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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란희 Oct 22. 2022

더 이상 화내고 싶지 않습니다

책을 만나 다행입니다

엄마에게는 5세, 7세 딸이 있습니다. 엄마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두 눈을 부릅뜨고 차디찬 목소리에 칼날 같은 말들을 꽂아 사방에 던집니다. 가냘픈 어린아이들은 피할 수 없어 몸을 작게 더 작게 움츠립니다. 아이들은 날카로운 말에 그대로 찔려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눈물만 흘립니다. 엄마는 분노의 괴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공포에 질린 아이들의 표정을 본 순간 엄마는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나는 왜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거지? 이건 훈육이 아니야. 내 감정을 마구 쏟아부은 거뿐이야. 왜 화를 참지 못하는 걸까?, 왜 어른다운 모습을 갖추지 못한 거지?, 왜 내 마음인데 내 뜻대로 안 되는 거야. 다른 사람한테는 내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서 왜 아이들에게만 감정적으로 표현하는 걸까? 도대체 왜 나는 이리 화가 많은 거지. 이 화는 어디서 비롯된 거야?’     



엄마는 7살 아이를 부릅니다.  

   

“엄마가 화내고 혼내서 미안해.”

“.......”

“엄마가 다시는 화내지 않을게.”

“거짓말. 엄마는 화내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또 그럴 거잖아.”     


아이 말이 맞습니다. 엄마는 몇 번이나 화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아이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그럼 앞으로 줄여나갈게. 10번 화낼 거 9번, 8번, 7번 이렇게 줄여나갈게.”

“약속해.”     



아이는 작은 새끼손가락을 엄마 앞에 내보입니다. 엄마는 아이의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걸며 다시는 화내지 않을 거라 다짐합니다. 엄마 품 안에 안긴 아이의 등을 한참을 쓰다듬으며 아이와의 약속을 마음에 새깁니다. ‘내가 왜 이렇게 화를 내지는 내 마음 먼저 살펴봐야겠어. 더 이상 감정적으로 화내고 싶지 않아. 이건 내가 원하는 엄마의 모습이 아니야.’    

  


엄마는 버스를 타고 가다 창밖의 한 장면을 보게 됩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두 손을 앞에 모으고 시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 앞에는 여자 어른이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아이에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길 건너 버스 안에 있는 엄마까지 분위기를 감지할 정도로 싸늘했습니다.     


‘아니 길에서 다 큰 아이를 저렇게 혼내는 걸 보면 집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나는 절대 저런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      



절대 되고 싶은 않은 엄마의 모습을 자신이 하고 있을 때 엄마 역할을 그만두고 싶습니다. 엄마 자격 없음에 도망치고 싶습니다. 유아기 때 엄마와 관계가 좋지 않으면 사춘기 때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고 하는데 벌써 걱정이 앞섭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긋난 것일까요?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엄마 자신부터 마음을 다스리고자 합니다. 원하지도 옳지도 않은 행동을 하는 자신을 바로잡고 ‘변화’ 하기 위해 엄마는 책을 선택합니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책이 아닌 엄마 자신을 위한 책을 읽기로 합니다.          

 





엄마가 되고 나서 저의 새로운 모습을 봤습니다. 감정의 밑바닥을 확인하니 사람의 타고난 본성이 악하다는 순자의 성악설이 맹자의 성선설보다 인간을 제대로 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몇 권의 책을 읽는다고 단번에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의 패턴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 감정이 지속된 시간만큼 있어야 달라질 거 같았습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에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감정 조절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알아차리기입니다. 지금 내 감정이 무슨 감정인지, 0부터 10까지 봤을 때 어느 정도 수위에 있는지 측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독박 육아 시절 저의 분노지수는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한 것 중 최고치였습니다. 제 안에 그런 악한 모습이 있다는 사실조차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이야기도 잘 들리지 않고 이해도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더욱 화를 냅니다. 돌쟁이 아기가 울면 달래기 위해 어른들은 재빨리 화제를 전환합니다. 좋아하는 장난감을 주기도 하고 안아서 장소를 이동하기도 합니다. 격하게 우는 돌쟁이 아기를 앉혀두고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단다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감정이 고조되어 있을 때는 빨리 화재를 진압해야 합니다. 지금 바로 화를 진정시킬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화를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찾은 것이 필사입니다. 천천히 손으로 쓰면서 호흡을 조절합니다. 책을 만나면서 필사를 꾸준히 했던 습관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화가 나면 이를 알아차리고 책상으로 이동합니다. 노트와 책을 꺼내어 일단 베껴 쓰기를 합니다. 한참을 쓰다 보면 가슴에 있던 분노가 팔을 따라 손가락을 지나 펜 끝으로 에너지가 흘러나갑니다. 감정이 가라앉아 상황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때까지 필사를 합니다. 노트의 반은 책의 본문 내용으로 채우고 반은 떠오르는 생각을 적습니다. 여백에 지금 왜 화가 났는지,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묻고 답을 써봅니다. 생각을 글로 쓰다 보면 정리가 되고 내가 쓴 글을 다시 보면서 사실은 그리 화낼 일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지금 화가 난 것은 지금의 문제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인 것에 대한 폭발이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며 계속 써 내려갑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답답한 마음이 들 때면 필사를 합니다. 쓰는 행위 자체에서 마음이 풀어지고 감정이 고요해집니다.     



아마 감정을 전환시키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면 분노의 감정은 더 커졌을 것입니다. 밖으로 나가 달리기를 하거나 잠을 자는 것도 기분 전환에 좋은 방법입니다. 자신만의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몇 가지 알고 있고 평소에 했던 행동이라면 실행하기가 수월합니다. 매일 필사를 통해 좋은 글을 제 안에 새기는 작업이 익숙해지면서 감정이 격해졌을 때 책과 노트와 펜을 찾게 됩니다. 소용돌이치던 강물이 잔잔해지며 불순물이 가라앉듯이 화가 가라앉습니다. 감정이 누그러지면 그제야 필사를 했던 글의 의미가 들어옵니다. 생각을 통해 사건을 재해석하고 다시 바라봅니다. 이제는 같은 일로 감정이 이전처럼 격해지지 않습니다.    

  


‘화내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화는 참는 게 아니라 건전한 방법으로 풀어내야 합니다. 이성적일 때는 ‘화내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이 지켜지지만 감정이 더 커지면 지킬 수 없게 됩니다. 습관으로 자리 잡은 무분별한 화내기는 무의식까지 바꿔야 합니다. 65일 동안 <채근담>을 매일 새벽에 필사하다 보니 마음훈련이 되었습니다. <채근담> 필사로 하루를 시작하니 글의 기운이 온종일 이어지는 듯했습니다. “성질이 조급하고 마음이 거친 사람은 한 가지 일도 이룰 수 없고, 마음이 온화하고 기질이 평안한 사람은 백 가지 복이 절로 모인다.” 이런 문장을 매일 만나 손으로 직접 쓰고 눈으로 읽으며 마음에 새겼습니다. 매일 쓰다 보니 어느새 마음속으로 스며듭니다.     



1학년인 첫째 아이의 방과 후 부모 참여 수업에 참석한 다음날 “남을 꾸짖는 이는 허물 있는 속에서 허물없음을 찾아야 마음이 평안할 것이요. 저를 꾸짖는 이는 허물없는 속에서 허물 있음을 찾아야 덕이 나아가리라.”라는 <채근담> 문장을 필사했습니다. 본문 필사 옆에 이렇게 저의 생각을 남겼습니다. ‘유독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분명 잘하는 것도 많은데 말이다. 오늘 필사한 구절을 마음에 새기고 넓은 아량으로 아이를 바라봐야겠다. 나보다 훨씬 잘하고 있는 아이인데도 허물만 눈에 보이니 마음이 편치 않고 아이도 기분이 나쁘다’ 필사를 시작한 지 3개월 정도 됐을 때입니다. 누군가 나의 잘못된 점을 고치려 든다면 반항심에 꿈쩍도 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필사를 통해 성찰의 시간을 가지며 더 이상 화를 내지 않는 엄마의 모습에 가까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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