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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안 Oct 02. 2024

어머니의 휴대폰을 바꿔드리는 일


어머니의 휴대폰을 드디어 바꿔드렸다. 마음속에 계속 짐처럼 남아있던 일. 명절 때나 이따금씩 어머니를 만날 때 오래된 휴대폰을 보며 '언제 좀 바꿔드려야 하는데' 생각만 하고 도무지 실행을 못했건만. 드디어, 드디어 바꿔드렸고, 마음이 후련하다. 아내 덕분이다. 아내는 확실히 휴대폰을 비롯한 전자기기 구입에 눈이 밝고 정보력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과 인내를 투자해줬다.



나는 별생각 없이 가까운 대리점에 가서 적당한 모델로 사드리면 되겠지 했지만, 아내는 미리부터 지원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모델 2개를 정해놓고 아는 단골 가게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어머니가 휴대폰을 결정한 후에는 개통 전까지 미리 연락처와 어플 등 데이터를 옮겼는데 이것도 보통일이 아니었으니.



특히 은행 어플들은 일일이 다시 인증하고 로그인을 해야 했고, 그 외 동기화 작업도 상당한 시간이 걸려 거의 2시간이 소요됐다. 그럼에도 아내는 어머니가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들을 하나하나 찾아내는 인내심을 발휘, 모든 어플들이 새 핸드폰에서 잘 작동되도록 만들어줬다. 이로써 아내 덕분에 나의 오랜 숙원 사업이던 '휴대폰 바꿔드리기' 미션이 완수된 것이다.





나는 왜 어머니의 휴대폰에 이토록 마음이 쓰였을까. 일차적으로는 어머니의 휴대폰이 많이 오래돼서 배터리가 빨리 방전되고 필수적인 어플들이 잘 열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음 더 깊은 곳에는 그동안 어머니가 베풀어주고 해 주신 것들이 무수히 많지만, 나는 이 휴대폰 하나 제때 바꿔드리지 못했다는 죄송한 마음이 있었다.



여유 있는 형편은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내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되면 과감히 돈을 쓰셨다.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당시로선 고가인 7만 원 상당의 'K캅스 파이어 제이데커드 합체로봇'을 사주셨고, 대학생 때는 지금도 기억하는 이름의 휴대폰, '연아햅틱'을 사주셨다. 군악대 플루트병으로 있던 군생활 시절에는 플루트와 비슷하지만 더 작은 '피콜로'라는 악기에 매료된 적이 있었는데... 이것도 지금 나 스스로 의문이다.



아무리 내가 매료됐다 하더라도 그냥 부대에 있는 플루트만 잘 불다가 전역하면 되는데, 내가 하사로 연장복무를 고민한다고 해서 그러셨던걸까? 결국 어머니는 고민 끝에 상병 초반의 휴가 때 광화문 야마하 매장에서 피콜로를 주셨다. 군생활에 잘 적응하면서 거기에 새로운 악기를 배우고 싶다는 열의가 기특해서 그러셨던 것일까. 지금 생각해도 피콜로는 내게 정말 큰 선물 이었다.



돌아볼수록 어머니는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라면, 없는 형편에도 과감히 사주셨다. 이게 나에게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또 하나의 격려이자 지지였고, 잊지 못할 선물이자 추억이었다. 내가 부모가 되고, 가정의 재정을 맡아보니 어머니가 내게 해주신 것들이 얼마나 특별한 일이었는지 더욱 느낀다.



당신은 핸드폰에 별로 관심 없고 전화랑 카톡, 몇몇 어플들만 잘 되면 괜찮다 하신다. 그러나 내가 좋다. 더 가볍고 슬림하고 화면도 쨍쨍한 새 핸드폰을 어머니 손에 쥐어드리니 내 마음이 날아갈 것 같다 - 까지는 아니지만, 기분 좋고, 시원하고, 뿌듯하다.



앞으로 연세가 들수록 다른 가전기기나 물건들도 내가 조금 더 신경 써서 사드려야겠다. 물론 아직은 부모님 두 분 다 일을 하시고 직접 구매하실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자녀가 직접 사주는 건 아무래도 기분이 다를 테니까.



휴대폰을 하나 바꿔드리고, 그동안 내가 부모님에게 받았던 크고 작은 선물들, 추억들, 격려와 응원들을 찬찬히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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