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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시옷 Oct 22. 2024

작고 연약한 것들에 기대어

모녀가 그 시절을 지나온 방식

우리아이를 셋 키우는 것도 모자라 개도 키운다.

사람들이 셋도 부족하더냐고, 떻게 또 생명을 거둘 생각을 했냐고 대단하다고들 입을 모은다.

그러나 나의 배우자와 어린이들이 있기 전, 나는 가족으로서 '개'와 함께 사는 일에 익숙했다. 고등학교 때 마당도 없이 작은 단칸방에 살면서도 를 키웠는데, 단모종 치와와였던 그 녀석의 이름은 '얼구'였다.

 뒤로 리집에 살게 되는 개는 다 '얼구'였으니 그때 그 녀석 얼구 1호다. '얼씨구절씨구'에서 씨자를 뺀 얼구라는 이름은 막 지은 듯하지만 해학이 넘친다.  때 '구'한자의 '狗(개 )'라고 끼워 맞춰보자면, 미를 담은 최선 작명이라 할 만하다.

해학과 최선,

그 시절 엄마와 내가 삶을 통과해 가는 방식이 그랬다.


얼구 1호와 살던 그 집은 오래된 2층 주택이었다. 계단을 올라가 마와 나의 공간이 루미늄의 샷시문 너머에 있었다. 그 문을 지나 안쪽 세대에는 4인 가족으로 추정되는 가족이 살았는데 전혀 교류는 없었다.


딱 한 번 미스럽게 교류했는데,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을 만큼 대판 싸움이 나서였다.

발단은 개 짖는 소리였다.

원래 겁 많은 개들이 잘 짖는데, 얼구는 겁이 은 편이었다.

허술한 샷시문 앞으로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불안했는지 얼구가 짖곤 했. 오래 짖는 건 아니었지만 지나다니는 사람으로서는 거슬릴만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그날은 개 짖는 소리만큼 옆집 아저씨의 만취 상태도 문제였다. 그냥 지나가면 될 것을, 개까지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문을 두드리고 흔들고, 개는 놀라서 더 짖고 악을 쓰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저씨도 얼마나 세상 앞에 겁많은 사람이었는지!)

방안에 혼자 있던 나는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밤장사를 나간 엄마에게 전화할 수밖에 었다.

아마도 택시를 타고 달려왔을 엄마는 문 밖에서 술 취한 아저씨와 드잡이를 하며 고래고래 악을 썼다. 애 혼자 두고 나가는 게 불안해서 한 마리 데려다 키우는 걸 왜 못 살게 구느냐고.

그동안 엄마가 개 키우는 일에 관대했던 이유를 그때 알았다.

엄마도 개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던 거다. 이 조그만 녀석을 내가 돌보고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 녀석에게 맡겨진 셈이었다.

이 겁 많 작은 치와와에게.

그때 엄마와 나에게 그 작고 연약한 녀석 말고는 달리, 의지할 만한 존재가 있기나 했을까.


그러나 작고 연약할지라도.


생명은 또 다른 생명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법이라고, 그렇게 서로 기대고 의지하는 관계가 삶을 구성한다는 사실을 는 어른이 되었다.

지금 나의 어린이들은 얼구 3호를 키운다. 이탈리안 그레이 하운드라는 세련된 종자에게 해학과 최선이 담긴 이름을 붙이고, 아침저녁으로 부른다. 얼구야, 얼구야.

겁이 많은 어린이들은 혼자 화장실에서 씻는 일, 똥 누는 일, 거실 끝방에 가는 일이 무섭다.

그럴 땐 먼저 엄마아빠, 할미에게 같이 가 줄 것을 요청고, 거절당하면 제 옆의 형이나 동생에게 요청하고,

그마저 거절당하면 얼구를 데리고 간다.

가끔 얼구가 샤워하는 첫째 옆에 있다가 물바가지를 뒤집어쓰고 생쥐가 되어 튀어나오는 이유가 그래서다.


지난 일요일에는 애견동반이 가능한 카페에 나들이를 갔었다. 숲의 나무 사이로 어린이들과 얼구가 뛰고, 걷고, 웃었다.

작고 연약한 존재들이
서로를 향해 웃고 있었다.
우리의 해학과 최선은 지금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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