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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재시'를 경험하며

최선과 떳떳함

by 김이안



'재재시'


이번에 시험에서 떨어지고, 한 번 더 떨어진 후 들은 말이다. "재재시 준비해주세요" 허허. 재시험 앞에 거듭 '재' 한 글자가 더해진 것뿐인데, 이 말을 듣는 순간 어찌나 부끄럽고 창피하던지.



자격증 과정 중간고사. 일단 60점만 넘으면 통과라고 하길래 스스로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도 있다. 그러나 막상 준비해보니 외워야 할 것들은 많고. 머리에 쉽사리 들어가지는 않아 당황했다.



'이거 한 번에 패스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점점 더 짙어졌다. 그래도 1주일 동안 나름 자투리 시간 빼내서 틈틈이 공부하고, 외울 내용도 녹음해서 이동 중에 듣고 다녔건만. 더 미리부터 시작하고 암기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첫 번째 시험에 좀 더 최선을 다했어야 했다. 생각보다 공부할 게 너무 많아 당황스러워도, 전날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해볼 수 있는 대로 최대한 음전기 양전기를 끌어모아 벼락을 쳐야 했다. 이제 와서 보니, 전날밤 11시에 출출하다고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잠시 휴식한답시고 30여 분간 핸드폰을 봤던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차라리 24시간 무인 카페를 갔어야 했다. 아무리 아이들을 다 재운 한밤중이라도, 집은 공부하는 곳이 아님을 망각했다. 공부를 방해할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였다.






첫날 시험 후 이튿날 재시험 명단에 내 이름 석자가 박혀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재시 응시자에 이름이 올라가니 씁쓸하고 부끄럽다. 여기서 나는 정신을 바짝 더 차렸어야 했건만. '재시험은 그래도 첫 시험에서 나온 것 거의 그대로 나오겠지' 하는 이 나태하고 안일한 자세가 결국 재시험도 낙.방.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재시험 이틀 전, 수요일 밤. 나는 무슨 정신으로 '더 폴 디렉터스 컷'이란 영화를 봤단 말인가. 아무리 영화관에서 꼭 봐야 하는 영화라는 소문을 들어도 그렇지. 재시험만큼은 진짜 눈에 불을 켜고 바짝 공부했어야 했는데, 재시험까지 떨어지고 나니 후회도 이런 후회가 없다.



재재시. 곧 3차 시험에서야 겨우 합격한 이번 사건을 통해 나의 나태함과 안일함, 어리석음에 치를 떨었다. 담당 강사님들에게도 부끄러웠지만 나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부끄러움의 무게가 더 컸다.



'최선'은 가장 '최'와 착할 '선'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단어. 국어사전에서는 '최선'을 '온 정성과 힘'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렇기에 최선을 다한다는 건 '온 정성과 힘'을 들여 노력해 본다는 것.



전에 소설가 김영하는 '최선을 다하면 큰일 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유인즉슨 '인생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60-70프로 정도만 쏟아붓고, 내 체력과 능력과 에너지를 어느 정도 남겨놓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래야 어떤 기회가 왔을 때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기도 하고 한 분야에서 꾸준히 롱런할 수 있다는 뜻.



황선우, 김혼비 작가의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라는 제목의 책도 비슷한 맥락에서 말한다. 계속해서 최선을 다하면 번아웃과 과로로 몸과 마음이 망가진다고. 번아웃은 휴식과 일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를 불태워 나 자신을 사라지게 하는 거라고. '애써서 쉬는 시간을 확보하고 에너지를 비축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시험'만큼은 다르다. 1주일이든 , 2주일이든, 한 달이든 이때만큼은 에너지의 줄기를 하나로 집중시켜서 쏟아내야 한다. 돋보기로 빛을 모아서 한 점으로 종이를 태우듯, 집중하고 몰입하며 공부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시험에 원하는 점수가 안 나오거나 불합격 통보를 받아도 덜 흔들릴 수 있다. 떳떳하니까. 그 과정만큼은 내가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하지만 나처럼, 시험이 코앞인데 영화를 본다거나, 라면 먹고 휴대폰 하다가 배가 부르고 졸려서 그대로 자버리면, 이건 후회가 된다. 자괴감이 든다. 그렇다 자괴감. 나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는 자괴감. 여기서 오는 괴로움이 정말 쓰디쓴 괴로움이다.



이번 '재재시 응시' 사건을 통해, 다시금 다짐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시험기간 만큼은 다른 것 차단하고 공부에 몰두해야 한다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그래야 나중에 떳떳하다고. 물론 며칠 동안 계속 밤을 새며 준비할 순 없겠지. 그러나 생활의 루틴을 시험에 맞춰서 잘 챙겨 먹고, 적당히 수면을 취하면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공부해야 한다.



다음 2차 시험과 자격증 시험도 물론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준비하는 과정이 나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도록 남은 3개월은 집중할 땐 바싹 집중하고, 쉼을 줄 땐 여유를 주면서 비축하기를 잘 해봐야겠다.



매번 최선을 다하는 건 위험하다. 그러나 고시 준비가 아닌 중,단기 시험공부는 에너지를 한 데 모아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쏟아부어야 한다. 과정이 떳떳하고 부끄럼 없어야한다. 그래야 어떤 결과든 나 자신에게 보약이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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