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낭비가 아니다
삶이 살만한 사람이 책을 읽거나 글을 쓸까요? 고통, 아픔, 고민, 절망, 외로움 등이 있어야 책을 찾게 되고 글을 쓴다고 생각합니다. 순조롭게 하루가 흘러갈 때보다 눈물 한 바가지 쏟아내고 싶을 때, 억울하다며 동네방네 하소연하고 싶을 때 오히려 더 쓰고 싶습니다.
제가 일기를 꾸준히 쓰기 시작한 것도 답답함에서 오는 해소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어도 마음 한구석이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 공허감은 어디서 온 건지 어떻게 채울 수 있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책의 한 문장에서 글쓰기를 통해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 있다는 글귀를 보았습니다. 찾았습니다.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한 대나무 숲도, 텅 빈 황량한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곳도 글을 쓸 수 있는 빈 여백이었습니다.
글을 쓰고자 했습니다. 글이 어떤 단단한 장막에 쌓여 있는 거 같았습니다. 그냥 말하듯이 쓰면 된다고 하는데 그게 참 힘들었습니다. 글은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쓰는 거라는 고정관념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 글에 대해 칭찬을 받거나 상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 쓰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더욱 글을 내보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남의 평가에 익숙해진 환경에서 미숙한 글을 내보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글을 쓰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거처럼 보였습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 매일 선생님이 써주신 아이의 활동 기록을 보고 답장 한번 제대로 못했습니다. 글로 내 생각을 전달한다는 것이 어색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지금이라면 오히려 글쓰기 훈련이라 생각하고 매일 몇 문장이라도 썼을 것입니다.
글을 쓸 기회를 만들지 않았기에 쓰지 않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뭐라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공허한 마음을 글쓰기로 채우기 위해 써보자라는 씨앗을 마음에 던졌습니다. 여러 가지 시도 끝에 혼자서는 도저히 쓰지 않으니 글쓰기 챌린지에 참여했습니다. 벌금 내기 싫어서 글이 되는 안 되는 일단 썼습니다. 그렇게 쓰는 동안 글쓰기가 주는 매력을 알게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내 삶의 한 조각이 글로 남아 생각을 더하니 뭔가 있어 보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작은 변화를 잡아 글로 만들기 위해 이리저리 생각을 굴려가며 덩어리를 키웠습니다. 늘 글과 영상을 보고 물건을 사는 소비자에서 이 순간 우리는 모두 생산자가 됩니다.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창작자가 되어 나만의 글을 만들어냅니다.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글쓰기에는 마음 치유 효과가 있습니다. 어느 날 인터넷 속을 돌아다니다가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는 분의 글을 발견했습니다. 상담사가 글쓴이에게 처방전으로 글쓰기를 해보라고 권했는데 도저히 써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 다른 사람의 글을 필사해보라는 이야기를 하셨다고 합니다. 이미 필사를 하고 있던 저로서는 따라 쓰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글쓰기와 필사가 마음 치유 효과가 있습니다.
은퇴 후 무기력에 빠지신 분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삶의 활력을 되찾고 새로운 일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보았습니다.
글은 읽는 사람뿐만 아니라 쓰는 사람도 살립니다.
살아지는 삶에서 마음이 병들어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을 때 그제야 살아내는 삶을 살기 위해 글을 씁니다. 글을 쓰니 마음에 품고 있던 꿈이 발견되고 뿌리를 내립니다. 꿈의 씨앗이 자랄 수 있게 글쓰기의 양분을 계속 주어야 합니다.
글을 쓰고 싶은데 쓰기 싫은 마음이 생깁니다. 한참을 노트북 앞에서 두드려도 마음에 드는 글이 쉽게 나오지 않거든요. 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차라리 책을 읽는 게 더 쉽고 효율적이라는 생각까지 합니다. 되지도 않는 글을 쓰겠다고 몇 시간이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저를 보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낸 것 같아 허탕 친 기분입니다.
‘나는 당신이 글쓰기는 시간 낭비가 아니라고 확신하게 하고 싶다. 느낌과 상상력과 지성을 사용해야 하는 다른 창조적인 일도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다. 당신이 쓰는 문장 하나하나에서 당신은 무언가를 배운다.’ 브렌다 유랜드의 <글을 쓰고 싶다면> 문장을 보면서 글을 쓰기 위해 생각하는 동안 생각 근육이 길러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과정을 온전히 통과해야 글을 쓰게 됩니다.
글에 대한 정보를 켜놓고 있으니 어디서 무엇을 보고 듣던 글쓰기 소재로 받아들입니다. 꼭 개요를 작성하지 않고 쓰면서 생각해도 된다고 합니다. 미리 다 생각해 놓고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생각한다는 말이 저에게도 해당되는지 궁금했습니다. 어떤 글을 쓸지 큰 주제만 정해놓고 일단 써 내려가기 시작하면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 떠올라 빈 화면을 채우던 날 창작자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기까지도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괜히 뱃속을 채워야 글이 잘 나올 거 같아 눈에 보이는 과자를 먹고 믹스 커피까지 든든하게 마십니다. 주변이 정리정돈되어야 정신이 맑아질 거 같아 청소를 합니다. 집에서는 집중이 안 된다며 노트북을 들고 도서관에 가기도 합니다. 노트북을 열어보지도 못하고 글쓰기 시간이 끝난 날도 있습니다.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기까지,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기까지, 한 편의 글이 완성되기까지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자신을 완전히 길들인 사람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나니, 그것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법구경의 한 구절입니다. 쓰면서 자신을 구원하고 쓴 글이 다른 사람에게 닿을 수 있게 글을 쓰는 사람으로 자신을 길들입니다.
그렇게 마음의 장벽을 하나씩 부셔가며 글을 씁니다.
마음을 비우고 글을 쓰면서 나 자신과 대화한다는 생각이 들면 손이 빠르게 움직이며 리듬을 답니다. 글 속에 들어가 자신에게 이야기하듯이 계속 써내려 갑니다. 쓴 글을 읽으며 한걸음 물러나 나를 봅니다. 나를 만나는 길이 이렇게 오래 걸리고 험난한 줄 몰랐습니다. 글을 보며 지금 ‘내 생각이 여기에 도달했구나. 지금 속마음이 이렇구나’ 하면서 평소 알지 못했던 나를 만납니다.
힘들어하는 친구를 만나면 글을 써보라고 은근슬쩍 권합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가 어떻게 글을 쓰냐면서 손사래를 칩니다. 자신의 마음을 글로 꺼내 본 적이 없어서 그 시작은 오르지 못할 산처럼 느낍니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 누군가에게 빨간펜으로 검사를 받을 필요도 없는데 자기 검열이 버티고 서서 쓰기조차 망설이고 있습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이를 알지는 못하는 듯합니다.
질문으로 시작하면 조금은 수월하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나를 알아가기 위한 글쓰기를 시작한다면 “지금까지 살면서 즐거웠던 순간은 언제인가?”라는 질문을 해봅니다. 그럼 미소 짓던 순간들을 떠오릅니다.
아이들의 잠든 얼굴을 볼 때, 가족들이 모여서 맛난 저녁을 먹을 때, 생일 축하 케이크의 촛불을 불 때 등등 떠오르는 대로 장면을 글로 옮깁니다.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한 페이지를 채웁니다. 나는 이럴 때 행복감을 느끼는 구나라고 자신에 대해 알아갑니다. 행복한 순간들이 글로 남아 마음의 온도가 상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