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란희 Oct 22. 2022

왜 1,000권의 책을 읽기로 했는가?

만권의 책을 읽으면 그림과 글이 저절로 나온다.

어느 날 첫째 아이가 유치원에 다녀와서 자신이 만든 지구를 보며 말합니다. 

“엄마 지구의 바깥쪽은 지각이고, 그다음은 맨틀이야, 여기는 외핵, 가장 안쪽은 내핵이야.”

아이는 유치원에서 태양계에 대해 배웠는지 지구의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오대양과 육대주 노래를 부릅니다. 기본 상식이 부족했던 저는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아이들은 매일 배우는데 나는 지금 몇 년 동안 무엇을 배웠는가?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는 아이들이 더 이상 엄마와 대화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지 않고 지시, 명령조인 잔소리만 하게 될 거 같았습니다.      



<독서로 세상을 다 가져라> 책을 읽는 순간 내 삶을 바꾸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쌓아둔 경력도 없고, 재능도 없고, 자산도 없다면 책을 읽으라는 저자의 조언은 저에게 하는 말 같았습니다. 저자는 2년간 1,000권의 책을 읽고 의식혁명이 이루어지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자신감 없고 수동적이며 부정적인 기존 생각하는 방식을 모조리 바꾸고 싶었습니다. 생각이 태도로 나오고 이는 결국 삶이 되니까요.      



남다른 재능이 없으니 오히려 책 읽기에 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음식을 잘하니 요리 자격증을 취득하겠다, 영어에 관심 있으니 다시 공부해 봐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못하는 분야이니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잘하는 거 하나 없지만 글자는 읽을 수 있으니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저도 저자처럼 2년간 1,000권을 읽겠다는 목표를 세웁니다. 독서를 통해 우선적으로 얻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포스트잇에 최대한 반듯하게 적어 책상 앞에 붙여둡니다.     


1. 나의 감정을 조절하고 싶다.

2. 아이들과 책을 읽고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대화를 하고 싶다.

3. 독서커뮤니티에서 스텝으로 활동하고 싶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아 불안한 마음에 계속 일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독서로 삶을 바꾸자’라고 생각하니 그만둘 수 있었습니다. 네이버 독서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얻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책을 통해 성장해 가기로 합니다. 운영자인 작가님이 계시고 스텝들이 있었습니다. 다들 자신의 생활을 하면서 독서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고 책을 대하는 태도도 볼 수 있었습니다. 혼자 독서하는 것보다 함께라면 외롭지 않고 댓글로 소통도 하며 오래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어가며 저에게 결핍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학창 시절에 왜 공부를 잘하지 못했을까 생각해보니 목표가 없고 공부방법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때 제대로 해보지 못한 공부를 지금이라도 눈에 변화가 보일만큼 해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자격증 취득이나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인간에 대해, 제 자신에 대해, 삶에 대해 알아가고 싶었습니다.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변화하기 위해 독서를 선택했습니다. 사고방식과 의식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양서를 많이 읽고 사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만권의 책을 읽으면 그림과 글이 저절로 나온다.”라고 추사 김정희는 말합니다. 과연 만권의 책을 읽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봅니다.     



1,000권 독서 시작은 읽기만 했습니다. 사색할 시간도 아깝다며 무조건 읽기만 했습니다. 아웃풋 하기 위해 책을 읽으라는 말은 저에게 사치라고 느꼈습니다. ‘아무것도 들어간 게 없는데 어떻게 꺼내어 쓸 수 있지’라는 생각이 먼저였습니다. 나중에서야 읽기만 하면 성장은 더디게 된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을 때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하면 생각만큼 변화를 만들어내기 힘듭니다. 읽기는 쉽지만 쓰기는 힘듭니다. 그 힘듦을 넘어서려 할 때 그때 조금씩 성장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학교, 유치원에 가면 저는 책상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의 출근이 늦으니 신경이 쓰였습니다. 눈만 돌리면 청소, 빨래, 설거지, 정리 정돈해야 할 일이 자꾸 눈에 들어왔습니다. 읽지 않던 책을 읽으니 졸음이 쏟아졌습니다. 밤에 충분히 잤는데도 눈꺼풀이 내려앉았습니다. 바닷바람에 녹슨 쇳덩이처럼 뇌가 굳어있었습니다. 책 앞에서 하염없이 무너졌습니다. 이렇게 읽어서 뭐가 남겠나. 언제 1,000권을 읽겠나 싶었습니다.     



남편이 도서관에 가서 읽는 게 어떻겠냐는 말에 짐을 쌓습니다. 도서관은 낡고 오래된 책만 있다는 편견이 있었습니다. 도서관에 가는 순간 그곳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했습니다. 매달 신간이 들어오고 읽고 싶은 책이 없다면 희망도서를 신청할 수도 있었습니다. 독서를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은 도서관이라는 환경이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집을 벗어나니 집안일이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습니다. 온전히 책만 읽을 수 있는 환경에 들어갔습니다.     


몸은 도서관에 있지만 생각은 단숨에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는데 온갖 생각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혼자 조용하게 있었던 적이 없어서 이때다 싶었는지 예전의 기억, 감정들이 책 위를 덮었습니다. 마음 청소, 생각 정리가 필요했습니다. 노트에 떠오른 생각을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 내려갔습니다. 1,000권 책이 들어갈 수 있게 먼저 비워내야 했습니다. 그제야 글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1,000번째 책을 읽었습니다. 그 사이 잊고 있었던 목표 3가지가 이루어졌고 또 다른 목표를 해내고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화내는 일이 눈에 보이게 줄어들었습니다. 독서모임에서 엄마들이 모여 돌아가면서 아이들 독서 토론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저녁에 아이들과 저는 각자 하루 동안 읽은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독서커뮤니티에서 스텝으로 활동하며 리더의 역할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있습니다. 1,000권의 책은 독서뿐만 아니라 읽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합니다. 온전히 책을 읽는데 시간을 쓴다는 것은 책을 선택하기에 앞서 무엇을 희생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먼저 대답해야 합니다. 독서의 재미를 알게 되는 순간 삶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됩니다. 1,000권의 독서는 또 다른 꿈을 꾸게 합니다.     

이전 01화 더 이상 화내고 싶지 않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