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가 생긴 걸 알았을 때 그 당황스럽고 막막하던 기분을 어찌 잊을까. 돌이 되지 않은 둘째의 육아휴직 중이었고 첫째는 겨우 네 살이었다.
우리가 셋을 키울 수 있을까?
할머니 육아로 겨우 맞벌이를 이어가는 우리 처지에 셋째는 사치가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와 있었다.
수술할 날을 정하려 병원에 갔다.
그런데 초음파로 하리보 젤리 같은 셋째를 보는 순간 너~무 귀여웠다.
심장 소리는 더욱 말모(말해 모해), 나는 하리보의 엄마로서 정체성을 획득하고야 말았다.
그 바람에 의사 앞에서 도저히 수술은 못 하겠다며 엉엉 울고 말았다.
남편에게도 "당신이 수술대 위에 올라갈 거냐, 나는 못 올라가겠다!"하고 화를 내며 울었다.
하리보를 낳겠다고 결심하고 나니 '키워달라'와 동의어인 셋째 소식을 엄마에게 어떻게 알릴지 제일 큰 걱정이었다. 엄마 입장에서는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가.
병원에 다녀온 날,
'운동 좀 하고!'라는 엄마 잔소리에 내가 '운동 못 해'하고 대답함으로써 걱정하던 순간은 빨리 찾아왔다.
내가 어디 아픈 줄 알고 엄마는 깜짝 놀랐으나
셋째 소식엔 더욱 까무러쳤다.
그건 아니다, 얼마나 몸이 상하는 줄 아냐, 어떻게 키울 거냐
하고 앉은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듯 했다.
단호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병원에 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나는 하리보젤리가 이미 너무 사랑스러웠으므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의사 앞에서는 수술 못 하겠어요! 하고 잘도 울었으면서 엄마 앞에서는 울기가 싫었다. 엄마의 태도에 서운함을 느끼는 나의 감정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마음이었는지 아직도 정확히 이해가 안 되지만, '네가 우니까 어쩔 수 없이 키워줄게, 낳으렴'이 되는 상황은 더 싫었다.
이게 뭔가.
엄마 덕분에 맞벌이를 하며 두 아들을 키우고 있기로소니, 이미 생겨버린 셋째 출산의 최종결정권자로서 엄마의 의견을 가장 크게 고려하는 게 맞는 일인가.
성인으로서 엄연한 가정을 꾸려놓고는출산 문제를 당사자들끼리 결정하지 못하는 우리 부부가 정말 못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경제적 능력이 출중했다면 고민 없이 낳기로 결정했을 텐데, 능력이 변변찮아 맞벌이를 포기하지도, 셋째를 포기하지도 못하고 엄마의 의견에 쩔쩔매야 하는 모습이란.
엄마가 펄펄 뛰듯 했던 그날 저녁,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낳아보자, 그 아이가 너의 인생을 어떻게 바꿀지 또 알 수 없는 것 아니냐'라고엄마는 말했다.
(청유형의 문장이 어색한 듯 어색하지 않은 기이한 현상)
엄마에게 출산 찬성의 근거는 '딸의 인생에 무엇이 더 이로울 것인가'였다. 막내는 어쩌면 딸일지도 모르고, 아들만 둘 있는 것보다 딸이 하나쯤 있는 게 엄마들에겐 좋으니까.
아들이라 한들 어떻게든 당신이 잘 키워놓으면 나중에 내 딸 보살피는 존재가 하나라도 더 생기는 셈이라고,
엄마의 계산은 그랬던 것이다. 추측이지만 백이십 퍼센트 확신하는 바다.
엄마는 나를 낳아 당신 인생에 도움이 되었을까?
도움 될 자식을 기대했다면, 손주 셋을 키워 줄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나에게 '나중에 도움 될지 모르니'라고 말하다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지만, 어쨌든 엄마 덕분에 나는 맘 편히 미안해하며 셋째를 낳았고, 돌봄을 맡기도 있다.
그럼 엄마가 허락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수술대 위에 올랐을까?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는 못했을 것 같다. 이기적인 딸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수술대에 오르는 일만큼은 못 했을 것 같다.
자 그럼, 셋째 출산의 최종결정권자는 누구였던 셈일까?
내 인생 내 맘대로 못한다는 생각에 문득 우울해지고 했던 그때였는데, 글을 쓰다 보니 엄마도 나도 결정권이 없었다. 나는 내 뱃속의 하리보가, 엄마는 하리보를 품은 딸을 너무 사랑한 덕분에 셋째가 태어났으니 최종결정권자는 아마도 하리보였나보다. 심장 소리마저 귀여워 어쩔 줄 모르겠던 하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