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넓은 세상으로 눈을 돌립니다
책으로 배웠습니다.
주변에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없어서 도움을 요청할 만 곳이 마땅하지 않았습니다. 뱃속의 아이가 어떻게 자라는지 궁금해서 <임신 출산 육아 대백과>를 개월 수마다 펼쳐보았습니다. <베이비 위스퍼>를 읽고 정해진 시간마다 아이에게 젖을 물렸습니다. 이런 저를 보면서 친정엄마는 아기가 배고파하면 주면 되지 뭐 시계를 쳐다보고 있냐고 했습니다.
그때 저의 문해력을 알아봐야 했습니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 좋다고 해서 삶의 지혜서인 성경 잠언과 뇌 태교 동화책을 읽어 주었습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같이 놀아주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재미도 없고요. 책은 읽어 줄만 했습니다.
첫째 아이가 돌이 되기 전부터 전집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거실 한쪽 벽면 책장에 책이 가득 꽂힌 모습을 늘 상상했거든요. 그때 산 거실 책장은 책 종류만 바꿔가며 아직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기 뇌 발달 관련 책을 읽다 보니 만 6세까지 모든 것이 결정되어 보이는 듯했습니다. 마치 뇌 발달은 이때뿐이고 더 이상 나이가 들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살아야 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이가 한 살 두 살 먹을수록 마음은 급해졌습니다. 더 많은 책을 사고 비상금을 털어서 비싼 교구를 사서 아이의 물건으로 거실을 채웠습니다.
아이를 위해, 지금의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아이 맞춤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아이를 위해 집안을 꾸미고 모든 시간을 아이를 위해 사는데 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첫째 아이는 2살 터울의 둘째 아이를 괴롭혔습니다. 첫째 아이의 손톱은 물어뜯어서 더 이상 제가 잘라주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아이를 위한 삶을 살고 있는데 왜 이런 문제들이 보이는 건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나중에서야 엄마가 아이만을 위해 살았기에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고 자신을 돌보고 있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부모라는 인적 환경이 더 중요하구나.’라는 것을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닐 때쯤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싼 교구를 사주고 집안을 책으로 가득 채운다고 아이가 잘 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아이들 영어 책을 읽어주는 사운드 펜에 제 목소리가 녹음된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혹시 무방비 상태의 엄마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지금 저에게 사운드 펜에 녹음된 말투로 말을 걸어온다면 다시는 그 사람과 대화하고 싶지 않습니다. 한 겨울에 집 밖에서 맨살로 있는데 누군가 물방울을 튀기듯이 차디찬 목소리였습니다. 거울 속의 저는 세수는 언제 했는지, 머리를 빗기는 했는지 알 수 없는 모습으로 눈동자는 흐릿하고 입 꼬리는 바닥을 뚫을 기세였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아이들을 위한 활동이 저를 통과하는 순간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켰습니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을 들어가기 전 저는 초등 입학, 초등 공부, 초등 독서 등에 관한 책을 찾아봤습니다. 주말에 혼자 도서관에 가서 책 읽는 아이가 어떻게 자라는지 한껏 읽고 아이들의 교육방향을 생각하며 기대감을 안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TV 앞에서 남편과 두 아이가 낄낄거리며 예능을 보고 있는데 저는 화딱지가 났습니다. 책 속 아이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다그쳤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여기서 가장 큰 실수는 한 것은 바로 저입니다. 제가 문제를 만들어 버린 거죠. TV 시청이 잘못된 행동이 아닌데 나쁜 행동으로 인식하게끔 소리를 지르며 야단을 쳤습니다.
육아서를 읽으면 오히려 마음이 심란합니다.
전문가가 쓴 책을 보며 공감하고 깨우치며 지식을 쌓고 방법을 알아갑니다. 책대로 한두 번 해보다가 안 되면 본래의 모습이 나옵니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감정이 가라앉고 나면 아는 대로 행동하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합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읽을 때는 끄덕끄덕하는데 돌아서면 원래 모습대로 행동하는 괴리감에 자신에게 화가 납니다.
교육서를 보면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거 같고, 내가 부족해서 아이에게 못 해준 거 같아 속이 상합니다. 이런 날은 유독 아이를 다그치게 됩니다. ‘엄마 말대로 하라고,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야.’라며 아이의 마음은 보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내지릅니다. 엄마들이 쓴 육아서를 보면 어찌나 그 집 아이들은 잘 자라는지 배가 아를 지경입니다. 조금 더 알고 보니 그 집 엄마가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육아서는 이제 그만 읽기로 합니다.
책 속 아이가 우리 집 아이가 아니고 책 속 엄마는 제가 아닙니다. 저는 좋은 엄마 대신 좋은 사람이 먼저 되기로 했습니다. 기본기도 안 되어 있는데 온갖 기술과 방법만 익힌다고 육아 실력이 나아질까요.
저를 키우는 독서를 합니다.
제가 먼저 살고 싶었습니다.
도서관에 가면 그 넓은 서가에 일부를 차지하는 육아서만 볼 것이 아니라 000번 대 총류부터 900번 대 역사까지 두루두루 보기로 했습니다. 육아서만 보면 제 생활을 현미경으로 보듯이 지금 당장의 육아가 나와 아이의 인생 전체인 듯 안달복달합니다.
인생을 저 멀리 높은 곳에 올라서서 바라보며 나와 아이의 과거부터 현재, 10년 20년 미래까지 전체를 조망하는 눈이 필요했습니다.
육아서를 읽지 않으면 아이들의 발달이나 심리, 지금 부모가 해줘야 하는 것들에 대해 놓치는 것이 있을 거 같아서 불안했습니다.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 어떤 글을 봐도 엄마의 관점으로 읽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니 육아서는 내려놓고 더 넓은 세상으로 가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분야의 책을 통해 엄마라는 관점 이외의 다른 시선들이 생기고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도 한 뼘 더 넓어지게 됩니다.
아이의 행동을 보며 “우리 애는 왜 그런 걸까?”하던 물음이 제 자신을 보며 “나는 왜 아이의 저 행동이 거슬리는 걸까?”등으로 바뀝니다. 아이만을 바라보던 시선을 들어 제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그동안 그 자리에 언제나 있었는데 외면하고 살아온 내 마음의 모양을 어루만지고 따스함을 측정해보며 상태는 어떤지 살펴봅니다. 제 마음을, 감정을 알기 위해 책을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