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엄마가 엄마라서.

키우는 걸 잘 못하는 엄마라서 미안.

by 로지

"쌩쌩이한테 엄마는 어떤 엄마야?"

"응?"

"나쁜 엄마야?"

"응!"

"소리 지르는 엄마야?"

"응!"

"그럼, 엄마가 없으면 좋겠네?"

"응!"

"다른 엄마로 바뀌면 좋겠다. 그렇지?"
"어!(당연하니 더 묻지 말라는 투)"


이렇게 시원하게 대답해줄 거라 생각하진 않았는데, 너무 쿨하게 답변한 통에 할 말을 잊었다. 나도 안다. 내가 친절하지 못한 엄마라는 거. 그런데 말이다. 대체 친절한 엄마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진짜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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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Zosia Korcz on Unsplash


나는 키우는 건 뭐든 잘하지 못한다. 화분이 집에 들어오면 살아나가는 법이 없다. 다육이고 선인장이고 종류에 상관없이 다 죽어나간다. 장수한다는 거북이도 키워봤고 새끼를 너무 많이 낳아서 문제라는 작은 물고기도 얼마 못 가서 결국 다 죽었다. '물만 주면 돼요.' "얘는 그냥 걸어둬도 잘 살아요.' 이런 말은 내 손을 닿으면 모두 근거 없는 말이 된다. 그렇다. 나는 뭔가 기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며칠 전, 문득 '오늘 하루 종일 아이에게 긍정의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구나.'를 깨닫는 순간이 있었다. 정말 눈 뜨고 잘 잤냐는 다정한 인사 한 마디 없이 "늦었어. 수업 시작했잖아!" "그렇게 앉아서 공부가 돼?" "수업 중인데 책상도 없이 지금 뭐하니?"를 시작으로 왜 이랬니, 이건 이렇게 하지 말랬지, 이건 뭐야? 만 하고 있었다.

큰 아이는 동생들을 대하는 말투에 기본적으로 짜증과 힐책이 묻어난다. 툭하면 큰 소리를 내며 짜증스럽게 말하는 아이를 보면 꽤나 거슬리지만 할 말이 없다. 나를 쏙 빼다 박은 것인 걸 누굴 원망하겠는가.


이러지 않으려고 남편과 이야기도 많이 한다. 책을 읽고 생각도 많이 한다. 그런데 왜 행동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 걸까? 도대체 나는 왜 아이들의 엄마가 된 것일까?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면 내가 엄마인 게 아이들에게 불행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런데 왜 고쳐지지 않을까? 법륜 스님 말씀처럼 안 해야겠다는 행동을 했을 때 108배를 하거나 전기 충격기로 지질 정도로 간절하지 않아서 일까?


물론 체력이 따라가지 못하거나 잠이 부족하면 더욱 심해지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운동도 하고 잠도 충분히 잔다. 배가 고프면 더욱 짜증을 많이 내니 제때 양질의 끼니를 먹기 위해서도 노력을 한다. 갓난아이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 시기는 조금 지났다. (그렇다고 편해진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그럼에도 왜 나는 여전히 육아에 허덕이고 아이에게 짜증과 신경질을 내면서 '엄마'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걸까? 이럴 거면 차라리 엄마 말고 다른 걸 하는 게 모두에게 행복한 길은 아닐까?


저녁 밥상에 둘러앉아 "내가 오늘 애들한테 하루종이 화만 내고 있더라고."라며 바뀌지 않는 나의 모습에 만사를 다 놓고 싶은 마음을 에둘러 털어놓았다. 신랑은 특유의 유쾌함으로 "엄마가 잘못했네. 그러게 왜 그랬어." 라며 웃고 넘긴다. 내 표정이 평소보다 조금 심각해 보였는지 웬일로 말을 덧붙인다.

"그게, 너네 엄마가 뭘 키우는 걸 잘 못해서 그래. 마음은 앞서서 이것저것 해보는데, 키우는 데는 영 소질이 없거든. 욕심은 많아서 애는 많이 낳고 싶다더니 역시 키우는 걸 잘 못해. 그래서 그런 거야." 한다.


'엄마'라는 이름을 단 지 8년이다. 적지 않은 기간 시행착오를 겪었다면 이젠 조금씩 변화된 모습을 보일 때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남편의 놀리는 듯한 말속에서 위안을 받았다면 우스울까 모르겠지만, 인정하고 나니 한결 마음은 편하다.


그래, 나 키우는 거 잘 못해. 그런데 엄마가 되니까 자꾸 뭘 키우래. 애도 키우고, 강낭콩도 키우고(첫째 학교 과제), 버섯도 키우고(둘째 가정학습), 유칼립투스(식목일에 가져옴)도 키우래. 애만 키우는 것도 못해서 매번 자책하고 반성하고 그래도 안돼서 하루에서 몇 번을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데, 자꾸 뭘 키우래. 나 키우는 거 잘 못해. 그러니까 나한테 자꾸 키우라고 하지 말고 알아서들 크자.


할 수 있는 것들만 하는 엄마가 되련다. 조금 더 친절하고 수용적인 엄마가 되면 좋겠지만 잘 안 되는 걸 어떡하겠는가? 이렇게 생겨먹은 것을. 미안하다. 뻔뻔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평생 같이 살아야 하는 엄마가 나니까 너네가 적응하자. 엄마 닮지 말고 너희들은 상냥하면 더 좋긴 하겠는데... 뭐 나도 안되는걸 어떻게 강요하겠니. 우리 그냥 주어진대로 적응하고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모습을 살아보자. 진짜 미안하다. 엄마가 엄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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