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럽다 = 나는 그렇게까지 애쓰고 싶지 않다
공동체에 들어가면 그 목적에 맞게 사람들이 모입니다. 제 자신을 알고 성장시키고 싶어 온라인 독서 커뮤니티에 가입하고, 지역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독서모임에 참여했습니다. 온라인 독서 커뮤니티에 들어가니 이렇게 나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는 줄 몰랐습니다. 제 주변에는 책을 읽는 사람이 1~2명 정도였거든요.
직장에 다니고 육아를 하면서 책을 읽고 리뷰는 쓰는 분들도 있습니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책이 계속 올라왔습니다. 읽기조차 버거운 책을 어떻게 자신의 언어로 다시 풀어내서 쓸 수 있는지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처음 독서를 시작했을 때 부러운 사람이 많았습니다.
‘2년 안에 1,000권을 읽었다고?’, ‘어떻게 한 달에 20권씩 책을 읽을 수 있어?’, ‘같은 책을 읽었는데 어떻게 저런 리뷰가 나오는 거야?’, ‘이분은 글 쓰는 재능을 타고났나 봐 어쩜 이렇게 잘 쓰는 거지?’, ‘하루에 8시간을 독서한다고 정말 대단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느끼는 감정이었습니다.
저도 잘하고 싶은데 당시의 모습은 그렇지 않으니 자꾸 부러워했습니다.
부러운 감정에 휩싸여 온몸이 꽁꽁 묶인 것처럼 옴짝달싹 못하기도 했습니다. 부러움은 부끄러움으로 나타났습니다. 책을 읽기는 하지만 리뷰는 못 쓰겠다며 나중으로 미루었습니다. 나의 생각을 공개된 장소에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때론 부러운 마음이 점점 뾰족해져서 질투심에 다른 이의 리뷰도 글도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이런 마음 때문에 거의 1~2년은 책을 읽고 부분 필사를 했지만 리뷰를 꼬박꼬박 남기지 않았습니다. 한 권을 읽었으면 한두 줄이라도 남겨야 생각하는 힘이 생기는데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부럽다는 말이 이렇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의 멋진 모습은 나도 갖고 싶은 모습이에요. 하지만 당신처럼 그 고통의 시간을 경험하고 싶지는 않네요. 전 그냥 지금에 만족할래요.’ 결국 부럽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노력하고 싶지 않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부럽다는 생각에서 끝나버리는 거죠. 감정만 상하고 발전은 없습니다.
저를 관찰해 보니 모든 사람을 부러워하지는 않았습니다.
책을 많이 읽거나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사람을 부러워했습니다. 지식이 많고 이를 잘 활용해서 지혜를 갖춘 사람을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듯이 바라봤습니다. 지인의 집에 놀러 가더라도 집 평수, 가구, 가전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책장에 눈길이 갔습니다. 어떤 책들이 있는지 둘러보게 되고 내가 아는 책을 발견하면 어떻게 읽었는지 묻기도 했습니다. 날씬하고 몸이 좋은 사람들의 사진을 보면 예쁘다고 생각할 뿐 뱃속이 꼬일 정도로 부럽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부럽다는 감정을 세밀하게 관찰하면 어디를 향하는지 알게 되면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를 깨닫고 나서부터는 부럽다에서 끝나지 않고 그들이 내가 부러워하는 모습을 하기까지 어떤 과정과 노력을 했는지 살펴보게 됩니다. 보이는 모습은 지금의 결과물일 뿐 원래부터 잘한 사람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과연 원래부터 잘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리뷰하나 쓰기 위해 2~4시간을 투자하기도 하고, 글 한편을 쓰기 위해 생각하고 쓰고 지우고 또 생각하다 쓰다 지우 다를 반복해서 겨우 한편을 쓰기도 합니다. 독서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기존에 했던 드리마 보기, 쇼핑하기, 친구들 만나기 등 더 많은 것을 포기합니다.
그들이 거기까지 가기 위해 많은 것을 감수하고 수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합니다. 실패의 짙은 패배감을 느끼기도 하고 더 이상 할 수 없을 거 같은 벽을 만나기도 합니다. 슬럼프에 빠져 한동안 헤매기도 하고 먼 길을 돌아 다시 자신의 자리로 오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바보 같아 보이는 행동을 계속하기도 합니다.
잘 나가는 사람들의 초창기 모습을 찾아보면서 그들도 처음에는 미숙했고 그 과정을 온전히 견뎌냈기에 지금의 빛나는 모습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유튜브를 보면서 그 사람의 성공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몇 십만 명의 구독자수를 보유한 인기 있는 유튜버도 첫 영상을 보면 손가락이 오므라 들 정도로 어색하기만 합니다. 오히려 성장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은 다시 보지 않을 첫 영상을 지우지 않고 남겨 놓는 분도 있습니다.
비교, 질투, 부러운 감정을 만나면 그들의 모습이 내가 진정 원하는 모습인지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잠깐의 감정이라면 쿨하게 넘어갑니다. 계속 마음에 남아 나를 깎아내린다면 그들의 결과물이 아닌 과정과 저의 과정을 재어봅니다. 그러고 나면 아직 많이 미치지 못한 저를 만납니다. 부풀어 오른 감정은 가라 않고 이성적으로 방법을 점검하게 됩니다.
이제는 부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비교와 질투로 제 자신을 힘들게 하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지 방법을 찾는 회로가 바로 작동합니다. 어떤 감정이든 저를 알아가는 방향키로 삼고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으로 활용합니다.
이현세 만화가의 인터뷰를 가지고 만들어 놓은 카드 뉴스를 봤습니다. 그가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는 천재 만화가들을 보고 자신의 재능 없음을 힘들어하며 한 달 내내 집에서 나오지 않고 술만 마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단 하나다. 천재를 먼저 보내 놓고, 앞으로 몇 년이 걸리든 반드시 이뤄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저 하루하루를 꾸준히 걸어 나가 어느 날 멈춰버린 그 천재를 추월하는 것. 천재를 만나면 먼저 보내주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면 상처 입을 필요가 없다. 작가의 길은 장거리 마라톤이지 단거리 승부가 아니니까.” 이렇게 이현세 만화가는 한국 만화의 거장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잘난 사람들을 보는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마냥 부럽고 질투가 났지만 이제는 감사함이 더 큽니다. 같이 강의를 듣는 사람들 중에 잘난 사람이 있으면 보고 배울 것이 많아서 좋습니다. 그가 하는 질문은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고 수준 높은 과제물을 보면서 이렇게도 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열심히 하는 모습에 자극이 되어 나도 하나라도 더 해내려고 합니다.
부러운 점이 있다면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 한다는 내면의 욕구로 알아차립니다. 왜 시기와 질투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나요? 배움의 관점으로 보면 그만한 선생이 없는데 말입니다.
옆 동네에 신설 도서관이 생겨 아이들과 자주 다녔습니다. 치유하는 글쓰기라는 강좌를 보고 망설이다 신청했습니다. 글쓰기 강좌가 끝나고 독서모임이 생겼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책을 읽기는 하지만 한 달에 한 두 권 정도였습니다. 전업 맘이거나 잠시 휴직한 직장 맘들이었습니다. 어떤 연결고리 없이 도서관에서 모인 사람들과의 만남은 오히려 편했습니다.
어떤 규칙이나 방법이 전혀 없었던 모임에서 우리가 하나씩 만들어갔습니다. 나서서 무언가 해본 적 없는 제가 임원 중 한 사람이 되어 함께 추진해 나갔습니다. 책에 관해 말할 때 사람들이 저에게 집중하는 눈빛에 자신감이 생겼고 제가 사람들에게 나눠 줄 수 있는 게 있어서 뿌듯했습니다.
지난 1년간의 독서와 필사로 내면을 다지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눈을 길렀습니다. 1년간 170권의 독서 노하우는 새로 시작하는 독서모임에서 책 정보를 나눌 수 있게 했습니다. 이 시기에 저를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된 거 같습니다.
<책그림> 유튜브를 보다가 제 이야기를 하는 거 같은 영상을 봤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책을 바탕으로 만든 내용입니다. ‘잘난 사람만 있는 곳에서 무력감을 느끼지 말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가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저는 온라인 독서커뮤니티에서 실력자들 사이에서 배우고 오프라인 독서모임에서 정보와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제가 했던 행동이 괜찮은 방법이었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나누는 기쁨을 알게 되고 온라인 카페에서 지극히 겸손하게 익혔습니다. 독서에 대한 자신감을 잃지 않고 계속 읽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떤 모임에서든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곳이나 자신보다 잘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기 마련입니다. 이를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비교하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비교를 하려거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두고 살펴봐야 합니다. 한 달 전의 나와 오늘의 나. 1년 전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해보면 분명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점점 나아지고 있는 자신을 보면 더 많이 읽고 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게 됩니다.
“내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하기 시작하면 이전보다 삶이 더 매혹적이고 더 흥미진진해집니다. 그 바보 같은 모든 비교질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집니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말처럼 바보 같은 비교질은 그만두고 자신을 이해하는데 에너지를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