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정한 시옷 Nov 20. 2024

인사이드 아웃에 왜 '인정이'는 없을까

제목을 보고 이 글을 클릭하신 분 중에 특히 <인사이드 아웃 2>를 보며 울지 않으셨는지 묻고 싶다.

나는 운 사람이다.

역시 라일리의 뇌 통제센터에 등장한 친구들 중 가장 강력한 캐릭터였던 불안이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는 그 녀석이 만들어 낸 '난 부족해(I 'm not good enough)'라는 자의식 때문이다.


나도 부족해. 나도 그래.


충분히 사랑스럽고 멋진 아이라는 사실을 라일리만 모르듯

나도 나만의 색으로 멋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다.

그렇다고 내 안의 목소리가 줄기차게 불안과 부족만 외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남들이 보기에 괜찮은 성취,

내가 생각해도 열심히 살아온 삶,

그걸로 충분하지, 괜찮지 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었다.

내가 나에게 한 말은 진심이었을까?

하지만 지금 쓴 문장 역시

'남들이 보기에 괜찮은 성취'가 가장 앞에 있지 않은가.

다른 사람의 시선 없이, 스스로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지지하는 일이 이렇게나 어다.


라일리는 그래서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불안이를 통제할 수 있으니 괜찮은 어른으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어쩌면 자신의 충분함을 알아채지 못해 2프로 아쉬운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마음속에 자라난 긍정적인 자의식과

그것을 알아채고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다.

부정적인 자의식이 생겨지만, 그런 줄도 모르고

내내 타인을 부러워만 한다든가 지나친 성취를 지향한다던가 하는 사람들이 그 예다.


'인정이'의 탄생이 필요하다.

긍정과 부정을 떠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줄 수 있는 마음 친구 말이다.

인정이는 언제 태어나는가?

그건 모른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영영 태어나지 않는 비극이 생기기도 한다는 걸 우리는 알잖은가.

9나의 경우에 아주 다행히, 마흔 즈음되어서야 인정이가 탄생했음을 깨달았다. 직은 유아기에 해당하는 '인정이'랄까. 키워나가야 할 일이 여전히 남았다.

사실 지난여름에 열한살이와 보러 갔던 <인사이드 아웃 2>를 생각하면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다 쏟아버린 팝콘이 생각난다.

팝콘 사이즈도 컸는데, 그걸 다 주워 담는 열한살이의 얼굴은 불안이의 색깔과 똑같았다. 사춘기가 코앞인 아들은 다른 사람 주목을 받는 게 싫을 뿐 아니라 창피당하는 상황은 더 싫은데 엄마가 그런 상황을 만들었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나는 좀 그런 편이다.

실수가 많고, 같은 일을 두 번 하기도 다반사다.

아이에게 조금은 못 미더운 엄마다.

하지만 아들에게 사과할 줄 아는 엄마고,

그런 실수가 큰일은 아니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엄마다.

게다가 영화의 첫 장면을 미리 체험시키며 영화 속 인물의 감정에 더욱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하지 않았냐 말이다.

(라일리의 친구가 된 그레이스가 동전을 와장창 쏟으며 영화가 시작된다, 우연하게도!)



불혹이 된다는 건

아무것에도 미혹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혹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기 자신이 된다는 말이다.

그것은 인정이가 있을 때 가능한 일,

그래서 나는 내 안의 인정이를 발견하고 키워나가는 일을 쓰기로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