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쓴 정지아 작가는 자신의 소설이 뜨지 못하는 이유가 '진정성' 혹은 진지함이라고 생각했다.
후배들조차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그놈의 진정성!"이라고 탄식했다지 않은가.
그러나 서울 한복판에서 전남 구례로 내려온 뒤 그 문제는 해결되었다. 서울 살 땐 몰랐는데 구례에서는 한 집 건너 빨갱이집이라 자신이 빨갱이집 자식이란 사실이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진지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냥 생활하면 되는 일이었다.
나 역시 브런치에 엄마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비장함을 내려놓았다. 브런치에서는 글 한 편 건너 온통 가정잔혹사였다.
이혼, 외도, 폭력, 방임, 질병.
그 안에서 내 이야기는 전혀 슬프거나 비장하지 않았다. 그냥 사는 이야기, 살아온 시간이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더 슬프거나 처참해서가 아니라,
누구나 선택하지 않은 불행에 언제든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연재를 해 나갈수록 내가 쓰는 글이 조금씩 가벼워진다고 느꼈다. 마음 한 쪽에 고요히 타오르는 촛불이 있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위태로웠는데, 촛불 없이도 이제는 조금 환하다.
흔한 표현으로 자신의 인생을 글로 쓰면 대하소설쯤 될 거라고, 삼일 밤낮을 풀어도 다 못 풀어낼 거라는 표현들을 하곤 한다.
엄마와 나의 이야기도 그런 줄 알았다. 천일야화는 못돼도 삼일야화는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꺼내고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꼭꼭 잘 소화하며 오늘을 잘 살고 있었다.
연재는 끝나지만 생활은 계속된다.
진지하거나 비장하지 않아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