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이와 사는 일이 늘 좋지만은 않다.
때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일이 최우선이지만, 엄마, 아내, 교사, 딸의 역할을 무탈하게 소화하는 일이 행복이라 여기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하나쯤 있는 법이다.
나에게는 자식으로서의 역할이 그렇다.
마치 공부 같다. 타고난 공부머리가 없어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지만 나에겐 효도머리가 없는 것인가 하고, 자식으로서의 역할은 내 길이 아니라고 인정하게 된다.
어제는 엄마의 생일인 토요일이었다.
우리 집에 새벽 여섯 시마다 출퇴근해 삼시 세끼를 차리고, 딸의 도시락을 싸고, 청소며 빨래며, 세 명의 손주들까지 돌보느라 당신 식사도 제대로 챙기기 힘든 5일을 보내고 단 하루 쉬는 날, 토요일이다.
(일요일은 월요일의 끼니 준비를 위해 출근한다.)
아기자기하고 세심하게 이벤트를 마련할 줄 모르고,
다만 엄마에게 필요한 게 뭘까만 생각했다.
토요일 오전 야구와 태권도를 마치고 제 각각 집에 도착한 아이들의 점심을 후다닥 챙긴 뒤, 두 시가 지나 케이크와, 식당에서 포장한 동태탕과, 용돈 삼십만 원을 챙겨 들고 아이들을 앞세워 엄마에게 갔다
내 손으로 끓인 미역국이면 좋았겠지만,
포장 음식이 아니라 같이 식사를 하면 좋았겠지만,
딸로서 나의 정성이 그것밖에 안 됐다.
엄마는 외출 중이었다.
이 추운 날씨에 또 자전거를 타고 운동을 간 걸까, 시장에 간 걸까.
할머니 언제 오시냐고, 케이크 먹고 갈 수 있는 거냐고 자꾸 묻는 아이들을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달랬다.
아이들이 티브이를 삼십 분쯤 보고 있을 때 엄마가 왔다. 아이들이 할미를 반갑게 불렀다.
왜 왔냐고 묻는 엄마에게 생일이라 축하하러 왔다고 답했다.
둘째는 태권도에서 배우는 품새를 생일선물이라며 선보였고, 한글을 아직 모르는 막내딸은 색종이에 그림을 그려 선물했다. 그때까지는 엄마도 웃었던 것 같은데.
나와 남편은 선물을 따로 준비하지 못했다. 지병이 있는 엄마에게 건강식품은 조심스럽고, 취향에 맞지 않는 선물보다는 실속 있는 용돈으로 선물을 대신했다.
내가 끓인 미역국은 입맛에 맞아하지 않으니 동네 미역국 맛집에서 사려 했는데 하필 문을 닫았다. 회를 살까, 삼계탕을 살까 하다가 고기를 입에도 못 대는 엄마가 동태탕, 명태탕을 그나마 잘 드시는 게 생각났다. 엄마 혼자 식사해야 하는 주말에 괜찮은 반찬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사 온 동태탕은 어차피 내일 너희 집으로 가져갈 테니, 짐 보태지 말고 갈 때 가져가라 한다.
화가 났다. 짐이라니?
엄마는 왜 내가 주는 건 뭐든 쓸데없는 취급을 할까.
그러면서 왜 항상 네가 엄마를 위해 해준 게 뭐가 있느냐는 말을 할까.
"엄마 혼자 밥 챙겨 먹기 귀찮을 때 반찬 하라고 가져온 건데, 그냥 먹지. 안 먹을 거면 그냥 여기서 버리든가!"
"버릴 거면 왜 사 왔노?"
"그러니까 그냥 먹으라고. "
"식당에 가서 한 끼 먹든가 뭐 하러 사 오노!"
"식당 가서도 먹으면 되지, 가서도 먹자."
'내가 이미 말하고 나서 가는 거면, 니 같으면 가겠나? 됐다."
아차 하기도 했다. 엄마 말대로 식당을 예약하는 방법도 있었는데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어차피 어딜 모셔가도 '먹을 거 없다, 내가 언제 이런 거 먹는 것 봤냐'는 소릴 들을 게 뻔하니까 생각도 안 한 것이다. 고기를 전혀 못 먹는 엄마의 식성에 맞는 식당 찾기가 까다로워 미리 포기하기도 했다.
그래도 말이라도 했어야 할까.
'(챙기는 척하지 말고, 맘에 없는 소리 하지 말고) 하던 대로 해라'는 타박을 또 듣더라도 물었어야 했는가 보다.
맞다, 내 생각이 짧았다. 엄마 생일이라고 준비한 게 고작 이 따위라니 화가 날만도 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까먹고 지나갈까 봐, 어떻게 챙길까 나름 고민한 결과가 실행하고 보니 왜 이렇게 부실할까.
내가 엄마를 위하는 일은 왜 항상 이런 식의 결말일까.
엄마를 조금이라도 챙기고 싶었던 내 마음은 어디 가고, 오늘도 (역시나) 무심하고 철없고 인색한 딸이 되었을까.
엄마를 챙기는 일에 늘 주춤거리는 내 마음을 이해한다.
엄마에게 한 번도 인정받지 못했기에 스스로 알아줄 수밖에 없는 그동안의 노력들도.
엄마는 타인으로부터 받는 호의와 관심을 진심으로 보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게 따뜻하고 좋은 것은 당신 것일 리 없다는 생각으로 불만이나 비난으로 퉁겨내며 살았고, 딸조차 당신을 진정으로 위할 수는 없다고 여긴다.
나는 그런 엄마로부터 '엄마를 위하는 존재'라는 인정을 받기 위해 살아온 세월이었다고 말할 정도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엄마가 갈비뼈가 부러지고도 제대로 치료받지 않았던 적이 있다. 나는 '엄마 병원에 좀 가'라는 말밖에 할 줄 몰랐고, '네가 돈 줄 거냐'는 비난의 눈초리와 날카로운 대답에 다시는 엄마의 아픈 일에 입을 떼지 않았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는 웬만해선 돈으로 해결했다. 틈틈이 선물을 해보았지만, 엄마의 취향이나 필요를 잘못짚은 데 대한 타박과 비난을 면한 적이 없다. 갈수록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싫어하거나 필요 없어하는 것들의 데이터만 늘어갔다.
그러다 보니 엄마의 생일을 이따위로 챙기고야 마는 딸이다. 엄마를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내가 욕을 덜 먹을까 하게 되었다.
그래, 그래서 이렇게밖에 챙기지 못했다.
나에 대한 엄마의 사람과 헌신을 의심하지 않는다.
늘 고맙고 미안하다.
엄마에게 나 역시 대견하고 고마운 딸이고, 잘 키워주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을 보상해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필요를 충족해주지 못하고 늘 어긋나기만 한다.
엄마는 딸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육아와 살림 도움이 아니라, '괜찮다, 고맙다, 다행이다'는 인정의 말 한마디인 것을 모른다.
딸인 나 역시 엄마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계속 모를 것이다. 엄마 본인조차 스스로 어떻게 해야 행복한지,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물어봐도 모르겠다고 한다.
우리는 평생 서로의 필요를 모르고,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을 결코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확실히, 이번 생은 딸로서는 실패다.
아프게 인정할 수밖에 없다.