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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시옷 Oct 23. 2024

엄마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

스위치 오프

엄마가 갑자기 눈이 아프다고 했다.

오른쪽 눈을 뜰 수 없는 지경이고, 보아하니 아파서 밤새 잠도 잘 못 잔 것 같. 지병으로 뇌질환을 조심해야 하는데다 최근에는 이석증을 앓았던 터라, 눈이 아프다하니 보통 걱정되는 게 아니었다. 장 병원에 뛰어갈 수 없는 주말이라 월요일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럴 때는 병원부터 가면 좋으련만, 월요일 아침 엄마는 부득불 우리집으로 출근했다. 한쪽 눈만 뜬 채 평소처럼 식사를 차리고 도서락을 싼다. 남편과 내가 육아시간을 썼으니 충분히 아이들 케어해 보내고 도시락도 쌀 수 있다고 그 전날 말했음은 물론이다. 픈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며 기분 상할 필요는 없는 일, 나는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엄마, 알아보니까 안과는 이마트 쪽에 모다아울렛 있잖아? 그 옆 건물에 성모안과라고 사람들 많이 가는 데가 있더라.



내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침묵하더니 다행히 엄마가 일찍 병원 갔, 일교시 수업을 마치고 엄마와 통화했다.

눈 밑 살이 말려 들어가 수술을 해야하는 문제라고, 큰 병은 아니라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나는 병원에 따로 전화해 환자의 딸임을 밝힌 후 정확한 병명(안검내반이었다)과 추천할 만한 병원은 어디가 있는지를 물었다.


퇴근하고 집에 왔을 때는,

그나마 오른쪽 눈을 뜬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염증약을 먹고 가라앉은 모양이었다.

"엄마, 내가 병원을 알아봤는데, 내일 안가볼래?"

그 말에 엄마는 다짜고짜 화를 낸다.

제발 알아서 할 테니 신경쓰지 말라고, 사람 조르지 말라고,

도와줄 건 안 도와주면서 왜 도움 안되는 거에 조르냐고.


아, 또 시작이다.

걱정하는 사람에게 히스테릭으로 반응하는 엄마와
담아두지 않아도 좋을 말에 꽂혀서 반복재생하는 나.

내가 도와줄 건 안 도와줬다고?언제?

그런 적이 있었을 수 있지. 아니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어쨌든 이렇게 신경쓰는 딸한테 마치  남 비난하듯 말하면 안되지. 도와줘야 할 건 안 도와줬다니 대체 무슨...?

엄마의 비난을 곱씹을 이유가 없다는 걸 알지만 잘 안된다.

이럴 때는 의식적으로 스위치를 꺼야한다.

방법 1. 실제로 머리 한 가운데 정수리를 꾹 누른다.

지압 한 번에 해결될 일이었다면 이렇게 글까지 안 썼다.

두 세번 더 누르다가 아이들을 본다.

방법 2. 아이들에게 더 집중한다.(다른 일에 신경쓴다)

그러다 나의 불쾌함이 아이들을 향한 짜증으로 드러날 때가 있는데 그건 정말 최악이다. 부정적인 내 기분에 이들이 영향받게 하고 싶지 않다. 눈치보게 하고 싶지 않다. 지금 내가 스위치를 못 끄듯, 아이들도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다.

최후의 방법3. 좋은 글감이 생겼다, 라고 생각한다.

글로 옮기다보면 괜찮아지겠지.

냉정과 평안을 찾고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갈 계기로 삼을 수 있겠지. 순전히 내 정신승리로 그치는 일이라하더라도.




저녁을 먹는데 엄마가 내 앞에 흰 봉투를 내려놓는다. 병원에서 받은 진료의뢰서다. 이런 거 안 줘도 병원에 전화해서 다 물어봤다고, 낮 동안 알아본 병원의 장단점을 슬쩍 늘어놓았다.

그제서야 엄마는 딸을 딸처럼 대하는 말들을 내어놓았다.

예전에도 가끔 눈밑살이나 눈썹이 찌를 때가 있었다고,

저번 토욜에 엎드려잔 게 문제였나본데, 큰 병 아니라하니 마음이 놓여서 병원은 급하게 가고 싶지 않다고.

- 그래, 엄마 마음이 편해졌구나. 그럼 됐어. 나중에 또 그러면 같이 병원에 가보자.


스위치를 빠르게 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엄마의 용기있는 다정함이었다. 엄마가 다정함에 용기내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는 것, 나의 글쓰기가 하나씩 쌓여가는 것, 우리가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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