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정한 시옷 Oct 21. 2024

브런치 대상 받으면 효도할거야.

엄마 자전거 사주기 대작전

작년 여름 엄마에게 뇌경색이 약하게 왔다갔다.

아침에 머리를 감다가 잠시 의식을 잃었는데 몇 분 뒤 스스로 의식을 차렸고, 그날 당장 찾아간 종합병원에서 진단을 그렇게 내렸다.

정말 다행히도 뇌경색의 일반적 증상인 말의 어눌함이나 편마비 같은 증상이 전혀 없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쉽게도 보험금을 받지 못했다.

(차차 밝히지만, 나의 아쉬움이 아니라 엄마의 아쉬움)

재청구를 해보았지만, 진단명이 분명하다해도 MRI 영상 판독 결과상 진단비 지급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다.

무려 천만원이란 큰 돈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엄마는 오히려 그 전보다 컨디션이 더 괜찮아 보일 정도였으니, 상심이 얼마나 컸겠나.

엄마, 크게 안 아프고 보험금 안 받아서 나는 너무 좋고 감사해. 아파서 보험금 받는 게 뭐가 좋아.


엄마는 하나도 위로되지 않는 얼굴로

"천만원 받으면 자전거 살려했는데" 

했었다.

우리집과 엄마집은 자동차로 5분, 자전거로 20분쯤 걸리는데 면허가 없는 엄마는 출퇴근을 자전거로 해왔다.

동네 자전거방에서 산 이십만원짜리, 바구니 달린 검은 자전거다. 그 앞에 분홍색 자전거도, 민트색 자전거도 있었다. 매일의 출퇴근에 수명이 오래가지 못했는데 지금의 검은 자전거도 아마 제 수명을 다 살긴 어려울 것이다.

자전거 내가 사줄게.

했지만 엄마가 원하는 자전거는 싸이클 로드 자전거였다.

얼핏 살펴본 것만도 가격이 상당했지만, 나는 그 정도쯤 엄마가 필요하거나 갖고싶다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능력과 인성을 갖춘 딸,

그것도 내가 사줄게!


그러나 딸의 통장이 가벼워지는 것에 무감한 엄마였더라면, 지금같은 고생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이돌보미 비용, 반찬값, 살림 비용 아껴주느라 지금 이 고생인데, 내가 사주는 자전거를 마음 편히 받을리가 없다.

엄마가 갖고 싶은 것을 덥썩 가지기 위해서는 꽁돈(혹은 그렇게 느껴지는 돈)이 필요하다.


지난 주 토요일에 엄마는 고물, 아니 검은 자전거를 이끌고 여섯 시간의 짧은 종주를 했다.

내가 사는 곳은 경남 양산인데, 낙동강을 따라 자전거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들어본 바로는 자전거길을 따라 대구까지도 갈 수 있다고 한다. 양산과 대구 사이에는 밀양(삼랑진)이 있는데, 엄마가 결혼 생활을 한 곳이자 내 고향이다.

엄마가 그곳까지 다녀왔다, 무려 여섯 시간에 걸려.

제대로 된 운동복이나 신발도 없으면서,

이십만원짜리 바구니 달린 자전거로,

무리지어 지나가는 로드 싸이클 사이를 종주했을 장면이 상상되어 어쩐지 내 마음이 다 외롭고 위축되었다.


어디 꽁돈 생길 일 없나.

로또가 힘들까, 브런치 대상이 힘들까.

세상 부질없는 고민이다. 그러니 고민할 것 없이 둘 다 해보기로 한다.

오늘은 금요일, 까먹지 말고 로또사야지.

오늘치 글은 썼고, 내일도 써야지.

부지런히 쓰다보면 언젠가 내게도 오백만원짜리 행운쯤 찾아오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