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관점
한순간에 한심하고 무식한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민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남편의 목소리는 점점 날카롭고 강해졌다.
남편은 시부모님과 상의한 뒤,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아들을 서울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아들의 미래를 생각해 남편이 나서서 아이를 케어하겠다는 것을 수연은 고맙게 느꼈다.
민이가 중학교에 입학한 뒤 성적이 고만고만하자, 남편은 대놓고 막말을 했다.
“당신이 어려서 키워서 그런가 봐. 민이는 학습 자세가 형편없어. 아들은 엄마 머리를 닮는다던데, 당신 머리를 닮아서 그런가?”
지나가듯 던진 남편의 말은 자극적이었고 덩달아 수연은 저도 모르게 자책했다.
‘그래, 내가 S대 못 간 건 내 탓이지. 내 머리와 실력이 모자란 걸 누구 탓이라 하겠어.’
수연은 지방대 출신이었고, 남편은 랩실에서도 누구나 인정하는 S대 출신의 실력 있는 선배였으니, 그런 남편이 자신을 선택해 결혼한 것은 큰 행운이라 여겼다.
하지만 남편이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과 교육관은 도무지 참기 어려웠다.
남편은 민이를 답답해했고, 수연도 덩달아 답답한 사람이 되었다.
“뭐, 지방 애들이 알면 얼마나 알겠어. 대충대충 가르치면 되지. 작년에 들어왔던 석사생 기억나? 걔는 열심히는 하는데 맨날 뻘짓이야. 지방에선 교수들이 뭘 가르치는지~. 애들이 기본이 안 돼 있다니까. 그러니까 당신도 너무 힘쓰지 말고, 대충 가르치고 서울에 자리 나면 바로 옮겨. 내가 알아볼 게.”
수연은 참고 참다 결국 말을 받아쳤다.
“당신은 자기 제자를 왜 그렇게 비하해? 당신이 받아줬잖아. 그럼 잘 가르쳐야지. 왜 험담을 해?”
“수준이 그 정도인 줄 알았나? 영어시험도 통과하고, 답안도 어느 정도 작성해서 중간은 될 줄 알았지. S대에서 돌던 예상문제집을 외워서 올 줄 어떻게 알겠어? 너무 형편없더라고. 아니, 어떻게 기본 글쓰기가 안 되냐고. 문장을 보면 주어도 없고 목적어도 없고, 도대체 핵심이 뭔지 알 수 없어. 한국어가 뭐 그렇게 어려워? 학부 때 뭘 배운 건지…. 왜 지방대에 갔겠어. 교수가 뭘 가르쳤는지, 걔가 뭘 배웠는지, 머리에 든 게 없어. 참나, 한심하다니까.”
“당신, 너무 나갔어. 아직 서툴러서 그런 거지. 나도 처음에 논문 쓸 땐 얼마나 헤맸는데.”
남편은 강남 토박이로, 학부부터 석사, 박사까지 S대에서 졸업한 사람이었다.
서울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자부심은 남달랐다.
수연이 박사 논문을 쓰던 마지막 몇 개월 아이를 시골 친정 부모에게 맡기겠다고 했을 때도 달갑지 않아 했지만, 시부모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민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시부모님이 직접 방과 후 학원을 챙겨주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주말에 서울로 올라가는 일은 수연의 몫이 되었다.
남편은 주말마다 아들을 데리고 대치동에 있는 영재 코스를 찾기 위해 학원을 돌아다녔다.
수연이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하면, 남편은 수연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한심하네. 엄마가 저러니 애가 이렇지. 시골에서 뭘 배웠겠어. 고작 막대기 들고 땅이나 파며 놀았겠지.”
한순간에 한심하고 무식한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한번 시작된 서울 타령, 대치동 타령, 영재 타령은 날로 심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들 민이가 무난히 적응했다는 사실이었다.
민이는 체력도 좋고 끈기도 있어 공부를 즐겼다.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 성적이 좋아지자, 남편은 자신의 판단과 계획이 얼마나 탁월한지를 입만 열면 자랑했다.
선배였을 때야 그런 자랑도 멋있게 보였지만, 결혼 후 일상이 된 자랑은 더는 참기 어려웠고, 수연도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
“S대 교수들은 자기들이 잘나서 학생이 똑똑한 줄 아는데, 아니야. 학생이 열심히 하는 거야. 그걸 몰라! 인간을 그렇게 차별하고 갈라놓는 게 비정상이라고.”
수연이 이렇게 말하면, 남편은 늘 한결같은 말로 받아쳤다.
“당신하고 무슨 말을 해.”
수연은 남편의 자만을 견디기 힘들었다.
민이는 고등학교에 들어가 안정적으로 성적을 냈지만, S대에 들어가기엔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러자 남편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시골에서 자라서 그래. 힘들더라도 처음부터 내가 서울에서 키웠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