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싸 준 도시락 먹는 마흔 살
딸이 부러움의 중심에 서도록
시월 한 달만 학교 급식을 중지하고 도시락을 싸기로 했다.
도시락을 싸는 선생님들이 꽤 계신다. 그 이유가 학교 급식은 생각보다 잔반을 덜 남기기 위해 건강식으로만 채워지지 않는데, 건강을 잘 챙겨야 하는 선생님들로선 아쉬운 일이다. 나 역시 밥이 있어야 할 자리에 로제떡볶이가 있을 때 근거없는 배신감을 느꼈고, 면역력이 부쩍 떨어진듯한 컨디션을 내가 통제해볼 수 있을까해서 도시락을 쌀 결심을 한 것이다.
"엄마, 나 담달부터 도시락 싸려고"
결심은 내가 했지만, 도시락을 싸는 건 엄마다.
아직 시월이 되려면 일주일이 넘게 남았는데 엄마는 다이소에서 칸막이 도시락통을 샀다. 그 다음날은 목이버섯을 대야에 부어놓고 바락바락 씻어놓고 있길래 "뭐하려고?"하고 관심을 보였다.
"장아찌 하려고. 도시락 반찬하면 좋을것 같아서"
아이고 엄마, 제발 그러지 말자,
그냥 삶은 감자나 계란 번갈아 들어간 도시락이면 돼!
"아니~ 이거 별로 안 힘들어"
솔직히 말해서 엄마가 힘들 걱정은 별로 안했다.
내 도시락에 보일 사람들의 반응이 걱정이었다.
이거 뭐야?
목이버섯 장아찌요.
샘이 했어?
아니요, 엄마가요.
와 엄마 대단하시다~ 샘 좋겠다~
바쁜 와중에 자기가 먹을 도시락을 챙겨야하는 워킹맘들에게 괜시리 미안해지기도 하고, 나이 마흔 먹고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 먹는 내가 좀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건 엄마에게 한 번도 말해보지 않은 내 입장이고,
집에서의 나는 다르다.
목이버섯 장아찌가 엄마 원대로 안 됐는지 첫 날 도시락은 김밥이었다. 내가 출근 준비하는 사이에, 김 한장에 씻은 김치와 오이, 계란만 넣고 후딱 만들었다.
- 다 먹었어?
- 어, 한 입씩 먹어보라고 줬더니 너무 맛있대. 자기 샐러드에 올리브 오일보다 역시 참기름이 최고래!
박완서의 소설 '미망'에는 개성 제일의 부잣집 전처만의 아내가 등장한다. 그 시절 여인들이 그랬듯 전처만의 아내는 온갖 고생에도 집안 사람들로부터 살가운 치하를 받은 적이 없다. 집안에 드나드는 중간 상인들과 세도가들의 대접상에 묵묵히 정성 들이고, 잔칫날에는 동네 거지들 먹일 음식까지 맛깔과 때깔을 낸다. 그 이유는 자신의 음식을 눈과 귀와 입으로 맛본 사람들이 전국으로 퍼져 소문을 내주기 때문인데,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은 듯한 뿌듯함을 느낀다.
울 엄마도 그런 것 아니겠나.
도시락 잘 쌌다는 소문나자는 게 아니라,
엄마의 음식 솜씨와 정성이 딸에게 '익'이 되길 바라는 마음.
자신은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딸은 '그런 엄마 있어 좋겠다'는 말을 듣게 하는 일,
사람들이 딸을 부러워하게 만드는 일,
그게 엄마의 보람이자 삶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