜짝스런 선물을 준비하기보다는, 아내에게 선물로 갖고 싶은 걸 미리 묻고, 그걸 사주게 된다. 아내도 이걸 더 선호하고, 언젠가부터 이게 더 자연스러워졌다.
아내의 생일이 다가오니, 아이가 내게 묻는다. "아빠, 이번 엄마 생일 때는 어떤 거 준비할까? 엄마한테 뭐 갖고 싶은지 한 번 물어보자."
그래, 엄마의 생일은, 아내의 생일은 어쩌면 집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기도 하니까. 좋은 자세야. 엄마가 했던 말이 맞지. '나는 우리 집의 날씨야. 내가 기분이 좋고 행복해야 그게 다 아빠랑 너희들에게도 간다구!' 맞아, 그렇지. 잘 준비해야지. 아무렴, 그렇고 말고.
"엄마 이번 생일 때 뭐 갖고 싶어~?"
아내가 잠시 고민하더니 말한다.
"집..."
순간 당황한 아이.
"아니. 장난치지 말고, 다시 말해 봐~!"
"집..."
그래, 올해 말에 우리는 전세 계약 만료로 이사를 가야 한다. 2년마다 계속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이번엔 또 어느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할지.
다음날, 아내와 둘이 있을 때 다시 한번 물었다.
"여보, 이번 생일 때 갖고 싶은 거 없어? 말해봐~"
아내는 먼산을 보듯, 허공을 응시하며 말한다.
"집.. 집...."
아무래도 가장 어렵고 난해한 '아내의 생일'이 될 듯하다.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