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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여교수

1%의 허상

by 정루시아

“난 당신이 답답해. 민이도 그렇게 키워서 그렇잖아. 당신 머리를 닮아서 그래. 시골에서 뭘 보고 자랐겠어. 당신 수준이 딱 지방대 교수 수준이야.”


수연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래, 내가 못나서 당신 눈에 안 차지. 그런데 왜 나랑 결혼했어? 내가 그렇게 부끄러워? S대 나온 여자랑 살면 되잖아.”


남편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나도 S대 나온 여자랑 수준 맞게 살고 싶다. 당신이랑은 대화가 안 돼. 품격이니 평등이니, 듣기엔 그럴싸하지. 다 가진 사람들 포장이야. 한심해. '상위 1%'에 속하지 않으면 다 쓰레기야. 그게 세상 이치라고.”


그 순간, 수연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말이 있었다. 남편이 예전에 했던 이야기였다. 희연 박사 집안이 얼마나 대단한 집안인지, 혼처가 쇄도해도 희연은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남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했었다.

희연은 학벌도, 집안도 1%였다. 눈이 높았고, 도도했다. 결혼 3개월 만에 이혼했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서류상으론 미혼이었다. 희연은 젊고 예쁘고, 사회적 조건까지 '완벽한 상위 1%'였다.

남편은 옷을 벗어 놓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수연은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그렇게 젠틀하고 멋있어 보였던 남편이, 사실은 얼마나 천박하고 치졸한 사람인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수연은 그대로 짐을 싸서 나왔다. 그리고 다시는 그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다음해 여름방학이 되어서야 남편이 수연을 찾아왔다. 수연은 말없이 이혼서류를 내밀었다.


“당신이 나랑 이혼하고 싶어 하는 거 알아. 복잡하게 하지 말자. 당신 그런 면에선 쿨하잖아. 재산 정리해서 반 줘. 민이 등록금은 계산해서 별도로 줘. 그걸 위자료라 칠게. 민이 생활비는 내가 줄게.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 그걸 민이도 원할 거야.”


긴 말 없이 서류를 내미는 수연을 보며, 남편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꺼냈다.


“새 출발은 무슨... 처신 잘해. 남자 교수들이 이혼한 여교수를 어떻게 보는지 알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민이한테는 내가 말할 게. 희연 박사랑 결혼할 거면 1년은 지나서 해. 안 그러면 당신이 불륜 저질렀단 거 광고하는 거야.”


남편은 놀란 눈치였다.


“무슨 소리야? 희연 박사랑 뭐?”

“잘 살아. 내가 뭐 아쉬울 게 있어? 내 직장 있고, 아들도 다 컸고. 방학엔 민이에게 다녀오면 되고.”


남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고개를 잠시 숙이고는 낮은 어조로 말했다.


“알았어. 재산 목록 정리해서 엑셀로 보낼게. 현금으로 정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야.”


남편은 문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수연을 돌아보며 작게 말했다.


“당신, 아직도 예뻐. 건강하게 잘 지내.”


그게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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