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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란 Dec 24. 2021

제가 변호사는 아니고요, 변호사님은 재판 중이에요.

법률사무원의 주 업무는 무엇인가. 법률사무원의 업무환경 4!

변호사님...?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다 보면 가장 많이 하는 것 중 하나가 전화업무다. 재판부, 검찰, 경찰, 타 법률사무소, 행정기관, 의뢰인, 상담 오는 사람 등 하루에도 수십 통의 전화를 받고는 한다. 쓰니가 다니는 법률사무소의 경우 얼마 전까지는 쓰니가 직접 전화를 다 받은 다음 전화를 돌리고는 했는데, 새로 온 직원이 업무가 좀 익숙해져서 전화업무를 넘겨줬더니 세상에나 요즘은 이렇게 일하기가 편해졌다. 중간에 일하다가 전화받느라 끊기는 경우도 거의 없고 나한테 필요한 전화만 오니 말이다. 물론 우리 신입직원은 조금 힘들어하는 눈치다.

어쩔티비

    보통 법원, 검찰과 통화할 때 말(사회적 언어)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쓰니는 군대에 있을 당시 전화를 정말 싸가지 없게 받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변명을 조금 하자면 필요한 말을 제외한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전달할 내용이 있으면 전달만, 요구사항이 있으면 요구사항만 이야기하고 전화를 끝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맞지 않은 게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보통 법원과 재판부에 전화를 하면 사건번호를 이야기하면서 업무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작가의 경우 정말 친절하게 이야기하려고 애를 쓴다. 

예전 같았으면 “여보세요” 와 동시에 “사건번호 말할게요. 2021가단123456 인데 기일변경 때문에 전화했어요.” 

이렇게 필요한 정보만 이야기했을 텐데 신경을 쓰고 난 뒤에는 

“안녕하세요- 법률사무소입니다.
혹시 사건번호 말씀드려도 괜찮을까요?” 

요렇게 이야기를 한다. 위 문장과 아래 문장의 차이에서 느껴지듯 벌써 저 첫마디에서 상대방의 말투가 달라지는 걸 느끼곤 한다. 여담으로 한 사건 때문에 조금 친해진 법원 직원과 길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한번 있었는데, 쓰니의 목소리가 정말 특이해서 기억에 남기도 했지만 말투가 친절해서 바로 구분이 가능했다고 한다. 주변 사람에게 물어봐도 저렇게 이야기하는 경우 없이 바로 사건번호를 말하고 이야기를 시작한다고 한다.

목소리라도 좋아야징

    법원과 검찰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법원이나 검찰청이나 그곳이 그곳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큰 차이가 있다. 법원 업무나 검찰청 업무나 비슷하기는 하지만 일처리를 하는 프로세스 자체가 다르다. 특히나 검찰에 전화해서 민사소송 관련된 일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고는 하는데 나는 아니었길 바란다. 법원/검찰청 공무원들의 경우 나 역시 공무원을 하고 나와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고 있는지는 대략적으로 알 수 있지만 가끔은 뭐하는 사람일까 싶을 정도로 불친절한 사람도 있다. 그런 경우는 당연스레 언성이 높아지면서 서로 안 좋은 감정을 주고받기도 하는데, 대개의 경우 건조하고 차갑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경우가 더 많다. 위에 언급한 직원하고도 이야기를 나눴던 부분 중 하나인데 법률사무소나 법무법인에서 전화 오는 경우에는 그래도 공통점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같은 업무를 하고 있으니 말이 통하지만 일반 민원인의 경우에는 정말 힘들다고 한다.


관계자가 듣게 되면 조금 억울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법원과 검찰 모두 다 전화를 정말 안 받는 경우가 많다. 특히 민원실(!) 법원의 경우 검찰에서 받은 사건번호(약식 또는 공판)로 법원 번호를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화를 받지를 않으니 애가 타서 미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변호사님은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고 하지, 법원은 전화를 안 받지. 물론 법원과 검찰 직원들의 마음도 이해가 가기는 한다. 우리에게는 전화 한 통이지만 그들에게는 정말 수십 통의 전화이기도 하고 일처리가 정말 바쁘다는 것도 얼추 들어서 알고 있기는 때문이다. 다만 업무가 바빠 못 받는 경우에는 재판 중 자동응답(법원의 경우 해당 재판부가 재판 중인 날에는 위 문구처럼 자동응답을 틀어놓는 경우가 더러 있다)을 넣어주면 알 수 있는데 아무 말도 없이 전화만 안 받으면 정말...

공무원도 힘들어요.

    경찰 이야기를 하자면 경찰과 법률사무원의 관계는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이것도 사람 바이 사람이라는 말과 동일하다. 정말 친절해서 민원실의 칭찬합시다 카드를 넣어주고 싶은 수사관이 있던 반면 전화상으로 실제 언쟁을 했을 정도로 불친절한 수사관도 있다. 우스갯이야기로 변호사와 경찰은 사이가 안 좋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정말로 우스갯이야기일 뿐이지 실제로는 어떤지 변호사가 아니라 잘 모르겠다. 그러나 수사관이나 사무원 모두 그냥 업무상 통화를 나누는 것 말고는 크게 접점이 없는데 왜 그리 스트레스가 많은지, 일례로 사건번호를 물어보면 어차피 검찰 송치되면 검찰번호 나오니 신경을 쓰지 말라는 수사관도 있었다. 이래나 저래나 결국 욕먹는 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은 사람 때문이라 생각이 든다.

정말 눈살 찌푸려질 정도로 별로인 사람도 있는 법...

    지금처럼 전화를 하는 경우와 반대로 전화가 오는 경우는 역시 의뢰인인데 의뢰인의 가장 큰 불만 중 하나는 왜 변호사가 아니라 직원과 통화를 하냐는 것이다. 사무실에서도 그런 전화를 몇 통 받았는데 그때 했던 변명을 이곳에 붙여 적자면, 

1)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면 변호사님과 통화하고 싶다고 하면 되지 굳이 나에게 화낼 일은 아니다.
2) 직원과 통화하는 것은 어떤 법률적인 상담과 조언이 필요한 부분이 아닌 소송과 관련된 업무적인(행정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변호사님과 직접적으로 통화가 필요한 부분이 아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나쁘셨다면 사과를 드리고 말씀드린 부분에 대해서는 고쳐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는 한다. 참 성격이 많이.... 죽었다.... 내용은 위에서 언급한 게 실제로 쓰니가 하고 있는 생각이기도 하고, 우리 사무실에 경우 법률적인 조언이나 동의가 필요한 부분은 실제로 변호사님이 통화하시고 특히나 월말에 현재까지 진행사항에 대해 정리해서 변호사님이 직접 보내주고 있다.


물론 의뢰인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본인에게 있어 앞으로의 인생이 좌지우지될지도 모르는 중요한 소송이고 돈은 돈대로 쓴 일인데 제대로 되는 것 같지 않으면 화가 많이 날 만도 하다. 무엇보다 이런 분위기를 만든 건 법률시장이 제대로 발전이 안된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브로커라 불리는(지금도 있다고 들었다) 외근사무장들이 사건을 다 수임해서 변호사에게 넘겨주고 수임료를 먹으면서 본인이 변호사인 마냥 행사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거기서 나온 불신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걱정하지 마라 소송이 실패해도 우리에게는 더블배럴 샷건이 있다.


    상담전화를 주는 의뢰인의 경우는 이번 글은 조금 팁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일단 제일 많이 물어보는 질문. ‘이거 소송할 수 있나요?’ 위 질문에 대해 법률사무소 3년 차, 현재 법학과 2년 차인 작가가 대답하자면 ‘소송은 누구나 가능해요. 판사님이 기각해서 그렇지.’이다. 무슨 말이냐면 위 질문은 명제 자체가 오류이다. '소송할 수 있나요' 라는 말은 어떻게보면 맞지 않는 문장이다. 위 문장을 올바르게 고치면 ‘이 사건 소송했을 때 승소(승리)할 수 있을까요?’이다. 혹은 ‘이 사건 소송으로 하면 승소할 수 있을까요? 없다면 다른 방법이 있나요?’가 가장 맞는 답일 것이다. 상담을 오는 사람들 대게 준비 없이 와서 말하는데 시간만 허비하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옆에서 보면 안타까운 경우도 참 많다. 아래에는 쓰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법률상담을 받게 된다면 필요한 항목에 대해서 정리를 해보았다.


1. 사건에 대한 개요

: 변호사에게 상담받고자 하는 사건에 대해 육하원칙으로 간략하게 설명해주면 된다.

대부분 감정이 복받쳐 말을 잘 하지 못할 때도 있는데 그럴 경우에는 그냥 글로 써와도 괜찮다.


2. 당사자간 누구인지, 알 수 있는지

: 사건의 당사자가 누구인지 모르면 사건이 진행이 안된다(혹은 정말 느리게 진행된다).

그러나 휴대폰 번호만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찾을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가니 상대방이 누구인지, 혹은 알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3. 소송이 가능하자면 승소할 수 있는지, 없다면 다른 구제방법이 있는지.

: 대부분의 법률사무소가 승소율을 광고하는데 개인적으로 의미 없는 광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효과는 있겠지만) 

승소율을 높이려면 승소할 사건만 맡으면 된다. 

이 사건이 승소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사실 의미 없는 질문이기는 하나, 나쁜 법률사무소를 가릴 수 있는 요소 이기도하다. 정말 법률적 논쟁이 필요한 사건이라면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식으로 확답하지 않을 것이고, 승소율이 높다면 가능성에 대해 시사해줄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법률사무소가 아니라면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 자칭할 것이다.


소송이 아니더라도 다른 구제방법이 있다면 설명을 통해서 다른 방안을 찾아볼 수도 있다.

위 3가지는 쓰니가 전화로 오는 법률상담 문의자에게 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너무 에바인 소송은 그냥 포기하고 잊고 살자. 그게 더 편하다.

    참고로 법률상담은 유료가 원칙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쓰니가 법률사무원이기 때문에 하는 말일 수도 있는데, 법률사무소나 법무법인은 자선기관이 아니다. 무엇보다 변호사들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거나 누가 지칭해서 시킨 것이 아닌 스스로 공부해서 얻어낸 전문자격증이다. 즉, 법률상담은 재능기부가 아니라 명확한 업무이자 상호 간 제공되는 서비스 재화인 것이다. 무료 법률상담은 대한법률구조공단 등 할 수 있는 곳이 많다. 법률사무소에 전화해서 왜 무료로 해주지 않냐며 따지는 경우가 없기를 바란다.


    상담전화 대부분은 바로 본인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사람이라 이야기하는 분도 있는데 그럴 때면 그냥 이렇게 이야기한다. “제가 변호사는 아니고요. 변호사님은 재판 중이에요. 연락처 남겨주시면 제가 상담 회신드리도록 도움드릴게요.” 개인적으로는 아는 척하면서 상담을 해주고 싶기는 한데, 변호사가 아닌 법률사무원이 상담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기억해주세요. 저는 변호사가 아닙니다.

변호사가 아니라 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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