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작은 자기 탐구부터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젊은 남자 선생님이셨습니다. 기타를 치며 화가, 노을 등 동요를 불러주셨고 눈이 내리는 날이면 시간표를 체육시간으로 바꾸고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 단짝 친구와 저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 선생님께 마음을 담아 카드를 드렸습니다.
기다리지 않았던 답장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키득키득 웃으며 카드를 가슴에 품고 화장실로 갔습니다. 그때는 비밀 이야기를 할 때면 함께 같은 칸 화장실에 들어가고는 했습니다.
각자의 카드를 읽고 서로 바꾸어 읽었습니다. 친구와 저는 수업이 끝나면 학교에 남아 선생님이 부탁한 일들을 했습니다. 반 친구들 시험지를 채점하거나 방학 과제 제출 확인 등을 같이 했습니다. 저에게 주신 카드에는 친구에게는 없었지만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시키는 일은 잘하는데 알아서 하지는 않더구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을 때 문득 5학년 담임선생님께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아 내가 수동적인 사람이구나.’ 그동안 성격이 내향적이라고 생각했지 딱히 수동적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었습니다. 수동적인 사람이라고 인지하고 나서부터 그동안의 행동들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큰 불협화음이 없었던 것은 성격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그들에게 맞춰주면서 살아서 일수도 있습니다. 내 의견을 내세우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내가 굳이 앞에 나서지 않아도 되고 책임질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있는 듯 없는 듯 따라가면 그만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선생님이 시키는 거 하고 말썽 부리지 않고 12년 개근이 대단한 성실성을 보이는 증명서라 여기며 학교와 집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괘종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다시 왔다 갔다.
회사에서 하던 일도 주어진 일을 해내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나서서 창의성을 발휘하거나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달랐습니다. 이건 이렇게 하는 거라고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매번 새로운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출산 후 매일 자라는 아이들을 돌보며 그때마다 필요한 정보를 찾고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나날이었습니다.
제 삶에 엄마라는 역할이 98% 이상 차지하고 있는 날들이 계속되면서 여러 사건들이 모이고 모여 터지면서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합니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 ‘나를 알고 나를 먼저 변화시키자’라는 결심을 합니다. 저도 1학년이 되어 제 자신을 위한 공부를 시작합니다. 제가 먼저 공부하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없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나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하고 싶은 것은 있는지, 어떤 미래를 그리는지 그 어느 것도 처음에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취미도 없고 특별하게 좋아하는 것도 없고 모든 게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두리뭉실하게 살아왔습니다. 모나지 않은 성격이라 어디에서도 잘 어울린다며 장점으로 삼았습니다. 이 장점이 ‘자신만의 생각이 없다’로 바뀌어 단점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었습니다.
“질문하지 않는다는 것은 궁금한 것이 없기 때문이고, 궁금한 것이 없는 것은 관심이 없는 것이다. 관심이 없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한다는 것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의식의 변화 삶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 <독서로 세상을 다 가져라> 책에서 발견한 문장이 나를 정확하게 비추었습니다.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생각다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느 하나에 관심을 갖고 궁금증이 생겨 질문을 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답을 찾아가 보려는 시도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아온 삶의 태도는 아이를 양육하면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키우고 책임져야 한다는 상황에 닥치면서 충돌했습니다. 내가 먼저 바로 서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를 알아야 했습니다. 혼자서는 이 난관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는 그 문제가 발생했을 때와 같은 생각의 레벨로는 해결할 수 없다.”라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생각의 레벨을 높이지 않는 이상 지금 가진 문제들을 해결하기 어려웠습니다.
책을 접하면서 수많은 멘토를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는 기쁨이 있습니다. 제가 하는 고민들을 이미 먼저 한 사람들이 있었고 책으로 남겨 놓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을 습득하여 생각의 레벨을 높여 삶의 문제들을 풀어나가기 위해 책을 읽었습니다.
<린치핀>을 읽고 잠자리에든 날, 새벽에 저절로 정신이 깼습니다. 도저히 잠을 자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책에서 말한 톱니바퀴가 바로 저였습니다. 시키는 대로 따르자 했고, 지도와 매뉴얼을 달라고 했습니다. 사회에서 주어진 틀에 맞추어 사는 것이 잘 사는 거라며 별 다른 의심 없이 그동안 살아왔습니다. 매스컴에서 보내는 정보들이 사실인 거처럼 받아들이고 자신의 생각을 갖기보다는 다수의 생각을 따르는 것이 안전하다고 여겼습니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최고라고 여겼습니다. 과연 평범함 삶이란 존재할까요? 철학적 사고는 있는 자의 여유일 뿐이며 지금 우리는 당장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돈을 벌어서 모으는 게 최고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돈을 모으지도 못했습니다.
책을 만날 때마다 기존의 생각에 금이 갔습니다.
책을 통해 만난 현자들은 자신의 삶을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 살라고 합니다.
‘누군가 미리 정해 둔 정답이 아닌 당신이 찾아낼 당신만의 삶의 해답 말입니다. 다시 말해 당신 감정의 주인, 더 나아가 당신 삶의 주인이 되는 길 말입니다.’ - 스피노자
‘주어진 삶을 주인으로 살아갈 것인가? 노예로 살아갈 것인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내 권한에 속한 것과 속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여 권한에 속하는 것에 집중하라.’ - 에픽테토스
‘장벽을 만나거든 네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가라. 잠시도 놓지 말고 석연하게 투득(막힘없이 환하게 깨달음)하라. 그래야 네가 하는 말의 주인이 될 수 있다.’ - 다산 선생 지식 경영법
‘남의 말을 들어야만 본인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만큼 반쪽짜리 인생이라면 대체 언제쯤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 세네카의 인생론
수동적으로 시키는 것을 하면서 살아온 그동안의 삶이 노예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삶인데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살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삶의 주인으로 나를 올려놓습니다. 이 결심 뒤에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 갑니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피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 해결력을 갖춘 사람, 변화가 빠른 시대의 흐름을 읽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자고 자신을 재규정합니다.
자기를 탐구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정해 놓은 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이 깊어질수록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됩니다. 의외로 괜찮은 점을 발견하면 더 키워나가면 됩니다. 반대로 단점을 알게 되면 순간 눈을 감아버리고 싶지만 결국 그것도 내 모습인걸 알기에 점차 고쳐나가게 됩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서 점차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삶의 만족감과 행복감이 외부에 의해서 좌지우지되지 않고 내 안에서부터 시작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